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은 비의 도시
2017/09/05(화) | 런던 3일 차
빨간 이층 버스를 타고
오늘의 목적지는 '소호'다.
식사를 마치고 침대에서 조금 뒹굴다, 오후 1시 반쯤 숙소 앞 버스 정류장에서 98번 버스를 타고 런던 중심지로 향했다.
사실 1시간 반을 걸으면 도착하는 거리지만, 어제 많이 걸어서 귀찮은 마음이 들었다. 처음 타보는 이층 버스는 조금 불안한 느낌도 있었지만,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롤러코스터는 역시 맨 앞자리 아니겠는가 이층 앞 창가에 앉아 밖을 보며, 사람들과 도시를 눈에 담았다. 그리고 명품 상점이 있는 거리에 들어서니 히잡을 쓴 여성들이 유난히 많이 보였다. 그리고 문득 들었던 생각이 ‘어차피 가릴 텐데 왜 명품을?’이었다. 이건 차별적 발언이 아니고 그냥 떠오른 생각이었다. 조금 길어지는 여행을 하다 보니 인생에 도움 되지 않는 잡생각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잡생각이 삶에 있어 쓸모는 없지만, 그게 또 나름의 기록이 된다.
마치 신사동 가로수길 같은 소호, 그리고 비
소호에 도착했을 때의 첫인상은 의외로 단순했다.
신사동 가로수길 혹은 홍대 연리단길이 떠올랐다. 힙스터들이 모여있는 스트릿 브랜드가 있었고, 곳곳에 패션지에 나올 법한 상점들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주말에 와야 하는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호에서 먼저 한 일은 첼시 스폰이었던 '3'에서 유심을 구매하고, 골목을 천천히 훑으며 걸었다. 거리 구석구석 걷다 보니 잡지사, 편집숍, 섹스숍, 길거리 음식들까지 뒤섞인 풍경이었다. 맛있어 보이는 베트남 음식을 보니 배가 고파왔다. 비프 오이 덮밥을 구매 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점심을 해결했다.
소호를 지나 걷다 보니 이정표를 따라 트래팔가 광장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길에 런던의 변덕스러운 날씨가 오늘도 어김없이 비를 만들어냈다. 영국은 정말 수시로 먹구름이 끼고, 비가 내린다. 구름이 패시브인양 항상 하늘에 걸려 있고, 우중충한 날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지금까지 거짓말인 줄 알았다. 갑작스럽게 내리는 비를 피해 근처 펍 앞 벤치와 그늘막 아래로 뛰어들었다. 비를 피하며 보니 나만 뛰어서 피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옷을 입거나 후디를 덮어쓰고 그냥 걸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던 어떤 사람은 잠시 멈춰서 후디를 꺼내 덮어쓰고 다시 출발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 장면에서 '아~ 패션도 결국 환경에 맞춰 변화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보다 기록이지
비가 그치고 트래팔가 광장에 도착하니 근처에 포트레이트 뮤지엄이 있었다. 여행을 하며 유료로 들어가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입장하지 않았지만, 무료로 방문할 수 있는 장소는 최대한 방문했다. 우연히 방문한 포트레이트 뮤지엄은 초상 사진과 그림들로 벽을 채우고 있었고, 지금은 2017년 초상화 컨페가 한창이었다. 천천히 둘러보며 마음에 드는 작품 하나에 투표도 하고 나왔다. 이후 광장을 지나 빅벤과 런던 아이가 보이는 다리로 걸었다. 평일 낮이라 사람은 많지 않았고, 그래서 더 좋았다.
런던 아이를 지나 서머셋하우스라는 장소를 찾아 움직이다 또 소나기가 쏟아져 내렸다. 런던 아이 앞 다리 아래에는 보드 타는 친구들이 모여 있는 벙커 같은 공간가 보였고, 비를 피해 들어섰다. 이 곳엔 보드를 타며 스킬을 연마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꽤 오랜 시간 그들을 보며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비가 잦아들고 다시 서머셋 하우스를 찾아 이동했다. 10분 남짓 구글맵을 보며 걸어 도착한 곳은 건물들 사이 중정이 있는 곳이었고, 내가 찾던 장소였다. 현재 위치를 저장해 두고, 다시 트래팔가를 지나 차이나타운에 있는 아시아 마켓으로 향했다. 마켓에서 라면을 사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움직였다. 길을 걷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고, 라이브 방송을 하는 것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 구글맵을 찾아보니 오데온 극장이라는 곳이었고, 빅토리아 여왕 관련 영화를 개봉하는 날이었다. 우리나라의 시사회도 가본 적은 없지만, 시사회라기보다 시상식에 가까웠다.
곧 행사가 시작할 분위기였지만, 끝내 시작은 보지 못했다. 라면을 들고 저녁 7시 반쯤 숙소로 돌아와 맥주와 뽀글이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오늘은 소호를 시작으로 오데온 극장까지 나름 중심가라 생각하며 많이 걸었다. 이제 토요일 밤에 둘어볼까라는 생각을 했다.
오늘 하루가 남긴 질문
도시는 여러 번 봐야 비로소 제 얼굴을 드러내는 걸까,
아니면 내가 변해야 같은 풍경이 다르게 보이는 걸까?
오늘의 지출
버스 3.00파운드[1.50 × 2(오이스터 카드)]
2017년 당시 오이스터 카드는 4.5파운드가 넘으면 무제한 무료 탑승 할 수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유심 20.00파운드
3(한때 첼시 메인 스폰서 통신 기업, 1개월 12GB)
점심 5.00파운드
(소호 스트릿 푸드 : 밥, 불고기)
신라면 4봉 2.80파운드
버드와이저 4캔 4.50파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