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인 안정감

가족도 노력이 필요해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괴물과 맞서는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괴물이 소리를 내는 사람을 공격하는 설정이라 관람하는 관객마저 숨죽이게 합니다. 영화에는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여러 가지 장면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영화의 핵심 설정인 괴물의 위협인데, 현실에서도 가족은 항상 크고 작은 삶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는 가족 사이의 갈등입니다. 아빠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딸에게, 가족을 지키기 바빠서인지 아빠는 자신의 마음을 마음껏 표현하지 못합니다. 가족 간의 갈등은 대부분 소통의 문제에서 비롯되곤 하지요. 세 번째는 중반부에서 가족이 잠시 흩어지자, 엄마가 사고를 당하면서 위기가 찾아오는 장면입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가족이 뭘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양한 의미와 정의가 있겠지만 가족은 ‘절대적 안정감을 주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잘못을 저질렀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외면할 겁니다. 그러나 가족은 꾸짖고 화를 낼지 모르나 결국에는 나의 옆에 서 있을 거에요.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10년, 20년 연락이 끊기면 다시 만났을 때 어색할 테지만 가족은 반갑게 얼싸안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저는 그걸 ‘절대적 안정감’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어떤 상황에도 결국은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 안식처인 거죠.

가족의 문제는 이런 절대적 안정감이 무너질 때 발생합니다. 가족 중 누군가 나를 싫어한다고 느끼거나, 내가 가족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입니다. 심하게 꾸지람을 하는 부모님, 몇 번을 말해도 듣지 않는 자녀, 남의 편을 드는 남편, 친구 남편과 비교하는 아내가 서운하다 못해 화가 난 경험 있으시죠?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풀리기 마련이지만 더러 마음에 남아서 쌓인 것들이 많아지면 안정감은 훼손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상대방이 주는 안정감 때문에 잘못하고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거에요. 상대방이 다 이해해 줄 거라고 믿는 거죠. 아마 친구나 직장동료였다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당장 사과했을 일인데도 말이죠. 이 글을 쓰는 내내 가족들을 서운하게 하고도 사과하지 못한 일들이 계속 떠오르네요. 그 순간을 돌이켜보면 가족들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 주기를 바랬었던 것 같습니다. 가족이 괜찮아 한다면 내가 잘못한 게 아닌 셈이 되니까요. 가족에 상처를 줬다는 부끄러움을 가려보려 했던 거죠. 나는 가족을 불편하게 하고도 가족은 나에게는 안정감을 주기를 요구하는 이기적인 마음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절대적인 안정감은 회복이 빠릅니다. 가족에게 서운했던, 서운하게 했던 기억만큼이나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에 마음이 사르르 풀어졌던 기억도 많을 겁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냥 잊어버린 일도 많을 거에요. 그렇지만 절대적인 안정감도 허물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곤란합니다. 노력한다면 더욱 절대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요.

사람은 태어나면 부모와, 조금 더 자라면 형제자매와, 결혼을 하면 배우자와, 마지막으로 자녀와 절대적인 안정감을 나누게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주어야 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난다는 거에요. 아이가 태어나면 정말로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저는 40살에 새로운 가족이 생겼어요. 이란성 쌍둥이로 딸과 아들이 태어난 겁니다.

아이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초보 아빠는 계속 허둥지둥 이었습니다. 아기 안는 법, 분유 타는 법, 기저귀 가는 법 등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산후조리원에서는 잠만 자던 아이들이 집에 와서는 끊임없이 울고 보챘습니다. 밤중에 두 아이가 모두 악을 쓰고 우는 바람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멘붕이 온 밤이 많았습니다. 산후우울증을 겪는 엄마들이 많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고된 나날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것은 결국 소통의 문제입니다. 아이들이 배가 고픈지, 엉덩이가 축축한지, 잠이 오는지 등등 자신의 상태를 울음으로 표현하면 부모가 알아채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 주어야 하는 거죠. 당연히 단번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받기만 하는 것 같지만 아기도 엄청나게 힘든 순간을 견디고 있습니다. 배고픔과 축축함과 온갖 괴로움 같은 것들 말이에요. 아기와 부모가 함께 힘들어하면서 배워나가는 셈입니다. 역시나, 가족에 대한 사랑도 꾸준히 쌓아가야 하는 것이네요. 오늘 당장, 가족들에게 사랑한다고, 미안했다고 말해주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