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몰입과 회복을 반복하는 일상에 대하여
그날은 설명이 필요 없는 하루였다.
마음속에 뭔가가 가라앉고 있었지만, 그 감정을 굳이 이름 붙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름을 붙이지 않았기에 더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 노을이 물들고 있었다.
하늘은 조용히 붉어졌고,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노을이 예쁘다, 정말"
말은 짧았지만 그 순간 내 마음은 길었다. 감정이 먼저 움직였고, 그 감정을 아이에게 전했다.
그 말에 아이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설명도 없고, 분석도 없었다. 그 순간이 전부였다.
자주 감정을 글로 써낸다.
감정을 이해하려는 태도는 나의 재능이자, 즐거움이며 어느덧 오래된 습관이 되었다.
그런데 그 재능이 어느 날은 나를 질식시키는 장치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감정을 놓아주지 못하고, 늘 정리하고 설명하려는 태도. 그건 마치 매일 주어지는 숙제 같기도 했다.
감정에 몰입하는 방식은 때때로 벼랑 끝 같다. 벼랑 끝까지 갈 것처럼 파고든다.
몰입하는 순간을 사랑하지만, 그 끝엔 늘 조용한 질문이 따라온다.
"이 몰입이 내게 도움이 되는 게 맞는 걸까?"
깊이 잠수한 감정의 강에서, 다시 올라와야 하는 현실은 가끔 낯설다. 감정의 뿌리를 찾아 샅샅이 파악했다는 개운함과 동시에 묘한 허무가 뒤따른다.
세상과 멀어지고 나 자신에게는 조금 가까워진다.
그래서 자주 걷고, 청소를 한다.
걷기의 리듬은 생각의 리듬과 닮아 있고, 청소는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는 방식이다.
몸을 움직일 때, 마음도 조용히 움직인다. 그 순간 감정은 '말'이 아니라 '숨'으로 흘러간다. 말보다 더 깊은 언어로, 나를 환기시킨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혹시 나는 지금 소모된 전지 상태로 계속 전력질주하고 있는 건 아닐까?"
늘 천천히 회복 중인 상태라고 믿었지만, 어쩌면 그것은 정서의 피로를 감춘 회복 '시늉'이었을지 모른다. 표면은 회복된 것처럼 보여도, 그 아래 감정의 배터리는 30%만 채워진 채 충전과 방전을 반복하는 것 말이다.
감정을 글로 쓰는 것이 익숙한 만큼 언어화된 감정은 잘 다룰 수 있다. 하지만 감정에는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 그저 느껴지고, 흘러가야 하는 것들.
그 순간은 '쓰는 것'보다 '머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오늘처럼, "노을이 예쁘다"는 말 하나로도 충분했던 순간.
요즘 나는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있다. 그것은 물리적인 집일 수도 있고 마음 안의 은신처일 수도 있다. 그 안에서는 좀 더 단순하게 존재할 수 있다. 어떤 날은 쓰고, 어떤 날은 걷고, 어떤 날은 그저 바라만 본다.
도피일 수도 있지만, 그 또한 회복하고 다시 연결되기 위한 준비다.
그 모든 행위는 감정의 숨구멍이 되어 내 안을 천천히 다시 채운다.
그 숨은 다시 나를 살게 하는 작은 숨결이다.
살아내자, 오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