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영 작가의 '널 보낼 용기' 북토크를 다녀왔습니다.
지난 가을, 선득한 밤이 오면 브런치 사이를 둥둥 떠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마주친 어느 작가의 글이 너무 깊어 몸을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얼마 뒤, 서촌의 전시회장에 그녀의 글이 내 글 옆에 나란히 걸렸다. 그 위에 쓰인 그녀의 필체. “아픔이 길이 될 때까지. 송..지..영..?” 마음이 저릿해서 괜히 중얼거려봤다. 그리고 돌아온 날, 그녀의 브런치북, ‘널 보낼 용기’를 읽으며 밤새 울었다. 그녀는 17살 딸을 잃은 자살 사별자였다. 댓글도 못 달았다. 손가락조차 말을 잃었다. 하지만 작가는 꿋꿋했고, 끝까지 완결을 해냈다. 캄캄한 우물 같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길어낸 맑고 아름다운 언어의 정수가 가득한 책이었다. 책이 나오고, 그녀가 첫 북토크에 초대를 했다. 못 갔다. 정말 가고 싶었는데. 상황이 안 됐다.
알고 보니 우리는 고향이 같고 나이가 같았다. 그러면 친구지. 비슷한 시기를 버텨왔다는 유대감으로 자판을 두드리고 어깨를 두드리며 우린 쉽게 친구가 됐다. 나는 송지영 작가와 그렇게 가까워졌다. 우리가 처음 수서의 초밥집에서 만난 날, 그녀가 내게 물었다.
“어머, 왜 사투리를 안 써요?”
예상치 못한 그녀의 순수하고 밝은 말투에 나는 크게 웃고 말았다. 우리는 함께 있을 때 늘 끊이지 않고 농담을 하고 장난을 친다. 그게 너무 좋다. 슬픔은 슬픔이고, 사람은 사람이다.
북토크를 드디어 갈 수 있게 됐다. 지난 주 미친 듯 바빴던 날들 중 하루였지만, 그날은 꼭 가야 했다. 나는 방광에 문제가 있어 운전을 오래 못한다. 그렇지만 1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를 한 번의 위기도 없이 잘 도착했다. 밥을 먹고 북토크 장소로 이동을 하는데 비가 꽤 흩뿌렸다. 길눈이 어두운 우리는 주차하기 힘들었지만 무사히 도착했다. 그날, 나에게 아주 큰 수확은 송작가의 지인인 한 작가와도 인사를 나누게 된 것이었다. 우리는 송지영을 응원하기 위해 온 팬심으로 편히 말을 나누었고, 외롭지 않게 집까지 함께 돌아왔다.
궂은 날씨에도 북토크에 모인 사람들은 꽤 많았다. 씩씩하게 마이크를 잡고 선 송작가는 단숨에 눅눅한 공기를 날려버리고 청중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지치지도 않았다. 우리에게 밝은 에너지를 한껏 가져다주었다. 힘들어하는 이들의 옆에 있어주고 싶다는 마음을 그녀는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사실 이 북토크에 온 이들은 어떤 이유로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봐 주길 바라는 사연을 가진 사람들일 가능성이 많다. 나도 그렇다. 나도 살면서 많은 아픔을 겪었고, 말 못할 이야기들로 오래 고통 받았다. 그녀는 그날 마치 모두를 껴안을 듯 성큼 다가왔다.
송작가의 딸 서진이는 양극성 장애 2형이라는 난치성 정신질환을 앓았다. 병의 특성상, 우울증 기간이 경조증에 비해 40배나 길고 자살충동이 강하게 나타난다. 6개월간의 치료도 서진이를 구하지 못했다. 그녀는 처음에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밀려드는 질문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책을 읽었다고 했다. 그리고 글을 쓰며 자신의 아픔을 해부하고 들여다보았다. 수치심, 고통 같은 많은 감정들을 그대로 직면하려 노력했다. 보통 자식이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면 사람들은 왜? 무엇 때문에? 라는 질문으로 유가족에게 또 한 번 상처를 줄 수 있다. 직접적이지 않아도 유가족은 그걸 느낀다.
그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서 그녀는 글을 쓰며 자신과 대화를 했다고 했다. 하루에 10시간씩 자신에게 질문을 하는 것은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 뜨거움만큼 그녀는 이 현실을 빨리 극복할 수 있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과연 그게 쉬운 일이었을까. 나는 자꾸만 눈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들고 간 휴지를 작게 접어 닦아야 했다. 이렇게 나약한 마음으로 무슨 그녀의 곁에 있어 주겠다고 간 건지 내 자신이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북토크에서 내가 가장 연약한 사람이었다. 계속 울고만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마음을 알아채듯, 송작가가 그날 밤, 가장 강조한 것은 사람과 연결된 회복, ‘연대’였다. 연대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너와 함께 걸어가 줄게.” 힘들 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사람은 고립되지 않는다. 그녀가 그런 힘든 일을 겪고 나라는 존재가 끊임없이 부정당하고 스스로를 의심할 때 곁에서 그저 같이 걸어주고, 생활해준 사람들 덕에 그녀는 살아났다. 그래서 그녀는 말한다. 이제 그 연대를 확산할 때라고.
그것을 위해서 무엇보다 마음의 문을 열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니까 나에게만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가족들이 슬픔에 빠져 지내지 않으려던 서진이의 장례식을 결국 지내기로 어렵게 결정하자, 서진이의 오빠는 도리어 좋았다고 했다.
“내 동생의 장례가 특별하지 않아서, 일반적인 장례식과 같아서 좋았어요.” 이렇게 받아들이는 연습들이 계속되면 비극과 불행이 구분되는 것이다. 송작가는 비극은 ‘사건’이고, 불행은 감정이 만드는 ‘상태’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았던 시간과 우울한 감정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이다.
나는 송지영 작가가 감정을 언어로 조련하고 조각하는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유가족에게 주어지는 편견에 저항하고, 나답게 살아갈 자유를 외친다. 그것도 정교한 끌로 깎아낸 정제된 언어로 말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녀는 얼마나 흔들리고 힘들었을까. 하지만 그조차도 그녀는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는 “꽃이어서 피어난 게 아니다. 끝내 견뎌낸 시간이 우리를 꽃으로 만든다. (p. 136)” 얼마나 오랜 시간 자신의 감정을 조각했기에 이런 표현으로 피어날 수 있었을까.
“저는 슬픔의 포르노를 쓰고 싶지 않았어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북토크를 시작했다. 나는 그게 가장 고마웠다. 슬픔을 전시하는 데 그치는 책이었다면 우리는 함께 울었을지언정 이만큼의 감동과 전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녀의 딸이 어떻게 떠나야만 했었는지 이해하기까지의 과정과, 떠나가를 결심하는 아이들을 살펴야 하는 이유, 그리고 남은 이들이 어떻게 남겨진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는지 다 아우르고 싶었다.
그동안 조용히 이 책을 많은 이들에게 소개했다. 이제는 크게 얘기하고 싶다. 우리 모두는 이 책을 읽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곁 어딘가에서 차마 손 내밀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을 우리가 먼저 꽉 안아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처음보다는 좀 덜 울게 됐다. 하지만 그녀가 마지막에 실었던 '세상에서 가장 긴 편지'는 여전히 매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럴 땐 마음껏 울어두자. 우리는 다 똑같은 자식이고, 부모이며, 인간이다. 눈물은 모두 마음이 통하는 경험일 뿐이다.
이 책은, 나의 이야기이자 너의 이야기이고, 우리 모두가 함께 손을 잡는 세상을 꿈꾸는, 슬프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나는 서진이가 마지막 그 순간 원했던, “그리워말고 추억해 주세요.”라는 말을 이제야 비로소 들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사랑하는 나의 아가.
우주의 긴 시간에서 보면 우리의 시간은
모두 작은 점일 뿐이야.
너는 너로서 너의 빛을 다했고,
엄마의 우주 안에서 영원히 반짝일 거야.
열일곱 해가 짧았다고 한탄하지 않을게.
선물같이 너를 안을 수 있었던 그 시간들에 감사할게.
엄마 딸이 되어줘서 고마워.
서진아, 온 마음 다해 사랑한다.
우리 좋은 날, 좋은 곳에서 다시 만나.
- 널 보낼 용기, p.213~214
내일 음력 설을 앞두고 모두 바쁘시지요?
잠이 안 와 지난 주 다녀온 송지영 작가의 북토크 후기를 한번 올려봅니다. 바쁘시더라도 시간 되실 때 천천히 읽어봐 주세요.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로가 서로를 안아줄 수 있는 따뜻한 한 해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모두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