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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Choi Feb 12. 2024

20대 중반의 연애

(1) 다 컸다 생각했지만 너무 어렸던

어느 토요일 오후 늦은 시각, 친구A와 술 한잔 하기로 한 약속때문에 슬렁슬렁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있었다. TV에 눈을 떼지 않은 채, 문자 알림이 울리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나 오늘 연습하러 코트갈건데, 올 수 있어? 시간되면 같이 하자'


의외의 사람에게 온 갑작스런 연락이 가슴을 들뜨게 만들었다. 이미 잡혀있던 약속을 어쩌나 잠시 생각했지만 망설임없이 친구A에게 문자를 보냈다.


'미안한데 급한 일이 생겨서 오늘 안되겠다. 다음에 보자. 미안'


그녀에게는 1시간 이내로 배구 코트에 도착하겠노라고 답장을 보냈다. 몸놀림이 빨라졌다. 패딩 대신 코트를 꺼내고, 배구화와 운동복을 챙겼다. 지루했던 내 일상에 훈풍이 불어오는 느낌과 기분을 고조시키는 설레임이 밀려왔다.


그날의 그 선택, 친구A와 잡혀있던 선약을 깨고 그녀를 만나러갔던 것에서 시작됐다. 그 이후 수년간 나를 괴롭힌 우울감, 불면증, 정식적 육체적 문제들, 나락까지 떨어진 나 자신과 그로 인해 상처받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다른 선택을 할까?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행동을 바꿔야했을까? 어쩌면 그날, 배구 코트에서 함께 연습을 하러가지 않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은 아니었을까? 이제는 모두 지나가버린 그날들을 다시 한번 곱씩어보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현재에 충실하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도 시간이 지나면 똑같이 과거가 될 것을 알기에, 과거를 과거로 보내는 연습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내가 속해있던 아마추어 배구 동호회가 사용할 수 있는 배구 연습장이 있었다. 배구장에 도착해서 몸을 풀고 있는데, 10분 정도 후에 그녀가 도착했다. 그녀를 보는 순간 급하게 텐션이 올라가며, 무슨 말이든 활기차게 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에, 괜한 비난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늦게 왔네. 날 기다리게 하다니.. 밥 사라."


환하게 웃으며 농담으로 맞받아 치는 그녀.


"누구...세요?"


우리는 배구 동호회에서 만났다. 알고 지낸지는 이미 6년째. 이미 고백했다가 한번 차이기도 했고, 그 후에 각자 연애를 하기도 했다. 심지어 그 연애를 하는 동안 두 커플이 함께 놀러도 많이 다녔다. 네명이 모두 서로 친한 동호회 친구 사이였다.


연애가 끝난 후에도 동호회에서 서로 친구사이는 유지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 전처럼 함께 뭉치거나 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서서히 만남의 횟수가 멀어지고 각자의 가는 길을 SNS에서만 보고있었는데, 며칠전 길에서 우연히 만나 '언제 같이 연습이나 하자'던 인삿말처럼, 오늘 그녀와 배구 코트에 다시 오게 된 것이다.


마치 몇년전, 우리가 가장 즐거웠던 그 추억 속 시간으로 다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6년전부터 좋아하고 있던 그 마음이 다시 마음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척하면 척하고 대화가 맞았다. 함께 공을 주고 받으며 맞추는 호흡이 기분좋았다.


그 날 이후 며칠간 가슴앓이에서 벗어 나오지 못 하다가, 결국 나는 결심을 해버렸다. 그녀에게 고백을 해야겠다. 주말에 코트에서 다시 만날 약속을 잡고, 어떻게 말을 할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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