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 사진이 올려진 제단에 흰 국화 한 송이를 놓았다.
고개를 들어 사진 속 표정을 살폈다. 마지막 그의 모습이 궁금했다.
그와의 만남 이후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환한 웃음이, 영정 앞을 휘돌아 너울대는 백사 같은 흰 향연 속에서 허탈하게 비쳤다.
'거짓말이야, 그가 저런 표정을 지을 리가 없지...'
일행 중 누군가가 탄식하듯 나지막이 말했다.
"자, 봅시다."
돗자리를 밟고 우두커니 섰던 사람들은 제각각 고개를 떨구었다.
'친구여, 이제 아프지 말고 걱정 없는 평온한 곳에 가서 영면하이소.'
그렇게 한동안 흐르던 침묵을 깨고 어디선가 시작된 숨죽인 훌쩍임이 퍼져 좁은 공간을 채워 갔다.
마지막으로 그와 눈 맞춤을 한 일행은 줄지어 고개 숙인 아들과 딸의 어깨를 토닥이고 하나둘 빈소를 빠져나갔다.
빈소를 지키는 아이들 곁에 당연히 함께 있으리라 짐작했던 그의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장성한 아들과 딸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주고 일행 중 마지막으로 빈소를 나왔다.
나는 무겁게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일그러진 입술로 꾸욱 눌러 참았다.
나와 동갑인 그는 이곳에 오기엔 아직 이른 사람이 아닌가.
양쪽 관자놀이 안쪽이 쑤시듯 조여 오고, 바닥이 일렁이듯 흔들거렸다.
그는 어젯밤도 치매에 걸린 모친 옆에서 잠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다시는 깨어나지 않았다.
평소 그는 어머니의 저녁 공양을 위해 손수 찬거리를 장만하여 반찬을 만들고 넘기기 좋게 국을 끓여 공양했다. 때문에 그는 퇴근 시간 직후 연기처럼 사라져 동료들 사이에 오해를 불렀다.
술을 좋아했던 그지만 함께 술자리를 하려면 최소 일주일 전에 그에게 통보해야 했다. 분가한 아들이나 딸에게 할머니의 저녁 한 끼 공양을 허락받아야 가능했기 때문이다.
나의 기우였을까?
아이들의 어둡고 슬픈 표정 속에서,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이 가져온 슬픔 이면에, 당장 치매 할머니를 누가 어떻게 돌봐야 할지 걱정하는 눈치가 비쳤다.
치매 할머니의 부양은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온전히 아버지의 몫이었다.
어쩌면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떠난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불쑥거렸다.
'참, 당신은 이승을 넘는 그 고갯길마저 편치 않았겠구려...'
그와는 고작 1년 전, 시니어 직장인 이곳에서 처음 만났다. 각자 다른 곳에서 정년 이후 소일거리를 찾아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여기까지 흘러왔다.
65년간 숨 가쁘게 달려온 그 앞에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
치매에 갇힌 어머니는, 그가 끝내 풀지 않은 마지막 매듭이었다.
그는 그 매듭을 스스로 묶었다.
그는 죽음 직전,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도 요의나 변의를 호소하는 어머니의 불편함을 해결하려는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는 엎어진 채 왼손을 뻗고 있었다. 닿지 않았을 어머니의 어깨를 향해. 마지막까지 손을 거두지 않았다.
그는 살면서 자의반 타의 반 그의 몸 여기저기에 묶었던 매듭을, 하나 둘 풀기 시작했다. 스스로 풀기도 하고 상대가 알아서 풀어가도 굳이 막지 않았다.
아이들이 분가할 때까지 참아왔던 아내와의 동거 생활을 청산한 지도 꽤나 지났다.
"난 너무 힘들게 살았어. 이제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을 거야."
아내가 원해서 풀어간 매듭이었다.
아득바득하면서 모아온 평생의 집과 재산을, 그는 한 줌도 가져가지 않았다.
악착스러운 삶 끝에 고작, '그 어떤 것도 끝내 소유하지 못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고 희미해져가는 마지막 순간, 그는 쓰디쓴 웃음을 짓지 않았을까.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영정 사진 속 밝은 웃음.
아이들은 숱한 아버지의 사진 중에 그것을 찾아냈을 것이다.
아이들은 그런 아버지의 표정을 원해서 선택했을 수도 있었지만, 아버지와 얽힌 매듭을 아버지 스스로 풀고 마음 편히 떠나시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장례식장 밖은 가랑비가 흩어지고 있었다.
나는 우산을 준비하지 못했다.
파란만장한 삶이 심은 거친 머릿결 끝에 매달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영정사진 속 그의 슬픈 미소도 내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