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행복할 때는 행복이라는 감정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왜 행복한지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할 때는 필사적으로 벗어나고자 한다.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인생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극복하기 위해 다른 일에 몰입하기도 하고, 쾌락을 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감정은 아무리 노력해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대부분의 심리학은 여타 근대학문과 마찬가지로 어떤 문제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인지치료의 경우에는 이렇다. 발표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환자가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이 공포를 느끼는 이유를 찾는다.
어떤 상황을 떠올리기에 그토록 두려운지 규명하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발표를 할 때 청중들이 무조건 비웃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비합리적인 신념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이를 반복적으로 확인했을 때 점차 두려움이 줄어들게 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이 모든 경우에 먹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필사적으로 원인을 찾고, 주의를 돌려보고, 다른 감정으로 대체하려고 해도 해결되지 않는다. 이것은 부정적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다. 불안을 제거하겠다는 애초에 불가능한 목적을 가지고 시도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다.
이성으로 감정을 통제할수 있다는 믿음은 환상에 가깝다. 이성은 감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쓰여야하지, 감정을 통제하는 데 쓰일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인간의 뇌를 속속들이 관찰할 수 있다고 한들, 인간이 입맛에 맞게 감정을 정복하기는 힘들 것이다.
아예 감정 자체를 뿌리뽑아버릴 수는 있더라도, 진실된 행복을 선택적으로 느끼긴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은 수치화할 수 없고, 실재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기에, 양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이해가 어렵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과학의 무의미하진 않지만, 세상에는 불확실하고 비논리적이고 직감적인 것이 있다는 진실도 함께 인정해야하는 것 같다.
학문과 이론으로 감정을 분석하고 통제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지금으로서 내린 결론은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애착, 분노, 죄책감과 같은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고 하자.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사람이 싫으면 싫었지 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건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감정을 일관성있게 정렬하기 위해 한쪽을 억눌렀을 때 문제는 발생할 것이다. 모순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과거에 억눌렀던 감정을 적어보는 것도 꽤 도움이 된다. 불쑥불쑥 떠오르는 기억들은 보통 부끄럽거나 괴로운 것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잊어버리려고 한다. 그러나 억압된 감정은 끈질기게 남아있는다. 어떤 방식으로든 존재감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감정은 시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으며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연관성을 가지고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 과거를 파헤치는 것과, 과거에 느낀 감정을 있는 그대로 상기해보는 것은 다르다. 전자의 행위에는 원인을 찾아내어 문제를 제거하겠다는 조급함과 불안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감정을 억제하려는 시도와 다를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