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서 떠나는 루브르 방문기
몇 년 전, 루브르 박물관에 방문한 적이 있다. 내가 학부시절 배웠던 미술사를 드디어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구나 라며 들떴던 기억이 난다. 하루 일정을 모두 루브르에 쏟았지만 어마어마한 규모와 수많은 작품에 혼란을 느껴 지식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루브르를 나왔던 기억이 난다. 제대로 정돈되지 않았다는 찜찜함을 느껴, 한국에 돌아가 꼭 다시 루브르 작품에 관한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몇 년이 흘렀지만 여러 핑계로 정돈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 <63일 침대 맡 미술관>을 만났다. 침대 맡에서 편히 읽어도 될 만큼, 쉽고 정확하게 알려줄 것만 같아 선택하게 되었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책을 읽어나갔다.
작가는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나 루브르 소장 작품들은 13세기에서 19세기 중반까지의 회화이므로 그 시대적 배경과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래야만 그 작품에 내포된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앞으로 책에서 다룰 미술 양식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하고 있다. 140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 시대와 주의를 정리하여 앞으로 어떻게 책이 전개될지에 대해 예상할 수 있었다. 책을 읽는 중간 중간마다 흐름을 정리하고 싶을 때 앞장의 표로 돌아와 위치를 확인 할 수 있어 활용도가 높았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루브르 미술을 만나기 전 루브르의 역사를 훑어준다. 12세기 루브르가 파리를 지키는 요새의 역할을 했을 때부터 19세기 말 우리가 떠올리는 루브르의 모습이 되기까지를 찬찬히 설명해준다. 이처럼 충분한 배경 지식을 쌓아 루브르를 만날 준비를 마치고 작품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예술에는 역사가 담겨있다. 사람이 작품 활동을 하니 작품 속에는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가 직간접적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등 각 국가적 상황에 따라 작품에는 당시를 엿볼 수 있는 크고 작은 단서들이 곳곳에 녹아 들어있다.
일례로 프랑스 고전주의는 데셍을 중시하는 ‘푸생파’가 주를 이루었지만 로코코 시대가 개막하며 색채를 중시하는 ‘루벤스파’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니콜라 푸생의 <아르카디아의 목자들>, 장 앙투안 바토의 <키테라섬의 순례>를 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느껴진다. 작가의 화풍과 시대적 분위기가 더해져 특색 있는 예술이 탄생한다.
그래서 저자는 ‘그림은 읽는 것’이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작품을 눈으로 보고 즐기는 것도 물론 즐겁지만, 역사의 흐름을 읽으며 분석하는 것 또한 또 다른 즐거움이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에 대한 해답을 역사로부터 찾을 수 있다. 역사가 마치 예술 작품을 보고 떠올리는 의문들을 해결해주는 실마리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와 예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하고 싶다.
예술은 먼저 세상을 살아간 사람들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된다. 루브르 속 예술가들의 작품에도 여러 지혜가 녹아들어 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바로크 화가 시몽부에의 작품 <우의적 인물>에는 물질적 풍요보다 정신적 풍요가 중요함을 은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왼쪽의 날개달린 아기 천사 푸토(puto)는 풍요를 의미하는 귀금속들을 여신에게 건네고 있고, 오른쪽의 푸토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르키고 있다. 여신은 오른쪽의 푸토를 감싸며 그 쪽으로 몸이 기울어져 있다.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열망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에도 이와 같은 가르침을 주기 위한 그림을 그렸다. 그 당시의 분위기는 지금과 사뭇 다르지만 내포되어 있는 진리는 몇 백 년이 지난 지금에도 유효하다.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 않은지, 무엇을 좇으며 살아가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예술가들은 남겨진 작품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책을 읽고 난 후 루브르의 역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프랑스에 가면 방문해야할 관광지 그 이상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현재와 미래 더 먼 미래의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언제 방문해도 변치 않는 모습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듣고 있었다.
루브르는 단순한 줄글 보다 유럽의 역사를 생생하게 전하며, 이젠 만날 수 없는 예술가들을 만나게 하는 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신이 전부였던 중세, 인간 중심적인 르네상스, 종교 개혁 등 역사의 일대기를 작품을 통해 눈으로 직접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작품을 읽으며 작가가 숨겨둔 이야기와 가치관을 이해하게 된다.
또한 루브르는 나를 투영시키는 거울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오로지 나의 생각과 의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를 대입시켜보기도, 내 고민을 담아보기도, 내 생각을 비교해보기도 하며 ‘나’를 작품에 투영시켜 본다. 이 과정을 통해 나를 알고 나의 내면을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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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플랑드르, 네덜란드의 역사와 회화가 책 속에 함께 담겨 있어 온전한 이해를 가능케 한다. 작품을 바라보며 왜 이러한 주제를 선정했는지, 작가의 표현 기법이 왜 변했는지 등의 의문점을 이해할 수 있다. 완전한 이해가 바탕이 되니, 작품 속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되고, 심미적 감상에 몰입할 수 있게 되어 더욱 유익하다.
예술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를 활발히 소통하고 싶다면, <63일 침대 맡 미술관>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