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초라한 시작
3번째 글을 시작하기 전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 구독자 여러분들께 아래와 같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정말 예상치 못하게 많은 분들께서 댓글과 좋아요를 남겨주셨고, 무려 700분이 넘게 저의 글을 구독을 해주고 계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채널에서도 공유가 되는 모습들을 지켜보았는데요. 많은 분들의 이러한 관심이 저에게는 분에 넘치는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광에 답해드리지 않고 묵묵히 생존기만 작성하다가는 원성을 살까 봐서 ^^; 이렇게 감사의 글을 짧게나마 남깁니다. 연락처를 남겨주신 분들께 연락드리지 못하고, 여러 소중한 댓글들에 대하여 일일이 답변해드리지 못해서 굉장히 죄송스러운 마음뿐입니다.
저는 여전히 스스로가 바보 같다고 여길정도로 여러 실수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생존을 위해 고전 분투하고 있습니다. ^^; 이전 직장을 그만두고 뛰쳐나와 제가 마땅히 집중해야 할 업은 개발을 넘어서 사업이 되었고 그 외에 다른 일들은 부가적인 일들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부분으로 인해 브런치 글 발행이 늦고 댓글에도 일일이 대응해드리지 못하는 점들에 대해서 양해를 부탁드리며, 묵묵히 글만 작성하는 저를 너무 미워하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평범한 개발자 드림.
2016년 4월 1일부로 나는 내가 만든 직장(?)으로 출근했다.
법인 설립부터 사업자 등록까지 모든 것이 처음이기에 생소한 단어들이 머릿속을 채웠다. 문제없는 이행을 위한 준비 작업에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먼저 이전 직장에서 빠듯하게 모은 자본금을 개인 통장에 넣고 한 비즈니스 센터와 임대 계약을 했다. 여러 가지 변수들을 살피고 준비를 마친 뒤 온라인 법인 설립 시스템을 통해 법무사의 도움 없이 비교적 수월하게 1주일 만에 법인을 설립할 수 있었으며, 사업자 등록까지 포함하여 10일 정도 걸렸다. 진행 중 딱히 기억나는 부분들은 정관 작성, 중과세 면제, 사업자 등록 등이었다.
평범한 개발자 Tip
- 법인과 주주는 분리된다. 즉, 회사가 벌어들이는 수익이 그대로 나의 수익이 되는 게 아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오해하고 계시는 분들이 꽤 계셨다.
- 만약 사업 초기 무급으로 시작하려 한다면 대표이사와 이사들이 일정 기간이나 일정 수익이 발생할 때까지 무보수로 일한다는 점을 정관에 명시해야 하고, 추후 국민연금, 건강보험공단에 무보수 임을 증명해야 한다.
- 수도권 과밀 억제권 지역에 사업장 등록 시 법인 등록세를 3배로 중과하는데 벤처기업 직접 시설 내 입주 하고 중과세를 면할 수 있는 업종(예를 들어 소프트웨어 개발업)으로 사업을 영위한다면 중과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
- 정관과 사업자 등록에 법인 설립 목적과 업종을 작성하는데, 추후 변경할 때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최대한 많이 작성하라는 조언을 받기도 했었다. 나는 일단 실제 사업을 영위할 업종들만을 작성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법인계좌 개설이었는데 계좌 개설을 위해서는 거래 계약서가 필요했다. 이 의미는 당장 우리 회사와 거래할 고객이 있어야 은행에서 법인 계좌를 개설해 준다는 것이다. 무언가 반대가 된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나는 운이 좋게도 바로 나와 계약해줄 고객이 있었고 막힘없이 계좌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느낀 것은
법인 설립은 최대한 늦춰야 한다는 것이다.
법인이 설립되고 등기됨으로써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이 늘어났다. 회사의 자금 운용을 위해 회계/세무는 빠질 수가 없었고, 그에 따라 회사 운영에 대한 지식을 갖춰나가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개발도 해야 했다. 영업도 해야 했다. 멤버들과 사업 아이템의 구체화도 시켜야 했다.
그렇다고 새로운 인재를 고용하는 일은 회사 입장에서도 나의 입장에서도 사치일 뿐이었다. 고로 여러 절차들에 의해 발이 묶이기도 하고 생각지 못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도 생기게 된다. 또 법인 설립은 쉽지만 그에 비해 폐업은 훨씬 복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특별한 관계에 놓여있었던 회사 창업 멤버들이 있었기에 나는 그들과 함께 배를 띄운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부분이다.
먼저 우리 회사는 자금이 많지 않았으므로 생존을 위해 설립 직후 개발 외주를 받기 시작했다. 정말 운이 좋게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찾지 않았지만 누군가가 나를 찾아주었다. 나는 일단 무조건 배운다고 생각하고 이전에 조사해놓았던 자료들을 바탕으로 적정 가격을 생각한 뒤 미팅을 갖고 계약을 했다.
계약금이 얼마인지 어떤 일인지를 떠나 (이 시점에서 계약되는 일들은 물론 작은 일들일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날은 앞으로도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긴장감을 감출 수가 없었고, 인감도장으로 계약서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며 날인하는데 손에 인주가 묻기도 했다. 클라이언트 분들의 요구사항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고 클라이언트 분들도 결과물에 만족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들은 이전 직장에서의 경험들이 정말 크게 도움되었다. (개발에만 집중하지 못한다고 불평했던 개발 외 다른 일들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평범한 개발자 Tip
- 법인 인감도장은 인주가 필요 없는 도장(만년도장, 잉크 도장 등으로 불린다.)으로 만들어 쓰는 것이 예상치 못한 스트레스를 줄이는데 효과적이다.
회사 통장으로 계약금이 결제되었을 때의 쾌감은 이전 직장에서 받던 월급보다 더욱 컸다. 아마 스스로 발생시킨 수익이라는 점에서 그러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평소에 더 좋다고 판단했던 기술들을 기반으로 결과물들을 만들어내었고, 시행착오 끝에 더 많은 레퍼런스들을 개발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클라이언트 분들을 통해 정리된 요구사항들은 우리 회사가 특정 솔루션을 개발해 나가는데 포석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때 나는 나와 우리 회사에 점점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것을 알지 못했다.
회사를 만들고 운영해나간다는 것 그리고 사업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과연 엔지니어 출신들인 우리가 잘 알고 있을까?
창업을 하기 전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면서 본인의 창조적 본능을 충족시켜나가고, 자유롭게 적용하고 싶었던 최신 트렌드 기술들과 방법론들을 적용하기도 하면서, 모두가 자기 일이라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팀이 사이좋게 단합하여 모든 일들이 술술 잘 풀려나가는 장면들을 상상하고 즐거움을 기대하게 된다.
반면 수익을 발생시키고 자금을 조달하는데 따르는 고통들. 예상치 못한 위기가 발생했을 때 무언가에 탓하지 않으며 흔들리지 않고 문제에 집중하여 반드시 그 문제를 해결 해나가야만 하는 고통들은 잘 생각하지 않는다.
창업은 놀이가 아니다. 사업이다. 그리고 여기는 실리콘 밸리가 아니다. 대한민국이다. 어려운 환경일수록 더더욱 본질에 집중하고 우리도 모르게 생길 수 있는 허영심을 경계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에게 지도는커녕 나침반이 하나 있었는데 나침반은 깊은 동굴 속을 향하고 있었다. 눈 앞에는 벽들과 높은 장애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확실한 것들이 인지되기 시작하면서 두려움은 커지고 머릿속에 혼란은 커져만 갔다.
우리는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다. 대한민국에 태어나면 누구나 열심히 노력할 것을 독려받는다. 하지만 과거를 돌이켜보면 무엇을 열심히 해야 하는지는 항상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리는 무엇을 열심히 해야 하는지 우리 스스로가 결정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한 열정과 노력은 우리가 바랬던 성취를 보장하지 않는다. 노력이 우리를 배반하는 것을 지켜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그러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무엇을 성취해야 하는가? 근본적으로 무엇을 위해 열심히 일하여야 하는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문제를 정의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었다. 생존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더 크고 강력하게 다가와 수많은 질문들을 머릿속에서 되내이게했다.
회사와 창업 멤버들. 내 위치에서 직시한 현실들. 눈에 보이지 않는 불확실함들. 두려움과 혼란의 원인들. 그리고 다시 고장 난 나침반을 새롭게 고치는 과정들. 이 글을 읽으시는 어떤 분에게는 이 글이 꼭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다음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 이어서 작성하도록 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