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여자 붐은 오고야 만다

노빠꾸 상여자의 벨기에 생존기를 읽고

by 소리글

<노빠꾸 상여자의 벨기에 생존기>. 제목에서 내 눈길을 가장 끈 것은 ‘노빠꾸’라는 단어였다. 내 경험상 해외에서 살면서 노빠꾸를 실행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웬만해선 그들의 문화에 타협을 하고 가끔은 차별도 삼켜야 했다. 그러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리는데 사람이 왜 참아야 하느냐 싶을 때가 있다. 그때는 나도 발끈해서 안 되던 영어가 줄줄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먹힐 때보다는, 내가 잡아먹힐 때가 더 많았다.


내 유학시절 이야기다. 대학원에 가려고 입학조건을 알아봤다. 올해부터 한국에서 대학원 수료이상인 자는 GRE시험을 면제해준다고 쓰여 있었다. 토플시험만 준비하면 됐다. 그런데 사무실에 가니 화려한 금목걸이의 직원이 무조건 ‘no’란다. 나는 준비해간 서류와 지원서 양식의 바뀐 규정을 보여주며 열심히 설명을 했다. 그러자 심드렁하던 그 직원이 갑자기 몇 분간 영어를 쏟아냈다. 알아들을 수 없는 흑인영어의 액센트와 강렬하고 빠른 속도로 내 넋을 빼놓았다. 미국판 <쇼미더머니>인 줄 알았다. 좀 천천히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하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깔끔하게 나를 KO시켰다.


“그게 바로 네가 GRE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야.”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눈물만 뚝뚝 흘리고 돌아와 GRE시험을 준비했다. 나중에 입학하고 보니 내 말이 맞았지만, 그녀는 모른 척 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유명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 해외 생활이 그랬다. 아무리 한국에서 공부를 했고, 준비가 돼 있어도, 언어가 완벽하지 않으면 새로운 땅에서의 나는 그 나라에서 태어난 유치원생보다 어설픈 존재였다.



송영인 작가는 미국도 아닌, 한국 사람들이 와플 말고는 아는 게 없는 벨기에에서 모든 걸 겪어냈다.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누렁이 황소눈 드러머를 따라가서 말이다. 보수적인 조선 선비 같은 아버지의 가슴에 편지 한통으로 이 사실을 알리는 대못을 박자, 아버지는 젓가락을 던져 장판 위에 꽂히게 하는 신기를 보여주었다. 그래도 그들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요란하게 결혼을 하고 벨기에로 갔건만, 송작가에게도 언어는 가장 큰 난관이었다.


이 도시는 주민들 대부분이 영어를 할 수 있어 영어가 곧잘 통한다. 즉, 네덜란드어를 못해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플랜더스에선 거지도 영어, 프랑스, 네덜란드어 3개 국어로 구걸을 하고, 슈퍼마켓 캐셔도 웬만하면 3~4개 국어를 한다.(p. 39)


그렇다면 영어만 하면 되는 게 아닐까? 그러나 벨기에에서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려면 그렇게 살 수만은 없다. 이민생활에서 한국에서의 배경은 아무런 효용이 없다. 벨기에에서 그녀는 그저 벙어리에 귀머거리 외국인 노동자일 뿐이었다. 공장에서도 일해보고, 미국계회사에도 취직을 했지만 점점 언어에 대한 갈망이 짙어졌다. 그 후,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까지 배우며 그녀는 이렇게 벨기에에 정착하는 게 긴 여정이 될 줄 몰랐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녀의 진취적인 성향은 성(性)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 쟁취하고자 하는 인생의 목표를 향했다.


벨기에인과 결혼한 참하고 신비로운 동양 여자가 되기는 죽기보다 싫었다...(중략)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이 나라의 언어로 하는, ‘국제결혼을 한 여자’가 아니라 ‘사람’이 되고 싶었다...그러니 입 다물고 그냥 노력하는 수밖에.(p.81)
멋진 말이 너무 많아 책이 알록달록해졌다

그녀는 낫을 휘두르며 잡초를 베어내듯 낯선 언어들을 짧은 시간 안에 배워냈다. 박물관 보안요원으로 하루 종일 벽만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은 시간들을 거쳤고, 매일 울며 다닌 외국인관리청에서의 날들도 참아냈다. 빈민가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돕기도 했으며,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던 구립도서관의 사서를 지나 자신을 병들게 하는 상사로부터 벗어나서 당당히 학술도서관 사서가 되기까지, 그녀는 끝없는 변신을 했다.


옮겨야 할 상황이 오면 과감히 선택했다. 학교를 중퇴하든, 무엇을 그만두든 말이다. 그녀는 자신을 중퇴계의 샛별이라고 눙친다. “넘어지는 것은 걸었기 때문이고, 실패도 무언가를 시도했기 때문에 얻은 결과다.”(p.89)라며 그 모든 것을 가치 있는 경험이라 받아들인다. 회복탄력성을 기를 수 있었다며 고마워하고 툭툭 털고 일어난다.


이쯤 되니 나도 알 것만 같았다. 그녀가 노빠꾸인 이유는 계속 도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 없이 들이받는 것도 아니고 앞만 보고 돌진하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다. 선택의 단계마다 명확한 이유를 가지고 전략을 세웠다. GRE시험 앞에서 눈물만 흘리던 나와는 달랐다. 언어를 습득했고, 수없이 많은 직업군의 문을 두드렸다. 부당하면 물러서지 않았고 따질 건 따졌다. 그 사회가 가진 특징을 이해하고 공부해서 벽을 허물었다. 이게 바로 노빠꾸 상여자가 사는 방식이었다.



이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1부는 ‘국제결혼한 여자 말고 보통의 사람되기’, 2부는 ‘남의 나라에서 엄마 되기’다. 이 책의 대부분은 한국에서 온 황소고집 여자가 벨기에라는 낯선 직업전선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2부를 읽고, 사실 이 작가의 그런 강인한 생존력이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빛을 발했다는 생각을 했다. 낯선 땅에서 일하며 새 생명을 둘이나 키워낸다는 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가족에 대한 엄청난 사랑도.


한편으로 우리는 모두 알지 않는가. 결혼하고 나면 이상하게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전남친이자 현남편을 말이다. ‘조선인 선비같은 아버지를 피해 벨기에로 사랑의 도피를 했더니 그 결과는 벨기에 뮤지션 선비’ (p.168)였다는 말처럼 작가의 결혼생활도 예외는 아니었다. 돈보다 뮤지션으로서의 자존심이 더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감수성도 풍부한 남자. “애는 착햐~”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이 남자는, 한번 마음먹은 건 해내고야 마는 직성에 황소고집인 여자에게는 여러모로 조금은 답답할 수도 있는 남편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선비’ 아닌가. 줏대 있고 지조 있는 남자. 힘들 때 어딘가로 도망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주는 남자. 게다가 밤비가 안기는 태몽과 솜사탕을 먹는 예쁜 태몽을 꾸고 태어나서는 흙에서 뒹굴며 크는 천둥벌거숭이 두 아들까지. 아들이 셋인지 헷갈리는 하루하루 속에서 그녀는 왠지 행복해 보인다. 투덜거리는 문장에서 애정이 뚝뚝 묻어나온다. 노빠꾸 여사의 삶을 지지해주는 세 남자의 든든함이 글 전체에서 넘쳐흐른다.


물론 한국과는 너무나 다른 문화의 벽은 높았다. 36시간 만에 겨우 아기를 낳은 작가에게 3주 일찍 분만했으니 캥거루 케어를 하라는 벨기에. 게다가 말라비틀어진 빵조각으로 첫 식사를 하고, 지글지글 끓는 방에서 몸을 회복하는 한국식 조리를 하지 못한 작가는 얼마나 서러웠을까. 출산 전 이중창 하나 다는 것도 느려터진 벨기에에서, 터프한 작가는 부른 배를 안고 직접 찾아가 여기서 애 낳는 거 보지 않으려면 빨리 진행하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금세 일은 해결됐다. 하지만 또 속마음은 얼마나 따뜻한지 모래가 떨어지는 벽을 빵조각으로 끼니를 때우며 바르는 인부들 앞에서는 따뜻한 미트볼을 만들어 대접한다. 갓난아기를 업고서 말이다.


이 단짠단짠이 확실한 한국인은 벨기에인들을 제대로 무장해제시키고야 만다. 사람냄새가 풀풀 나는 이 상여자에게 나도 기어이 푹 빠지고야 말았다. 그녀는 벨기에의 길고 차가운 겨울을 데우는 난로 같은 사람이었다. 아니 그녀가 있는 곳은 어디나 흙길에 아스팔트가 초고속으로 깔리고 그 위에 온실이 지어져 따스한 공기가 흘렀다. 어디에 가건 특유의 유머와 활달함으로 그녀는 인종간의 벽을 허문다. ‘색목인도 사람이고 그들에게도 마음이 있다’(p. 120)며 인류애를 실천한다.


이런 사람의 자식이 인종차별을 당하고 왔다. 그러자 타고난 해결사인 그녀는 곱게 개량한복을 입고 머리에 쪽을 진 채 나타나 한국을 소개하고 젓가락 사용법이나 한글로 이름 써보기 등 체험활동을 주도했다. K-POP이나 대한민국이 가진 건축기술들도 소개하고, 한국음식을 싸 보내고, 아들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쳐 송판깨기 시범도 보였다. 모두가 한국인을 사랑하도록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그녀는 벨기에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노력만 한 게 아니다. 한국인이라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 수 있도록 했다.


20년 전 어느 날이었다. 미국의 대학원에서 수업 중 교수가 우리에게 질문을 했다. 만약 너희 아이들이 학교에서 ‘Hit’, 맞고 왔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동양인 친구들은 대부분, 맞는다고 무조건 때리면 안 된다며 “Don’t be involved.” 즉 그런 애들과 엮이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가르친다고 했다. 하지만 서양인 친구들은, “Hit back.”이라 가르친다는 것이다. 이건 어쩌면 당연하고 명확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당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렇지. 왜 당하고 살아야 하는가. 송영인 작가가 그랬다. 아이들에게 맞고도 가만있지 말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적절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자기를 괴롭히던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땅에 내려놓으며 작가의 1호 아들은 학교를 평정했다.



벨기에에서 한국인으로 살아남기. 이것은 그냥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그들 속에 스며들어가는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녀와 그의 두 아이들은 어차피 완벽한 벨기에인이 될 수도 없고 완전한 한국인이 될 수도 없다. 어차피 그렇기에 그녀는 그 경계에서 그 둘 다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선택한다. 그를 위해 열심히 운동하고 체력을 길러 자기 자신을 지킬 줄 알고, 건강하게 앞으로의 인생을 탐색하며, ‘사이’로서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즐길 줄 아는 사람 말이다.


이게 바로 상여자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할 줄 아는 사람. 벽 앞에서 빠꾸하지 않고 전진할 줄 아는 사람. 나 또한 그렇게 살고 싶어졌다. 지금껏 누군가에게 ‘no’라고 말하는 게 어딘가 불편한 성격이었다. 순하게 사는 게 미덕인 사람이었다. 그게 내 삶에 무슨 도움이 될까.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그녀가 벨기에 뿐 아니라 한국에 있는 내 손을 덥석 잡는다. 그렇다면 세상에 무엇을 못 바꿀까. 전 세계로 그녀가 퍼져나가길 바란다. 이런 상여자 정신이 통하지 않을 곳이 있을까. 곧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북토크가 열린다고 한다. 한국어로 쓴 책을 가지고 말이다. 남들이 아직 열지 못한 문을 힘차게 열어젖히는 그녀의 기개를 사랑한다. 상여자 붐은 오고야 말 것이다.



송영인작가의 브런치스토리

https://brunch.co.kr/@gochujangwaffle




(덧붙임)

2월말까지 ‘노빠꾸 상여자의 벨기에 생존기’ 서평을 쓰기로 했습니다.

서평을 써 본 적도 없는 제가 류귀복님의 글에 번쩍 손을 들어버렸거든요.

빨간색 표지가 저를 유혹하기도 했지만

내용도 사실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스스로 선택했으니 이왕이면 멋지게 잘 써보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많을 줄 알았는데 2월 달에 갑자기 밀려드는 일들에 치여

잘하고 싶은 이 일이 자꾸만 뒤로 밀렸습니다.

대충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짬을 내서 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2월의 마지막 날 그래도 저는 이 글을 올립니다.

제 서평의 생존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상여자 정신을 본받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녀의 17년 벨기에에서의 인생에 존경을 표하며 이 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