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의 시대를 사는 이들과 함께 길을 찾고 해답을 찾고싶다.
나는 ‘기후위기’ 라는 말을 들을 때면 죄책감과 함께 알 수 없는 무기력감에 사로잡힌다. 기후위기로 변해버린 자연, 피해를 받은 동물들의 사진을 볼 때면 마음이 아려왔고, 내가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는 힘이 있을까라는 막막함을 느끼곤 했다. 이런 생각과 감정의 흐름은 회피로 이어졌다.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애써 외면하려고 했다.
하지만 완전한 회피는 어려웠다. 해마다 이상기온을 피부로 느낄 때 마다, 무더기로 쌓여있는 쓰레기와 오염된 바다를 볼 때마다 더 이상 모르쇠 할 수 만은 없었다. 당장 내년의 변화가 걱정됐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희망이 사라져갔다. 그렇게 나는 이 문제를 직면하여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만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라는 책. 왜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지구의 위기를 외면하게 되는지, 과연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 것인지에 대해 낱낱이 파헤치게 된다.
인류세(Anthropocene)는 크뤼천이 2000년에 처음 제안한 용어로서, 새로운 지질시대 개념이다. 인류의 자연환경 파괴로 인해 지구의 환경체계는 급격하게 변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지구환경과 맞서 싸우게 된 시대를 뜻한다. - 출처: 두산백과
솔직히 말하면, 인류세라는 단어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책에서도 나와 있지만 인류세라는 단어가 어색한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학자와 예술가를 제외하고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인류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반면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는, 인류세는 아직 공식 지질시대로서의 권위가 없는 상태라 우리가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며, 지질, 화학, 생물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이 통합되어 연구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류세에 대한 정확한 과학적 논의와 객관적 사실 입증은 사람들을 움직이는데 큰 힘이 없다. 당장 인류세에 살고 있는 우리 대다수가 위기감과 변화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 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화적 정서 즉 심리학의 영역에서 해당 문제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투발루라는 지역은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 상승이 일어났다. 투발루 외무장관은 원래 육지였던 곳 그러나 지금은 물이 차오른 곳에서 연설을 했는데,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있지만 다수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프랑스 언론은 ‘기후 변화’대신 ‘기후 고장’ 혹은 ‘기후 비상’이라는 표현을 써요. 대표적인 신문사 르몽드는 지구 위기를 다루는 전담팀을 환경팀이라고 부르지 않고 ‘플래닛팀’이라고 명명했죠. 기후뿐 아니라 생태 위기 등 지구의 전방위적인 문제를 다루겠다는 의지가 보입니다. -p.112
앞서 말한 대중의 심리를 동요하게 만드는 남극의 눈물, 투발루 수중 연설을 비추어도 잠깐의 관심에 그치는 게 아쉽다. 일시적으로 벌어진 재난이 아님에도 무디게 흘러간다. 기후 위기 관련 기사의 조회 수는 정말 낮고, 스포츠 뉴스 이전에 잠깐 언급하는 정도다. 대중의 무관심만을 탓할 수만은 없다.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 집요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2100년에는 해수의 수소이온농도가 pH 7.8에 접근하면서, 북국의 아라고나이트 아포화가 칼슘형성 유기체에 중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문구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저자는 이런 과학적 결과들을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아포화현상은 바다의 성질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 과포화된 바다는 석회를 방출하고 아포화된 바다는 석회를 흡수해 조개껍데기와 산호초를 녹이는 것. 결과적으로 pH 0.3의 변화는 대멸종의 티핑포인트라는 것이라는 의미를 해석해 주어야한다.
또한 프랑스 언론의 변화도 우리가 주목할 만하다. 프랑스 언론들은 기후에 대한 사실을 단순하게 보도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대중의 이해를 높여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의지가 돋보인다. ‘기후변화’라는 익숙하고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단어보다 ‘고장’, ‘비상’이라는 단어 선택에 대중들은 한 번 더 눈길이 간다. ‘환경 팀’이라는 평범한 단어보다 ‘플래닛 팀’이라는 단어가 전 세계적인 문제임을 상기시킨다.
크고 작은 변화와 관심들이 요해지는 상황이다. 이런 변화들에 부응해 관심을 갖고 조금씩 변해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단 나부터 차근차근 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최근에 방음벽을 돌면 예전보다 새가 줄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러다 정말 침묵의 봄이 오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죠.” 현실은 적나라한데 해결은 미비한 상황. 우리의 무기는 이슈화하는 것뿐이다. -p.156
그리고 나는 이 기후 위기를 극복하고자 다방면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한없이 작아지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주거 공간을 위하여 도로나 소음이 발생하는 곳에는 투명한 방음벽들이 설치되어 있다. 새들은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날아가 부딪혀 죽거나 심각하게 다치곤 하는데, 이를 기록하기 위한 어플 ‘네이처링’이 있었다. 누구나 참여 가능한 빅데이터 자연활동 기록 플랫폼이다. 오늘도 얼마나 많은 새들이 죽어가는 지 볼 수 있어 경각심을 일깨우고 현황을 파악하기 용이하다.
뿐만 아니라 사라지는 벌들과 오랑우탄에 대한 이야기도 놀라웠다. 그동안 자기 개발, 재테크 등과 같은 이야기에만 관심을 두고 정작 중요한 주변 환경은 잊고 살았음을 깨우쳤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 삶의 터전을 지키는 일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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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지구의 위기를 외면할까에 대한 답을 알고 싶었는데 그에 대한 답을 이 책을 통해 면밀히 살펴볼 수 있었다. 인류세를 살아가는 나는 어떤 자세로 어떤 실천과제를 안고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더 이상 외면할 수만은 없는 사안이다. 위기감의 만성화, 비정상의 일상화가 지속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인류세의 시대를 사는 이들과 함께 길을 찾고 해답을 찾으며 슬기롭게 해쳐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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