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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 개발자 May 01. 2016

대기업 개발자의 스타트업 생존기 (2)

02. 무언가를 만들어 창업한다는 것의 의미

 창업을 한 이후에 부딪치는 현실적인 어려움들과 여러 에피소드들을 다루기 전, 직장 생활을 병행하며 창업을 시도하기 위해 겪었던 일들을 먼저 적으려 한다. 나는 순수한 개발자였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서 창업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기에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


 2015년. 고민 끝에 나는 창업을 고려했고 그 시작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보자!'였다. ( Prologue에서 나는 2015년을 삽질의 해, 삼재라고 표현하였다. )


 개발자였던 나는 내가 알고 지내던 개발자들에게 부담 없이 주말에만 모여서 아이템을 기획하고, 간단하게 서비스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하였다. 

 그렇게 모인 팀은 풀 스택, 모바일, 임베디드 HW, 시스템/보안 등 나를 포함하여 총 개발자 4명이었으며, 매주 주말마다 아이디어 회의를 하였다. 


우리가 만들지 못하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실체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이러한 근거 없는 패기(?)를 갖고 우리는 수많은 아이디어를 쏟아내었고. 자신의 아이디어에 팀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피기도 하면서 꿈같은 이야기들을 쏟아내었다. ( 그렇다. 상상은 자유다. ) 그러던 어느 날, 한 명이 아이디어를 픽스하자며 단단히 준비해왔다. 직장인들을 위한 강의 서비스였다. 


 서비스에는 강의 공급자와 강의 수요자가 동시에 존재해야 했으며, 스트리밍 서비스가 지원되어야 했다. 또한 수익 모델은 강의 수수료와 광고였다.


 우리는 이를 지극히 개발자적인 관점에서 접근했다. 서비스의 초기 수용자는 누구고 그들을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지, 수익 모델이 작동하려면 어떤 조건들이 갖춰져야 하는지, 서비스를 개시했을 때 서비스를 특정 목표 시점까지 유지하는데 얼마만큼의 비용이 필요한지 등등 정말 수많은 고려 사항들을 제쳐놓았다.


 개발 외에는 무지한 우리가 그런 계획의 필요성을 알 리가 없었다. 어찌 됬든 간에 서비스(플랫폼이라고 불렀다.)를 일단 만들어 놓고 사용자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게 만들어야 된다는 논리에 많은 것들이 무너졌다. 


우리는 성공적인 모습들만 생각하며 꿈을 꾸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을 우리가 일부러 의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모두 개발자였기 때문에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했다. '모든 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구현 결과물을 만들자.'라는 생각이었고, 이에 디자이너와 마케터의 필요성을 느껴, 팀원을 구하기 위해 나는 광고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지인의 도움을 얻어 영상과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였다. 수평적인 조직문화, 열정, 창의를 운운하며 Marketer, Designer가 아닌 Creator를 찾는다는 내용의 감성적인 영상이었고, 간단한 팀원 소개 및 아이템에 대한 설명이 프레젠테이션으로 준비되었다. 그렇게 디자이너와 마케터가 합류하였다.


 그리고 혼돈이 찾아왔다. 이 서비스를 사용할 구체적인 타깃이 존재하지 않았다.


 글을 적는 내내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이 든다. 개발자는 이런 착각에 쉽게 빠지는 걸까?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고, 너무 만드는 것에만 치중한 것이다. 우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장인정신을 갖고 만들면 누군가는 그것을 사용해줄 것이라고 안일한 착각을 한 것 같다. (어쩌면 이러한 생각들이 직장에서 느꼈던 개발자의 처우에 대한 반작용 일지도...)

 합류한 디자이너와 마케터의 의문과 반발이 심해졌고, 우리는 그 무엇도 만들지 못한 채 2개월 간 탁상에 앉아 답이 안 나오는 회의를 하였다. 누군가는 개발이 진행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었고, 누군가는 기획에 불만을 품었다. 그리고 기획은 탁상 위에서 온전히 우리 머릿속의 생각만으로 바뀌고 또 바뀌었고 나중에는 강의가 아니라 간단한 노하우와 팁을 제공하는 서비스로 변경되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밖으로 나가 우리의 고객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이러한 과정들을 겪으며 나는 생각했다. 도대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나는 그때부터 스타트업의 경영과 마케팅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여러 사건들이 있고 나서 아이템은 또 바뀌어 개발자와 디자이너들을 위한 SNS 기반의 지식 공유 서비스로 변경되었다. 일단 서비스의 초기 수용자는 우리 팀과 우리 팀의 네트워크였고, 빠르게 프로토타이핑을 하고자 했다. 1달 만에 반응형으로 만들어진 웹 서비스와 안드로이드 앱 프로토타입이 나왔다. 

 이때 또다시 기획에 만족하지 않는 마케터에게 나는 지금 이 서비스의 잠재 고객을 찾는 일과 온라인 마케팅 전략을 고민해달라고 역할 요청을 했으나, 그로부터 1주일 뒤에 그만하겠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그리고 시스템/보안 개발자는 갑자기 풀 스택 개발을 하겠다며, 다른 교육 서비스 관련 스타트업에 합류하였다. 두 명이 떠나가고 이 서비스를 지속하고자 하니 수익모델이 없었고, 수익 모델 없이 지속하기에는 우리에게 확신이 없었다. 그렇게 아이템은 또 바뀌었다.

 이번에는 임베디드 H/W 개발자로부터 아이디어가 나왔다. 모바일 자이로 센서를 통해 아두이노와 모터가 장착된 미로를 컨트롤하여 구슬을 탈출시키는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장난감이었다. 전시를 하여 초등학생 어린이들과 학부모들로부터 호응을 얻었지만 결론적으로 양산을 하기 위한 자금이 없어 이 또한 실패했다.

 이러한 과정들을 거치는 동시에 나는 회사에서 야근을 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고, 매니저에게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 회사, 집 그리고 그 사이까지. 제대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우울했다. 

 그렇게 11개월이 흘렀고 2015년의 마지막 1달인 12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태까지 만나지 못한 여러 사람들을 마음껏 만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신기하게도 자연스럽게 나의 어지럽던 생각들이 정리되었는데, 결론은 여태까지의 이 모든 활동들이 그저 동호회 활동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된 이유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정리를 해보았다. 


1. 리더의 부재

 어떠한 조직이든 간에 리더는 반드시 필요했다. 우리는 수평적인 문화라는 단어 아래 꿈을 꾸는 몽상가들이었던 것 같다. 그러면 결정적으로 리더는 어떠한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하는가? 바로 우리가 만드는 제품/서비스에 대한 믿음을 주는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 제품/서비스에 대한 믿음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바로 우리가 만드는 제품/서비스가 시장에서 통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로써 최종 의사 결정권자가 되는 것이고, 그에 따라 막중한 책임과 여러 역할들이 생겨나는 것이었다.


2. 사업 기획이 아닌 아이템 기획이었다

 우리는 여러 아이템들을 기획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사업 기획이 없었다. 수익 모델이 없었던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의 성공 사례들을 떠올리며, 수익 모델이 없어도 일단 사람들에게 가치가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내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쉽게 생각해버렸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페이스북 창업자 주커버그는 세계 최고의 명문대인 하버드대생이었고 그만큼 좋은 투자자들을 만났다. 카카오톡의 김범수 의장은 이미 성공한 자산가였다. 결론적으로 가치 있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끊임없이 가설을 세워나가면서 검증을 반복하는 일인데 우리에게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자금도 없었고 조달할 능력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익 모델이 없이 현실적으로 서비스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3. 병행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병행이 힘든 이유는 단순히 일을 많이 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자고 일어나 다음날 회사에서의 하루 일과를 보내고 나면 안일해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이다. 모두가 회사를 다니고 있었기에 우리 중 절실한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4. 사실은 전문가가 아니었다.

 마케터는 우리에게 필요한 온라인 마케팅을 해본 적이 없었고, 온라인과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 보안/시스템 개발자는 그 분야를 좋아할 뿐이었지 대학교 졸업 이후로 해당 분야에 대한 프로젝트 경험이 없었다. 가능성을 보고 같은 팀이 되었고, 모두가 해당 분야에서 성장하기를 원했지만 사실은 본인이 어느 분야를 잘하고 좋아하는지 어느 분야를 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우리는 하고 싶은 것과 해야만 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했다.

 일단 각 분야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우리 중에 가장 잘 아니까 '이 사람이 전문가'라고 생각하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이 필요했고, 우리에게 필요하고 적합한 사람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했었다. 


5. 모든 게 내 잘못이다.

 결국은 이 모든 게 내 잘못이고 내 책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팀원들을 모았지만, 적극적으로 리더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나름대로 리드를 할 때도 있어 보였지만 팀에서 나는 그저 개발자였다. 아무도 사업 경험이 없었다. 리더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의 말에도 당연히 힘이 실리지 않았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이 나의 부족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지금도 나의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다.


 직장을 다니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창업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 직장 안 다니면서 해도 그렇다. ) 요즘 들어 직장을 다니시면서 여러 새로운 시도를 해보시는 분들이 주변에 늘고 있음을 느낀다.

 갑자기 최근 10일 간 구독자 분들이 급격히 늘어나 많은 분들에게 나의 시행착오에 대해서 공유하기가 부끄러운 마음도 들지만, 혹시라도 시행착오를 겪기 전의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시기를 바라고, 어리석었던 나와는 달리 좋은 성과를 만들어 나가실 수 있기를 기원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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