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왔다

by 소리글

오마이뉴스에 <요망진 중년>이라는 이름으로 그룹 연재를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연재글들을 싣는 공동 매거진을 뒤늦게 만들었습니다. 그럴 줄 모르고 며칠 전 여기 이 글을 발행했었네요. 득이하게 이 기사를 <요망진 중년> 거진에 중복으로 올리게 어요. 양해 부탁 드려요.


한동안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인 줄 알았다. 어릴 때 눈밭을 굴러 도로로 떨어진 적이 있었다. 때마침 내 위로 대형 트럭이 순식간에 지나갔고 모두 고개를 돌렸다. 나는 거대한 바퀴 사이에 놓여 있어서 살았다. 사립초등학교 추첨 때는 그 학교를 다니고 있던 친오빠가 추첨 줄에 서 있다가 그게 당첨이 됐다.

그 뿐이랴. 대학 입시를 앞두고 내 내신 성적은 목표 대학의 최소 내신 기준에 간당간당했다. 그런데 그 해는 물수능이어서 성적이 올랐고, 본고사를 얼마나 잘 본 건지 어리둥절하게 과 수석으로 입학을 했다. 물론 그 뒤로 장학금은 받지 못했다. 결혼은 내 인생 최대 '운빨로맨스'였다. 몇 번 만나지 않고 결혼했는데 나보다 성질이 착한 남편을 만났다.

며칠 전, TV 예능에서 신동엽과 탁재훈이 당구 맞대결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당구의 신'이라는 그들에게도 그런 공이 오는 순간이 있었다. 노린 각이 아닌데 쿠션을 맞고 돌고 돌아, 기가 막히게 들어가는 공. 한마디로 요행인 공.

말하자면 나는 인생에서 그런 공으로 점수를 꽤 땄다. 실력은 늘 애매했는데 결과는 이상하게 괜찮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착각했다. '나는 되는 인간인가보다.' 이쯤 되면 노력은 슬쩍 뒷자리로 밀린다. '뭐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되겠지?' 요행은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었다.


그런데 중년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인생이 계산을 정확하게 따지기 시작한다. 예전엔 대충 던져도 들어가던 공이 이제는 대놓고 빗나간다. 내 요행도 운을 다 했나보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잘 되는 일이 없다. 마트의 작은 경품 하나 되는 법이 없고, 내가 산 주식만 올라가지 않는다. 주변 아파트가 재건축되어 가격이 올라가도 내 아파트만 요지부동이고, 심지어 많이 먹어도 뱃살이 나오지 않는 요행 따위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콜레스테롤 수치만 정직하게 치솟았다.


로또 용지가 든 봉투 빨간색 봉투는 사람을 설레게 하는 재주가 있다.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지 않은가.

설을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다. 친한 동생이 설날 선물이라며 빨간 봉투를 줬다. 열어보니 로또가 한 장 들어있었다. 이런 센스 있는 선물이라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래, 집 나간 요행이 이제 한 번 굴러들어올 때가 됐지. 나는 봉투를 고이 차 안에 모셔두었다. 혼자 있을 때 확인해보고 싶었다.


"당신 로또 떨어졌더라?"

다음 날, 차에서 로또봉투를 발견하고 큐알 코드를 찍어 본 남편이 놀리는데 심통이 났다.

"로또가 아무나 되나?"

아무렇지 않게 말은 했지만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곱게 접힌 빨간 봉투를 버리고 싶지가 않았다. 봉투 속에 든 마음을 간직하고 싶었다. 내 행운을 빌어주는 그녀의 마음은 돈으로도 살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낙첨이었지만, 봉투 속에는 로또만큼 귀한 마음이 있었다. 돌아보니 요행밭이라 생각한 내 인생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이건 요행이 아니라 인복이었다.

내 사립학교 추첨 복은 오빠가 잡아다준 것이었고, 팍팍한 서울살이에 입맛까지 잃을까 고향 반찬을 부쳐주던 어른들은 다 친정엄마의 친구들이었다. 내신이 떨어질 때마다 수업시간에 내 이마를 향해 분필을 던져주던 담임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나는 목표 대학에 지원조차 못했을지도 모른다. 유학 시절 포트폴리오를 완성하지 못해 끙끙댈 때 이타심이 남달랐던 미국인 친구가 내 곁에 없었다면 졸업이나 했을까.

인복은 평소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 가장 먼저 등판한다. 몇 년 전, 남편의 직장 문제로 1년간 미국을 따라 갔다 와야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출국 전, 어쩌다 넘어져 발목 인대가 끊어졌다.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다가 미국으로 떠나야 하는 날 위해, 이웃들은 다 같이 팔을 걷어붙이고 집 정리를 도왔다. 묵은 김치를 갖다버리고 오래된 쌀로 떡을 하고 같이 나눠 먹었다.

빈 집에 문제가 없도록 1년간 자기들 집처럼 환기를 시켜주고 우편물을 모아줬다. 내 인복은 대체 어디서 온 걸까.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걸까. 그러고 보니 나는 그들과 꽤 오랜 기간 동고동락하며 육아의 눈물 젖은 빵을 나눠먹으며 살았다. 그러니 그들이 누워 있었다면 나라도 팔을 걷어붙였을 것이다. 내 인복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랐다. 함께 비를 맞고 눈보라에 다져지며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난 복이었다.

그래서일까. 새해 들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을 많이들 하지만, 복은 받는 게 아니라 쌓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령 인복은 차곡차곡 관계 속에서 쌓여 있다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이자가 붙어 돌아온다. 어떨 땐 은행이자보다 세다. 어떤 순간에는 '돈'이 아닌 '사람'이 인생을 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궂은 날을 대비해 평소에 노력을 하면 무조건 복을 받을 수 있을까.

아쉽지만 꼭 그렇진 않다. 경험상 열 번 노력한다고 열 번의 복이 찾아오진 않았다. 하지만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주변에서 나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나는 그저 약속을 잘 지킨 것뿐인데 일자리 복이 되어 돌아오기도 하고, 새로 이사 온 사람에게 친절히 대해준 것뿐인데, 어느 날 내게 은인이 되어주기도 했다.

거창하게 선한 사람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기적인 얌체로 늙지는 말자는 마음은 있었다. 그 마음이 쌓였던 모양이다. 이런 마음이 쌓여 복을 만날 확률을 높이고, 그런 태도가 내 곁에 복을 잡아둔 게 아닐까.

중년이 되니 머리카락 줄 듯 요행이 점점 줄어든다. 대신 선택의 결과가 적나라해진다. 이제 대충대충은 잘 통하지 않고, 어설픈 위장은 금세 들킨다.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가. 이 나이에 아직도 요행을 바라면, 그건 낭만이 아니라 무모함이다. 중년의 그늘이 주는 안정감을 떨치고, 이제 한 번쯤은 뭐라도 제대로 해보려 한다. 글쓰기도 그 노력 중 하나다.

복도 눈이 있다. 아무데나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러니 이젠 복 많이 받기를 기대하지만 말고 성실하게 스스로 복을 쌓아가는 게 어떨까. 나이 먹고 뭐하는 거냐며 억울해 하지 말고 말이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도 요행만은 아니었다. 다만, 나의 지난 수고를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인생은 한 방이라고 한다. 내 경우, 한 방보다는 한 사람이었다. 내 결론은 그렇다. 인생의 몇몇 순간, 기분 좋은 운은 스쳐갔지만, 복은 결국 사람의 얼굴을 하고 왔다. 비록 정직한 배를 가진 별 볼일 없는 중년이지만, 곁에 사람이 있으니 낙첨된 로또 봉투 하나에 감사할 일이 생겼다.

날도 풀렸는데 로또를 선물한 동생에게 밥이라도 사러 나가야겠다. 같이 커피도 마시면 또 웃을 일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요행 대신 복을 쌓는 중이다.


https://omn.kr/2h57g


오마이뉴스에 기사란 걸 써보았습니다.

배치대기가 뭔지 몰라 유배간 건가 걱정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오늘 메인에 걸렸습니다.

잠시겠지만요♡

첫끝발이 강아지끝발

소 뒷걸음질에 쥐 잡은 격니다.

엄지척, 이런거 해주시면 많이 쌓으시는 걸로!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