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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이터한 May 04. 2024

#20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Elio Elio Elio Elio"


 #20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Elio Elio Elio Elio"


(몇 년 전에 써놓았던 글을 발행했습니다)

글을 써야 마음이 정리되고 위로받을 수 있는데 그동안 본의 아니게 놓치고 있었다. 그동안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적었기도 했다.

그래도 어제 길바닥에서 넘어져 무릎이 부어오르는 바람에, 오늘 하루종일 누워 있느라 이 영화를 연속 두 번으로 마음껏 볼 수 있었다. 제출 목적으로 드라마를 보고 글을 쓰는 것 말고, 마음이 동해서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게 엄청 오랜만이다. 이 영화가 너무 좋아서, 그리고 오랜만에 가진 혼자만의 시간이 만족스러워서 지금 진짜 행복하다.




엘리오와 올리버가 너무 좋고, 풍경과 색감이 아름답고, 영상미와 연출이 황홀하고, 음악이 잔잔하지만 요동치게 만들며, 절제되어있지만 꾹꾹 눌러 담은 대사가 마음을 울리는 영화다. 배우들과 제작진들이 작품 안에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몰입하고 있다면, 관객들은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이 영화가 그랬기 때문에, 너무 좋아서 슬픈 기분을 오랜만에 느꼈다. 이 감정이 뭐냐면, 먼곳으로 여행가서 일정의 중간 즈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고, 유독 잘 맞는 친구들이랑 지내다가 한 학기가 끝나갈 때 느끼는 감정과도 비슷하고, 완벽하다고 생각한 작품이 끝나갈 무렵 느껴지는 감정이랑도 비슷한 감정이다. 지금이 너무 좋아서 영원했으면 좋겠는데 언젠가 끝날 거란 생각에 슬퍼지는 그 감정인데 설명이 될지 모르겠다. 엘리오와 올리버의 순간이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 한 마음으로 영화 작업에 몰입하던 사람들의 순간도 지나갔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서럽다.


영화를 여러 번 보니, 찬란하고 쨍한 여름 화면들이 마냥 풋풋하지만은 않다. 서툴고 순수하고 솔직한 엘리오가 고민하는 모습들, 자신감 넘쳐보이지만 다정하고 두려움이 많은 올리버의 모습들이 보여 애틋하고 아린다. 걷는 모양새, 서로를 쳐다보는 시선과 서로를 대하는 태도, 달라지는 말투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된다.




처음 만나는 부분에서 시작해, 서로를 신경쓰다가, 알아가며 친구가 되고 사랑하게 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담백하면서 특별했다. 엘리오와 올리버가 서로에게서 다정함을 느끼는 장면들도 정말 좋고, 특히나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사랑의 감정을 고백하고 느낀 장면은 정말이지 최고였다.


"넌 모르는 게 있니?"

"전 아무것도 몰라요"

"이 주변 누구보다 아는 게 많은 것 같은데"

"중요한 일은 모르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

"중요한 일이 어떤 건데?"

"어떤 건지 아시잖아요"

"왜 이런 얘기를 하는 거니?"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내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아셨으면 하니까요? '아셨으면 해서요..' '아셨으면 해서요...'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올리버밖에 없어서요"


롱테이크로 이어진 이 고백 장면은 포장되지 않으면서 긴장감이 가득했다. 신기하고 좋아서 여러 번 돌려봤다. 이 이후로 이어지는 엘리오와 올리버의 조심스럽고 깊은 관계가 참 좋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두 사람의 감정선이 섬세하고 리얼해서 이 영화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배우들이 얼마나 이 작품 속에 몰입해 있는지 여실히 다 느껴져서 덩달아 그들의 감정을 파고들게 된다.




여운이 이렇게 진하게 남는 작품에는 항상 배우의 진심이 담겨있다. 엘리오를 연기한 티모시의 진심이 영화 속에 가득 담겨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넋을 잃고 엘리오를 봤다.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처음으로 마음을 전하는 광장 롱테이크씬에 이어 엔딩 롱테이크씬은 정말 명장면 중의 명장면이다. 올리버의 소식을 들은 후 엘리오는 불 앞에 가만히 앉아 혼자 감정을 내보인다. 꽤 긴 시간 동안 엘리오의 표정 변화를 담담히 보여주다가 이름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와 함께 영화는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간다. 그 마지막 몇분은 하루종일 돌려볼 수도 있다고 말하고 싶을 만큼 너무너무 좋다. 엘리오의 사무치는 마음이 느껴져서 정말 슬펐다. 영화를 마음껏 즐긴 이후에는 그 긴 장면을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 배우와 그를 지켜보며 카메라에 담아냈을 그 현장이 너무나도 부러워졌다.


에어팟도 잃어버리고 길바닥에서 넘어지기나 하고 이래저래 생각대로 안 풀리는 날들이 많았다. 너무 전전긍긍해봤자 나아지는 건 없으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해주자고 마음 먹었다. 오늘은 혼자만의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져줘야할 필요를 느꼈다. 당분간은 그 시간에 콜바넴을 곱씹을 예정이다.






/이미지 출처 : tumblr @crosstheaegeansea, @shattereddteacup, @sheisraging, @soundcores, @khya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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