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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04. 계획적 진부화, 기업의 환경적 횡포

지극히 계획적인, 지극히 이기적인

by 성박사

휴대폰, 노트북과 같은 전자기기는 주기적으로 바꾸게 된다.

교체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크게는

새로운 제품에 대한 갈망,
그리고 기존 기기의 노후화

정도의 이유가 있겠다.


하지만...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새로운 것 보다는 알고 있고 익숙한 것이 좋다.

새로운 노래보다는 듣던 노래가 좋고,

새로운 게임 보다는 늘 하던 게임이 좋고,

새로운 전자기기에 대한 호기심도 크게 생기지 않는다.


어릴 때는 어떤 휴대전화가 새로 출시되었는지,

어떤 기능이 추가되었는지와 같은 것들을 꿰고 살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시간도 없거니와) 그런 것들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사라진다.

어쩌면 우리는 항상 어릴적 그 과거에 머물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계획적 진부화'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체계적 진부화' 또는 '계획적 구식화'라고도 한다.

이름부터 뭔가 구리지 않은가?

계획적으로 진부하게 만든다... 굉장히 구린내가 나는 것 같다.


기업은 자신들의 제품을 '의도적으로' 진부하게, 구식인 양, 유행이 지난 듯이 만들고,

이러한 전략을 통해 제품의 판매량을 늘린다.

이것이 '계획적 진부화'다.


어느새 이러한 '계획적 진부화'는 제품 설계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었으며,

우리는 이들의 전략을 순순히 따르고 있다.


단순히 물리적, 기계적 내구도를 제어하는 것,

예를 들어, 2년만 지나도 휴대폰의 방전이 지나치게 빨라지게 만든다든지,

충전 케이블의 피복이 쉽게 벌어지게 만든다든지 하는 것들은

'계획적 노후화'라고 칭해지곤 한다.


이와 다르게, 계획적 진부화는 말 그대로 해당 제품을 진부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행태를 의미한다.

즉, 제품의 사회적/문화적 노후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의류 업계는 매년 (혹은 격년) 롱패딩/숏패딩의 유행을 돌려 막고,

휴대폰 및 전자기기 업계는 주기적으로 신제품을 출시해서 일종의 유행을 만든다.

최근 십수년간 애플과 삼성이 이름 붙여온 것처럼,

숫자를 이용해서 버전을 만들면 이에 대해 더욱 체감하게 된다.

휴대폰의 패러다임이 변화하지 않았다면,

고아라폰을 3년 써도 바꿔야 한다는 마음이 크게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폰은 패러다임이 변화하지도 않았는데,

아이폰 13을 3년 쓰면 괜히 새로 나온 아이폰 16과 비교하게 된다.


자동차 업계의 페이스리프트도 관점에 따라서는 일종의 계획적 진부화로 볼 수 있겠다.

같은 모델이라도,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기존의 제품을 좀 더 구식처럼 느껴지게 만들게 되니 말이다.


명품 브랜드들은 이러한 계획적 진부화의 반(反)하는 전략을 사용하곤 한다.

그들의 제품이 시중에 너무 많이 나돌게 되면 가치가 떨어지므로,

특정 생산량을 초과하는 물량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제품을 훼손하여 버리기도 한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기업들은 그저 소비자에게 맞춰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며, 위와 같이 행동했을 때 소비자들이 이윤을 늘려주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제품이 조금 진부해졌다고, 유행이 지났다고, 촌스럽다고 해서

새로운 버전의 제품을 좇을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낭비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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