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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이터한 May 07. 2024

#23 러브 데스+로봇 시즌3 <히바로>

너무 기이해 신화로 기록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 속 한 장면이 있다면


 #23 러브 데스+로봇 시즌3 <히바로> (스포 有)

  너무 기이해 신화로 기록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 속 한 장면이 있다면



작가교육원 동기가 추천해준 <히바로>를 보고 엄청 큰 충격을 받았다. 17분 남짓의 단편 애니메이션이었는데, 모든 컷이 강렬했다. 내가 아는 애니메이션은 디즈니, 지브리, 픽사, 초등학교 끝나고 집에 와서 틀던 투니버스 만화 정도가 다였는데, 이 작품을 보고선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았다. 너무나 다른 결을 가진 애니메이션이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머글이 보기에 이 작품은 영화/드라마가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영화/드라마가 구현해내는 것들을 수려하게 표현해냄으로써 장르적 이점을 잘 활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세이렌의 피부에 박힌 황금 비늘, 저주를 내리는 세이렌의 몸짓, 강물에 떠내려가는 신체, 부활하는 몸 등 실제 배우가 직접 표현하기에 어려운 신화적 캐릭터의 외관을 예술적으로 그려냈다. 그 덕분에 무용을 보는 것 같기도,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연주를 듣는 것 같기도, 게임을 하는 것 같기도, 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했다. 너무 기이해 신화로 기록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 속 한 장면을 꿈속에서 본 것 같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영화나 드라마가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해낸 것이다. 반면, 이와 동시에  실제 모습을 카메라로 담아낸 것처럼 배경을 디테일하게 표현해내기도 했는데, 애니메이션 컷들이 초점을 이동하며 카메라 뷰파인더로 보는 세상처럼 리얼했다. 영화/드라마 속에서 보는 것과 비슷한 입체감의 배경이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면 쾌감이 상당하더랬다. (화면의 전체적 색감을 수시로 바꿔주는 편집도 색달랐다.)



나는 이 작품의 거의 모든 컷에 눈을 떼지 못했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비주얼과 감정 때문인 것 같았다. 충격적인 비주얼이 아이러니한 감흥을 가져왔고, 수위 높은 감정이 쉴새없이 몰아쳐 몰입감이 엄청났다.


충격적인 비주얼에 있어서는, 앞서 말했듯, 화면 자체에 비주얼적인 쾌감이 있었다. 세이렌의 울부짖음과 몸짓은 아름다운 무용 같았으나, 이 저주가 병사들의 떼죽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잔혹함이 배가 된다. 이 영상미를 즐겨도 되나 고민하면서 즐기게 되는 게 아이러니한 지점이었다.


이에 더해, 비극적으로 몰아치는 극의 전개 때문에 관객들은 수위 높은 감정을 경험하게 되는데, 비극, 충격, 놀람, 경악스러움이 마구 밀려온다. 세이렌이 저주를 내리는 화면도 충격적이고, 병사들이 떼죽음을 당해 피로 물든 바다도 끔찍하며, 귀가 들리지 않는 남자가 유일하게 저주가 통하지 않아 혼자 남겨진 것도 심장이 벌렁거린다. 한편 세이렌이 남자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접근하는 장면에서는 이전과는 다르게 묘한 낭만과 가여움이 느껴지지만, 세이렌이 자신의 황금 비늘로 남자에게 상해를 입히면서도 무아지경으로 스킨십을 이어갈 때는 그 낭만이 사라지고 경악스러움과 아슬아슬함, 생경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심지어 세이렌이 사랑에 빠졌구나 하고 먼저 생각했기에 세이렌의 행동에 배신감까지 느껴진다. 그러나 남자도 세이렌과 마찬가지로 황금 비늘을 목적으로 스킨십을 이어가는데, 이에 따라 두 캐릭터에 대한 호감도는 내려가고 전개에 대한 호기심만 잔뜩 올라가버리고 만다. 이후 관객들이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남자는 세이렌의 황금 비늘을 탐하며 세이렌을 잔혹하게 죽이는데, 이 장면은 초반에 세이렌이 병사들에게 저주를 내리던 장면에서 몰아치던 충격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잔인하다. 이 경악스러운 전개는 세이렌의 죽음으로 만들어진 피바다, 금을 가득 싣고 도망가는 남자의 모습, 남자가 청력을 얻어 저주를 받아 죽게 되는 결말까지 이어지며 끝난다. 이 작품을 다 보고 난 후 받은 이 요상하고 울렁거리는 감정은 여운이 너무 길었다. 모든 장면에서 강렬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사람을 이렇게까지 (어떤 종류가 되었든) 감정에 휘말리게 할 수 있다니, 참 대단한 작품이었다. (살짝.. 트라우마 생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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