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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이터한 Mar 15. 2021

#19 <중경삼림>

California Dreaming


  #19 <중경삼림>

    California Dreaming


화양연화와 해피투게더를 보고도 움직이지 않던 마음이 중경삼림으로 홀라당 넘어가버렸다. 반해버린 것이다!!!




최근에 혜성이랑 스터디카페처럼 자리가 구분되어 있는 한 카페를 발견했다. 일반 카페가 두려운 요즘에 제격인 공간이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가 재개봉하기 시작하면서 우린 루틴 하나를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그 카페에서 각자 작업을 하다가 홍콩 영화를 보러 가는 루틴이었다. 영화를 보상으로 생각하고 상영시간이 다가오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끝내는 게 목표였다. <화양연화>와 <해피투게더>를 보고서 <중경삼림>을 보러 간 날은 현주까지 함께 했고 잠시 쉬어갈 겸 영화만 보러 가는 일정을 잡았다.


홍콩 분위기를 내자며 혜성과 현주와 나는 영화관 근처의 딤섬 식당으로 갔다. 딤섬 여러 종류와 완탕을 시키고 대만 망고 맥주라는 게 있길래 그것도 시켰다. 한 모금을 들이켜자마자 잔뜩 커진 세 눈동자가 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한 병을 더 시켰다. 대만과 홍콩에 대한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나누다가 달콤한 커피와 음료를 마시고서 서울극장으로 향했다.


영화를 보고 나오자마자 일제히 감탄과 환호성을 쏟아냈다. 경찰223이 눈치없이 계속 말 거는 장면, 페이가 유리창을 닦는 척하며 경찰663을 훔쳐보던 장면, 제복을 입고 태어났음이 분명한 경찰663의 첫 등장 장면 등 각자 꽂힌 장면들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나 또한 흥분을 가라앉히기 어려웠고 영화의 여운은 집에 돌아와서도 이어졌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 특히 <중경삼림>에 반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중경삼림>은 사랑과 이별을 대하는 방식에 관한 영화였고 두 가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첫 번째 이야기는 실연을 마주하게 된 남자가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나는 이야기였고 두 번째 이야기는 연인과 헤어진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의 이야기였다.


인물들의 모든 걸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건 내가 집에 오는 길에 계속해서 'California Dreaming'을 들었고 마음이 허해서 주구장창 먹어대던 경찰223의 음식들과 왕페이의 머리스타일과 티셔츠를 생각했다는 것이다. 극장을 나와서 헤어질 때까지 영화 속 이것저것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우리는 각자 꽂힌 부분을 찬양하며 2차 관람을 다짐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h87974T6hk




말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크게 틀어놓은 음악에 몸을 맡긴 채 왕페이가 처음 본 남자와 대화를 나누는 씬이 너무 좋다. 왕페이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 등장한 주요인물 네 명이 아주아주 좋다. 각자 어딘가에 꽂혀있는 그들의 물불 안 가리는 청춘이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이 사랑스러움은 특유의 유머코드와 맞물려 영화의 매력을 더한다. <중경삼림>은 뻘하게 웃긴 장면들이 많다. 경찰 223이 5월 1일이 되기 2시간 전에 편의점에 들이닥쳐서는 5월 1일이 유통기한인 통조림을 찾지 못한 후 그러는 거 아니라며 점원에게 찡찡대며 성내는 부분도 너무 웃기고, 온 집안을 바꿔놨는데도 뭣도 모르고 둔한 663의 뚱한 표정이나 663의 편지를 다 돌려보고 시치미 떼는 샌드위치 가게 사람들이나 다 너무 웃기다.


영화는 옴니버스물에서 얻을 수 있는 사소한 재미도 놓치지 않는다. 인도인들이 반복되어 나오고 두 에피소드의 남자 주인공들이 경찰이라는 동일한 직업을 갖고 있다. 1부와 2부의 에피소드가 전환되면서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이 가게에서 마주친 후 무심하게 지나치는 장면 또한 왠지 모를 쾌감을 선사한다. 이스터에그처럼 2부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왕페이가 곰돌이를 사는 장면이 1부에 섞여있다거나 하는 장면들을 발견했을 때의 재미도 있다. 옴니버스물 광으로서 속으로 계속 환호성을 질렀다.


경험하지 않은 낭만에 대한 향수를 일으키는 홍콩의 옛 거리도 당연히 한몫한다. 습한 공기와 진한 색감, 살을 부딪히며 걷게 되는 인파와 높은 구두의 굽 소리. 전부 아련한 감상을 가져온다. 그것에 맛 들였으니 홍콩 영화 재상영 뿌시기는 계속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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