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주인이 되는 폴리매스 독서법
'지(知)의 거인'으로 불렸던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는 엄청난 양의 독서로 유명합니다. 책을 사는 데 절대 돈을 아끼지 않았다고 하는 다카시는, 평생 모은 책을 보관하고 연구하기 위해 자신의 집을 직접 설계하기까지 했습니다. 벽면에 커다란 고양이 얼굴 그림이 그려져 있어 ‘고양이 빌딩’이라는 이름이 붙었구요.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에서 다카시는 속독을 몸에 익힐 것을 강조합니다. 책을 읽는 도중에 메모는 하지 말고, 차라리 메모 대신 밑줄을 칠 것을 권장합니다. 메모를 하며 한 권을 읽는 시간에 다섯 권의 서적을 읽을 수 있으며, 꼭 메모를 하고 싶다면 책을 다 읽고 나서 메모를 위해 다시 읽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이유입니다.
책을 다루는 방식에는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메모하지 않고 속도감 있게 읽는 것을 좋아해서, 형광펜으로 줄을 죽죽 쳐 가며 읽는데 책이 너무 지저분해져서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형광펜 대신 굵은 심의 연필로 줄을 칩니다. 혹시 모를 큰 후회가 밀려오면 지워볼까 하구요. (하지만 한 번도 지워 본 적은 없습니다).
책은 거칠게 다루는 것이 좋다. 나중에 헌책방에 팔기 위해서라도 깨끗하게 보겠다는 식의 구두쇠 발상은 버리는 것이 좋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중에서
책에 줄을 치거나, 귀퉁이를 아니면 페이지 전체를 접어 버리는 행위는 책을 대단한 것, 신성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짓’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너무 책을 모셔가며 아껴가며 읽으려 하니 책이 살짝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거칠게 줄을 치며 책의 주인답게 행동하려 했습니다. 책에 남은 흔적과 상처가 나중에 내용을 더 잘 기억나게 하기도 했고, 다시 읽을 때는 속도를 높여주기도 했구요. (단,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소중히 다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저도 책을 떨어뜨려 겉표지가 회복 불가능하게 접혀 버리는 건 엄청나게 싫어하는 편이구요.)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책이 많지 않습니다. 재미가 없거나, 너무 어렵거나, 아니면 운이 좋게도 읽던 중에 궁금한 것에 대한 답을 찾아 버렸다면 책을 그만 내려놓게 됩니다. 독서의 목적이 책에 적혀 있는 모든 ‘글자’를 읽는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 위안하면서요.
물론 한 자 한 자 천천히 여러 번 음미하며 읽는 것이 미덕인 문학 작품들도 있지만(특히 시), 제가 읽는 책 대부분은 정보를 찾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는 책의 표지만 보고도 궁금해하던 문제에 대한 답이나 인사이트를 얻었다면 1시간 아니 1초 만에 책을 읽었다고 볼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내가 필요한 것을 책에서 찾는 것이 독서의 목적이라는 마음으로 집중하면, [전략적 공부 기술]의 저자 베레나 슈타이너 박사가 말하는 ‘1시간 1권 읽기’도 절대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책을 험하게 다루고, 줄도 치고, 원하는 부분만 읽고, 공감이 가지 않으면 놓아 버리는 그런 것에 죄책감을 느껴야 할까요? 어차피 나를 위한 독서인데 책을 불편한 것으로 여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양에 압도당하고, 글자에 휘둘려 다니고 싶지도 않습니다.
책을 만만한 것으로 생각하고, 내가 필요할 때 가까이 있는 친구, 아니 아예 노예처럼 생각한다면,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깨끗이 모두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난다면, 책이 훨씬 가깝게 느껴지고, 오히려 책의 저자도 더 만족해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완독하지 않을 책을 사는 것은 낭비로 생각하는 것이 저는 속상합니다.
시시한 책은 모처럼 구매한 책이니까 어떻게 해서든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당장 읽기를 그만둬라. 20% 정도는 이런 책일 거라는 각오를 미리 해 두는 것이 마음 편하다.
- 다치바나 다카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