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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족은 누구인가?

by moonlight Feb 2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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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 가족 여러분!

고생 많았습니다.

긴 연휴 동안은 업무를 잊고 재충전하세요.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합니다.

명절 잘 보내시고 밝은 모습으로 다시 봅시다.


회사 대표가 추석을 앞둔 월례회의에서 한 말이다.


언뜻 직원의 고충을 헤아리고 격려하는 듯하지만

다시 일하기 위한 충전의 시간을 보내라는 것을

알기에 썩 달갑지는 않다. 게다가 그와 너, 나를 엮어 '가족'이라 칭한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도대체 가족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국어사전에는 가족을 혼인, 혈연, 입양으로

연결되어 같이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가장 오랜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기에

일상을 공유하는 집단으로 생각할 수 있겠으나,

혼인, 혈연, 입양 중 어느 하로도 연결되지 않았다.


건강가정기본법 제7조에 따르면 가족구성원은

부양, 자녀양육, 가사노동 등 가정생활의 운영에 함께

참여하여야 하고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여야 한다.


직장 상사나 동료와 이런 행동을 하는가?

길어진 근무로 가정으로 복귀가 늦어지지 않는가?


혹여 회사에서 받는 급여가

부양, 양육, 가사에 사용된다고 억지 부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더 높은 자리를 위해

시기, 질투, 무시, 배척이 난무하는 현실을

마주하는 내게 그들은 가족이 아니다.


반면 '우리는 가족일까?' 하며

종종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장인, 장모, 시부, 시모, 형수, 처형, 동서, 조카와 같이

배우자의 직계혈족,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형제자매를 두고 말할 때다.


회사가 아닌 집에 모여 함께 음식을 먹고

집안 대소사에 같이 참여한다.

사적인 영역이 겹치고 경조사에 평균이상의 금액을

선뜻 내어놓는 것으로 보아 가족 같다.


하지만 내가

공감할 수 없는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하거나,

아끼는 대상이 직계혈족에 집중되는 현상을 마주하면

나의 정서적으로 그의 가족이 될 수 없어 보인다.


하루는 첫째 아이가 꿈을 꾸었다며,

외할머니가 자기에게 팔찌를 선물했단다.

노리개를 선물 받는 동생을 시샘하듯 말하기에

엄마는 무엇을 받았냐고 물었고,


값비싼 비녀를 받았다고 했다.

그럼 아빠는? 말에


아빠는 사위잖아. 피가 섞이지 않았는데

아무것도 못 받았지.


하며 답한다.


가족에 대한 정의와 범위에 의문과 확신이 반복되면서

나는 두 개의 가족에 속해 있다는 결론이 이르렀다.


태어나며 속하게 된 아버지, 어머니, 형으로 된 가족 A,

혼인을 통해 아내와 두 자녀로 구성된 가족 B.


'나'는 가족 A와 가족 B의 유일한 교집합이다.


'나'를 매개로 가족 A와 가족 B가 함께 모여 서로의 일상을 나누다 보니 발생한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그러니 장인, 장모도 시부, 시모도 내겐 가족이 아니다.


물론 가족이 아니라고 온전히 남이라는 뜻은 아니다.

일면식이 없는 것도 아니고 업무가 아닌 사적인 영역에서 공유하는 부분이 있으니,


숨결을 느낄 만큼 가깝지는 않지만, 누구여도 상관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적절히 어정쩡한 거리에 있는 관계.


그래서 더 예의를 지킨다.

퉁명스럽거나 출렁이는 감정을 쏟아내지 않는다.


가족에 대한 나만의 기준이 세워지고

범위와 기대, 역할이 정해지니 한결 생각이 명료해진다.


아버지가 연락이 끊어진 숙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사업을 했었고 돈을 빌려주었다. 또 돈을 빌려다 빌려주기도 했다. 숙부는 아버지에게 법적 문제만 해결되면 되갚을 수 있다고 했지만,


지금은 아버지의 전화마저 받지 않는다.


아버지의 가족 A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남겨진 동생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지니

가족 A가 점차 희미해진다고 했다.


혼인으로 꾸린 가족 B가 있으나

자식들은 자기들의 가족 B를 챙기느라 부모와 교류할 시간이 부족하단다.


내게 주어진 가족만 챙기다가,

이제 아버지의 가족을 살펴보니


아버지에게 남은 가족이 누구인지 손으로 꼽게 된다.

저기 귀를 쫑긋하던 반려견 '몽'이

꼬리를 흔들며 다가와 아버지 품에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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