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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 개발자 Apr 18. 2016

대기업 개발자의 스타트업 생존기

01. Prologue : 삼성전자를 떠나며

 내가 대학 시절 그토록 입사하고 싶었던 회사. 그리고 여전히 많은 대학생들이 자신의 첫 직장으로 선호하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삼성전자를 가기 위해 1년 간의 삼성 소프트웨어 멤버십 생활을 거쳐 부푼 꿈을 안고 입사한지 3년 1개월이 지났다.


 그리고 올해 30살의 나이로 나는 돌연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만둔다고 하니 많은 분들이 이렇게 물으신다. 삼성이 힘들어서 그만두느냐, 집에 돈이 많은 거냐, 조건이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하느냐,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하느냐 등등. 전부 아니다. 누군가는 불에 달려드는 불나방을 지켜보듯 나를 지켜보며 혀를 끌끌 찰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나는 대한민국에서 창업을 하려고 그만두었다.


 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소위 수저론 계급에 따르면 '흙수저' 출신에, 그렇다고 서연고카포 출신의 소위 엘리트도 아니고 그다지 화려한 이력들도 없다. 하지만 고집해온 한 가지 엔지니어로서의 커리어가 있었는데 그것은 '풀 스택 개발자'였고, 나름 2~3가지 언어로 백엔드와 프론트엔드를 다루고 웬만한 작은 규모의 서비스는 뚝딱뚝딱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게 뭐? 근데 왜? 아니 근데 좋은 곳 놔두고 무슨 창업이냐고!" 


 물으실 분들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기업의 연봉과 복지, 그리고 대외적 이미지라는 것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혜택이기 때문이다.


 지구 상에서 가장 리얼한 평범한 개발자의 대한민국 창업 생존기를 작성하기 이전 그 의문을 풀어드리고자, 첫 번째 글은 Prologue라는 소제목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3가지다.


1. 미래에 대한 불안

 - 나의 업무 환경은 급변하는 IT 시장에서 쓰이는 SW 기술들과는 거리가 멀었고, 조직 내에서 이를 배워서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분위기 또한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기술적으로 도태되어있다고 느꼈는데 이는 삼성의 제조업 문화, 10년 전 선배님들의 노고가 고스란히 담긴 기존 시스템, 그리고 비즈니스 도메인과 관련이 있었다. 


어쨌든 결국 순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의 커리어를 쌓는데 한계가 있었다.


 380억 규모의 신규 프로젝트를 통해 성장할 기회를 얻었고 성장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그마저도 여러 환경적 요인들에 인하여 성장이 막혀버렸다. 회사 업무를 불철주야 열심히 할수록 내가 IT 업계의 SW 엔지니어로서 커리어를 쌓기보다는 삼성 내부에서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방향으로 가야만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미래는 바로 내가 따르는 분들이었고 내가 아무리 날고 기어서 그분들처럼 되어도 아직 미혼의 젊은 나에게는 내 미래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 탐탁지 않을뿐더러, 삼성 내부에서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내가 삼성을 자의든 타의든 떠나게 되었을 때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들은 안정적이라고 말하는 곳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난 미래가 불안했다. 


2. 죽어라 일해도..

 - "일을 했으면 얼마나 했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난 지난 2014년과 2015년의 기억이 생생하다. 2014년은 내 인생을 회사에 고이 바쳤다. 기존 시스템 대비 기술 기반이 새롭게 바뀌는 신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기술들을 이미 경험했으면서 개발자들의 실무를 리드할 인재가 없었기에 우리는 여러 위기에 봉착했다. 이에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꾸준하게 학습을 할 수밖에 없었고 나는 '두고 봐라 여기서 일하다 죽는 한이 있어도 이걸 해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매일 10시 출근에 새벽 3~4시쯤 퇴근하다가 연말 즈음해서는 아침 7시가 넘어서 퇴근하는 경우도 잦았다. 일찍 퇴근하려고 새벽 6시에 출근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다음날 새벽 4시에 퇴근한 적도 있었다.

 다음 해에는 그 신규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타 사업자 제공을 위해 관련 업무가 내가 속한 팀뿐만이 아니라 부서 전체 팀으로 넘어가면서 좀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위기 때는 도움이 안 되던 사람들이 오히려 불평했고,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야속하게도 문제점들만을 찾아내었고, 매뉴얼을 만들고 세미나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당연히 야근은 멈출 수 없었다.

 연봉? 복지? 대외적 이미지? 그런 것들이 머릿속에 떠올라본 적은 없다. 이런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는 다른 길을 모색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분명 내가 이런 생활을 하려고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무작정 N사의 경력 입사 지원 창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이직? 창업?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무작정 도피하고 싶은 마음으로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하지 않기 위해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퇴근하면 홀로 원룸 방에 누운 채로 고민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연봉 계약서에 서명하는 자리에 앉았다. 나는 다른 7명의 동기들보다 조금 더 좋은 고과를 받았다. 당시 부서장께서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동기들 중에 너 혼자 상위 고과를 받았으니까 내년에는 더 열심히 해야 된다"고. 여기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더 열심히 할 수 있을까? 


결국 죽어라 일해도 이 회사는 남의 회사였고, 나는 그냥 '대졸 사원 1명' 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3. 창의와 열정을 죽이는 대기업 시스템

 회사를 다니면서 진로에 대한 고민이 짙어졌을 때 나는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내가 결론지은 근본적인 원인은 내가 무슨 일에 열정을 느끼고 무슨 일을 좋아하는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그저 남들이 좋다는 길로 따라가다 보니 이 곳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무엇에 흥미를 느끼고 무엇에 열정을 쏟았는지 생각해보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채팅 프로그램 MAX에 영감을 받아 QBasic으로 만든 프로그램(프로그램의 이름은 컴퓨터와 욕하기였다..)을 천리안 자료실에 업로드하는 것을 시작으로 작은 웹사이트들, 음악 방송, 랩 작사와 녹음, 프로그래밍, 대학교, 멤버십, 회사.

 결국 내가 열정을 쏟았던 것은 나만의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런 추상적인 개념을 갖고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들을 따져보아 창업을 고려했고, 일단 무언가를 만들어보고자 다짜고짜 팀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2015년 삽질의 해가 열렸다. 삼재였다. 이 때는 직장을 다니면서 무언가를 만들어 창업을 하겠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다루기에는 내용이 많으니 다음 포스팅에 작성하려 한다. 

 어쨌든 간에 무언가를 만들어내고자 하는데에 열정을 쏟는 나란 존재가 대기업 시스템에서는 그저 문제의 소지가 될 뿐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열정적이고 실력이 좋다는 꼬리표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일을 떠넘기기 딱 좋은 핑계거리였다. 

 이 시스템 안에서는 시키는 대로만 잘하고,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된다. 내 일과 남의 일을 구분하여 (되도록이면 남의 일로 만들어)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스킬(?)이었고, 가장 중요한 것은 상사가 원하는 방향을 명확하게 캐치하여 일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가끔 냉소적인 이들에게 나는 고생을 사서 하는 바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2016년. 입사 4년 차. 나는 팀이 옮겨지면서 나의 업무가 줄어들었다. 일을 편하게 하는 법을 어느 정도 터득했다. 솔직히 편했다. 이미 창업을 결심한 상태였고, 회사가 나에게 얼마나 좋은 혜택을 주는지 계산을 끝마친 상태였다. 

 이렇게 편하게 일하는데, 보다 더 많은 월급이 꼬박꼬박 나온다. '허허.. 나의 성장 따위 뭐가 문제인가? 이런 좋은 조건의 회사를 다니면서 퇴직을 하겠다니 내가 갑자기 미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이 생활에 조금이라도 익숙해질까 봐 너무 두려웠다. 결론적으로 나의 미래가 결정될까 봐 두려웠다. 


이게 시스템이구나. 이게 피터 드러커가 말하는 황금 족쇄구나. 어제의 강렬했던 불만이 오늘은 사라진다. 오늘 생긴 불만은 또 내일이면 사라지겠지. 결국 불평, 불만을 가질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 시스템 안에서 나의 한계를 단정 짓고 싶지 않았고, 안주하고 싶지 않았다. 1살이라도 어릴 때 정해진 길을 벗어나 과감하게 나가보고 싶었다.


 이런 이유들로 창업을 시작하기엔 빈틈도 많고 미흡한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위기는 사람의 본성을 나타나게 하고, 새로운 기회를 엿볼 수 있게 한다고 믿는다. 지금의 나는 보잘 것 없지만 난 나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지 알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나타나게 될 것이며 그 진실의 결과를 떠나서, 내가 포스팅하는 이 생존기가 나와 비슷한 상황에 계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공감이 되고, 힘이 되고,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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