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을 넘어 분인의 시대로
무한도전 이후 캐릭터가 애매했던 유재석이
'유산슬'이란 트로트 가수 부캐, 부계정(온라인상 서브계정, 게임에서 메인 캐릭터 말고 키우는 서브 캐릭터를 뜻하던 말) 으로 나와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김신영이 '다비 이모'라는 부캐로 나와 하루 만에 엄청난 유튜브 조회수 기록을 새우며 신곡 뮤비를 발표했다
15년간 거의 무명 같은 생활을 한 코미디언 추대엽도
'카피추'란 부캐로 화제가 되었고 데뷔 후 첫 광고부터 시작해 10여 개의 광고를
몰아서 찍었다
기존의 캐릭터를 지키면서
필요 이상 소비되어 기시감이 많아진 이미지를 잠시 접어 두고
부케로 새로운 도전들을 하고
팬들은 그런 일종의 거대한 사회적 상황극에 동조해주고 환호까지 해주는 시대가 되었다
매우 새로운 사회현상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오히려 평범한 우린 이미 다양한 부캐를 사용하고 있었다
누구와 있냐에 따라서 내가 달라지는 시대이다 그건 시대의 요구이기도 하다.
예전의 아버지들은 회사에서 부장이면 집에서도 부장이고 어디서든 부장이었다
요즘은 회사의 나와 집에서의 나 친구들 사이에서의 나는 모두 각각의 존재로 분리되어간다
2020 트렌드로 멀티 페르소나가 주제로도 나오고 있다
일본의 문학가 히라노 게이치는 이런 현상을 목격하고 아이디어를 얻어 ‘분인’이란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개인을 한 번 더 나눈 개념인 ‘분인’
아날로그인 몸은 분신술을 쓸 수 없지만, 우리는 이미 디지털과 다양한 소셜 네트워크 속에 분신술을 쓰고 있다
자신의 개인 sns계정을 숨기기 위해 슬기로운 사회생활용 부계정을 쓰는 직장인들이 이미 많다
Sns에서도 전체의 자신보다는 자신의 어느 부분만을 트리밍 해서 보여주거나 확대 편집해서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이제 어플로 가공된 사진이 아니면 자신이 아니라고 까지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콘텐츠가
다중 인격을 병적인 소재로 다뤘지만
어쩌면 다중인격은 이제
병이 아니라 사회적 심리 진화의
한 단계로 봐야 하는 건 아닌가 싶다
그 진화의 단계에서 오는 돌연변이들을 우린 병적으로 취급한 건 아닌지 싶다.
예를 들어 82년생 김지영을 이런 시점으로 보면 분인화되지 못한 개인이 분인 되어서 만날 상대들을 자신이 리플렉션 시키고 있는 거란 생각이 든다
자기 엄마가 되고 친구가 되고 다른 사람이 되는 것 말이다
얼마 전, 공인인증서 제도가 폐지되었다
그럼에도 우린 매일 디지털 세상 속에서 내가 나인 것을 인증하며 살아간다
지문이나 얼굴 혹은 외우기 힘든 복잡한 비밀번호로 매번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불편한 신세가 되어버렸다
오프라인에선 개인화에서 분인화까지 되는 한편
온라인 세상에선 매번 자신을 점점 더 엄격하게 증명해야 하는 아이러니 속에 살고 있다
지금까지 인류는 실제 세상과 비슷한 디지털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이제 세상은 아날로그가 디지털을 닮으려는 식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건 디지털의 장점 때문이기도 하고 코로나 시대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단 하나의 타임라인에 모두가 한 번뿐인 기회들을
사용하는 기회의 독재시대에서 각자가 원하는 시간에 각자가 원하는 조건들을 골라서 살아갈 수 있는 온라인 다중 세상이 더 편해지는 사람들이 생기듯이 말이다(공중파 티비 VS OTT서비스가 대표적인 예가 될수도 있겠다)
나도 한때는
인생을 저장해 두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시점들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게임처럼 인생을 몇 번이고 반복할 수는 없다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처럼’ 실패한 시점부터 다시 또다시 해 볼 수는 있는 매직이 우리에겐 없지만
내 안의 여러 명의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좀 달라진다
자신 안에 있는 다양한 자신을 인정하고 오히려 잘 활용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 같다
다중이들아 이제 니들 세상이야 힘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