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나를 되돌리는 느릿한 걸음
구석구석 박혀있는 물건들, 꺼내지지 않은 여름옷, 들어가지 않은 봄 옷, 질서 없이 가득 쌓여있는 냉장고...
이게 정말 사람이 사는 집이 맞나 싶었다.
뭐부터 하면 좋을까 하다가 막막해졌다.
'어디서부터 손댈지 모르겠어.
... 그냥 우선 하나라도 하고 싶은 걸 해보자. 쉬워 보이는 거.'
'더우니까 오랫동안 꺼내지 않았던 얼음틀 케이스를 꺼내보는 거다.
그리고 설거지하고 얼음을 만들자.'
냉동고 한쪽에 박혀있던 얼음통을 꺼내어 설거지하고, 베란다 햇볕 아래 바싹 말렸다. 날이 더우니 물기는 금방 사라졌다. 깨끗해진 얼음틀 케이스를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미소 한 줄과 함께 불쑥 그런 생각이 튀어나왔다.
얼음틀에 물을 조심스레 부어주고 다시 냉동실에 넣었다.
다음 날 아침, 냉동실을 열고 얼음을 확인했다. 정리되지 않은 냉동실을 보니 또 막막해졌다.
단단히 언 얼음을 틀어 얼음통에 넣었다. 다시 물을 채워 넣고 사진을 찍는데, 문득 얼음틀이 있는 배경이 깨끗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 얼음을 설거지하는 김에 주방 정리도 했지.
조금이라도 깨끗해진 주방을 보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그러다가도 여전히 기분은 오락가락. 사실 좀처럼 의욕이 나지 않는다.
힘을 빼자.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자. 그저 이런 사소한 걸 하고 잠깐이라도 기분 좋아지자.
보잘것없는 거라도 새로운 정리를 하다보면 언젠가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될 수도 있다.
하루에 하나, 내가 선택한 행동을 하는건
아주 작지만 삶을 내 쪽으로 끌어오는 힘이 있다.
그렇게
망가진 나를 되돌리는
느릿한 걸음을 걷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