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 뚜렷하다는 건 하나의 문화자본이 된 지 오래다. (아비투스 같은 주제는 문화 연구에서 오랜 연구 대상이라 다소 진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취향이란 언어가 ‘우월함’이라든지 ‘뛰어남’과 직결되는 게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나의 인식과는 별개로, 뚜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은 드물고, 그런 사람에게는 무언가 다른 점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널리 퍼져 있는 것 같다. 소개팅을 바라는 친구들에게 적잖이 들을 수 있는 조건 또한 취향에 대한 이야기다. (차라리 취향을 조건으로 삼는 게 더 현명한 것일지 모른다) 본인 취향이 뚜렷하다고 생각할수록 그런 사람을 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내가 관찰한 바로는 그렇다.
취향이란 말이 오염된 면이 있기 때문에 나는 보통 이렇게 표현한다. 평균보다 조금 더 좋아하는 편. 이 말을 처음 쓰게 된 건 내가 영화를 좋아한다는 걸 인정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일종의 입덕 부정기가 있었다. 에이. 저는 좋아하는 축에도 못 껴요. 제가 어떻게 씨네필이에요(영화제를 모조리 참석하며). 1년에 영화 100개씩 보는 사람도 있다는데(1년에 60개를 넘게 보고 죄다 기록하며)… 이동진이랑은 비교도 안 되는데(왜 이동진하고 비교를 하니)… 칸이라든지 베를린에 가면 씨네필 인준이라도 있는 듯, 나는 그런 것 받은 적 없다며 손사래 쳤다.
내가 너무 온라인에서 살았나 봐. 왓챠피디아에서 영화 3000개씩 본 사람들만 팔로우하다 보니 600개도 적은 편이 아니라는 걸 몰랐다. 사람이 비교 기준을 어느 곳에 두느냐가 자기를 판단하는 가장 핵심적 요소일 수 있다는 점을 까맣게 잊었던 것이다. 나보다 훨씬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아 보였던) 친구는 니가 무슨 애매필(속옷 브랜드 아님)이냐며 다그쳤다. 그 말을 들은 그해 나는 전주, 무주, 부천, 부천을 며칠씩 누볐다. 오직 영화제를 가려고. 그 친구 말이 맞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좋아하는 걸 더 좋아할 수 있으려면 뭐가 필요할까. 먼저는 탐구심이다. 취향의 대상이 되는 것을 잘 알아야 하는 건 당연하다. 여기서 한 발짝 더 가야 한다. 알아도 알아도 더 알고 싶은 마음, 정도는 되어야 탐구심이라 이름할 만하다. 어디 가서 영화 좋아한다고 우쭐댈 정도라면 아카데미와 오스카의 차이는 무엇인지(같은 상이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언제 하는지, 남우주연상 후보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티모시 샬라메와 마이클 B. 조던이 삼파전을 벌였다는 사실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씨네필들은 이렇게 우쭐대서 안 된다)
좋아하는 걸 확실히 좋아하려면,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한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 사람인지 인식하는, 소위 ‘메타인지’가 필요한 셈이다. 그러려면 많이 실패해야 한다. 아니, 실패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정보나 평점이 별로 없는 영화들도 용기 있게 보고, 러닝타임 4시간짜리 영화를 틀었다 매번 후회하기도 하고, 홍상수가 좋다는 사람들을 이해해 보려다 실패도 해야 한다. 싫어하는 마음은 강력해서 조심할 필요가 있지만, 5점짜리 영화를 골라 보라는 요청보다 0점짜리를 고르라는 말이 훨씬 쉽게 들리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실패엔 돈도 필요하다. 이곳저곳 돈을 쓰다 보면 자연히 실패에도 돈을 꽤 쓰게 된다. 일종의 수업료를 내는 셈이다. 내가 피규어라거나 뮤지컬이라도 좋아해 버렸다면 돈이 왕창 깨졌을 것이다. 영화라 다행이네, 라고 생각할 따름이다.
2.5점도 주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영화가 천만을 넘을 때면 세상이 나를 두고 깜짝 카메라라도 하나 싶지만 그럼에도 우월감을 갖지 않으려 노력한다. 세상엔 많은 사람이 있다. 나는 전혀 특별한 게 아니야. 그저 조금 까다롭고 기준이 많을 뿐이야… 글의 서두에 우월감과 취향이 연결되지 않아야 한다고 했지만, 이렇게 열변을 토하다 보면 내가 좀 더 낫나 싶은 생각이 스멀거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뺨을 한 번 때린다. 차이를 오해해선 안 돼. 세상엔 이동진과 박평식과 정성일과 김혜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 그런 비교 말고, 그냥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하자. 어디에 올라가려거나 더 나아지려기보다는 그 마음만 기억하려고 한다. 좋아하는 스스로에 만족하면 될 일이다.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이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좋아하게 된다거나 좋아할 수밖에 없게 된다, 라고 하는 게 맞을지 모른다. 취향을 가지는 건 의지와는 별개의 문제다. 그냥 좋아하는 것의 숙주가 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