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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Jul 18. 2023

[방송기자연합회] 유튜버에게 내준 포토라인

무겁지만 찍을 만해

오디오 갑자기 왜 이래?

옆에서 카메라를 잡고 있던 선배가 중얼거렸다. 선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혼선’이 생겼던 것이다. 같은 주파수를 사용하는 방송 카메라가 한 장소에 많이 모이면 종종 오디오에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카메라가 그 정도로 많지는 않은 상황. 원인 모를 긴장감 속에서 내 카메라 뷰파인더 안으로 휴대폰과 촬영장비를 든 무리가 등장했다. 유튜버였다.



포토라인이 변했다


취재 경쟁이 치열한 현장에는 늘 포토라인이 생긴다. 취재의 안전성과 정확성을 위해서다. 대선보도도 마찬가지다. 대선후보와 같이 유명 정치인이 오는 일정에는 포토라인이 생긴다. 라인이 생기면 기자들 간의 암묵적인 착석 룰이 생긴다. 대개 취재기자-사진기자-영상기자 순으로 자리를 잡는다. 취재기자가 바닥에 앉고, 그다음 간이의자에 사진기자들이 앉는다. 마지막으로 ENG 카메라를 든 영상기자들이 삼각대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선다. 이렇게 앉으면 취재 기자는 가까이서 후보의 싱크를 확보할 수 있고, 사진기자와 영상기자는 잘 찍은 그림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몇 년 새 포토라인이 변했다. 유튜버들이 기자들 사이로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포토라인 외곽에만 서 있던 유튜버들이 이제는 ENG 카메라 사이에 서는가 하면, 영상기자의 카메라 앞에 서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취재기자-유튜버-사진기자-영상기자 순서로 앉을 때도 있다. 더 나아가 유튜버도 하나의 언론 매체로서 자격과 출입을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유튜버들은 언론사의 룰을 따르지 않는다. 취재 현장에서 각 언론사를 대표한 기자들과 달리 유튜버들은 개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튜버가 포토라인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다. 때론 방송사 로고가 박힌 카메라를 든 영상기자를 방해하기도, 위협하기도 한다. 취재원의 행동, 표정, 발언, 어투 등 비언어적 표현까지 중요한 현장. 그 하나하나를 포착하기 위해 다투다그만 기자와 유튜버들은 한 데 엉키고 만다. 난장판이다. 영상 취재 경쟁에서 살아남으라 배운 나는, 해가 갈수록 당황스러울 일이 점점 많아진다.



선을 넘어 더 빨리,

더 많이,

더 가까이


대선후보들의 유세 현장을 영상 취재할 때,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사다리 챙기기와 건물 섭외다. 모두 부감을 찍기 위해서다. 부감 컷은 대선후보 유세 현장의 열기와 규모를 한 번에 보여준다. 따라서 대선보도에 있어서 필요한 그림이다. 영상기자들은 부감 컷을 확보하기 위해 건물도 섭외하러 이리저리 다닌다. 하지만 유튜버는 긴 셀카봉 하나만 높이 들면 부감 컷 완성이다.


인파 규모를 보여주는 부감 컷. 주변 건물 섭외가 정말 쉽지 않다. 이 날도 여러 군데 퇴짜 맞고 돌아다니다가 겨우 찾았다.
유튜버들이 오니
최소 1시간 30분 전에는 도착해야해.

국회에 오고 나서 선배들에게 들은 첫 번째 조언은 사회부 취재 때보다 더 일찍 현장에 가라는 것이었다. 대선 후보 유세에는 청중들은 물론, 수많은 유튜버들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에는 30분 전에 도착해도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최소 1시간 30분~2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대선후보의 얼굴을 제대로 담을 수 있는 자리를 점할 수 있는 상황이다. 늦게 오면 더 이상 부감은 물론 제대로된 싱크조차 담을 수 없다.


확실히 현장에서 마주치는 유튜버들이 평소보다도 많아졌다. 그들은 기자들보다 더 수많은 뉴스 밖 현장을 찾아간다. 혹여 기자들이 챙기지 못하는 현장도 유튜버들은 찾아간다. 그리고 현장에서 실시간 라이브를 기자보다 먼저 시도한다. 중계를 위해 기자들이 몇 시간에 걸쳐 준비하는 동안, 그들은 이미 몇 초 만에 클릭 한 번으로 온에어하고 만다.


유튜브 생중계를 하면 수백에서 수만 명 접속하니, 정치인들 역시 현장 유튜버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현장에서 유튜버에게 기자와 동등한 취재 권리를 부여하는가 하면, 때론 대변인과 현장 진행 및 통솔자의 역할까지 부여한다. 유튜브를 소통의 창구를 넘어서서 정치인의 입으로까지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현장에는 정당에 우호적인 유튜버들만이 모이고, 유튜버와 정치인들은 악어와 악어새처럼 가까이 공생한다.


지켜야 하는 영상보도 가이드라인


그렇다면 영상기자들도 유튜버들처럼 대선보도에 임해야 할까. 포토라인을 신경 쓰지 않고, 더 빨리, 더 많이, 더 가까이 정치인에게 다가가야 할까. 뉴스의 시청률은 점점 떨어지고, TV가 ‘올드’ 미디어가 되어버린 지금, 언론혐오와 언론 위기는 유튜버화(化)로 해결될 수 있을까.


확실히 기동성과 대중성은 유튜버의 강점이다. 그리고 소형화된 장비는 유튜버의 성장을 견인했다. ENG 카메라는 휴대폰 카메라를 따라잡을 수 없는 영역이다. 가벼운 휴대폰을 들고 유튜버들은 어디든 빠르게 이동해 대선 후보들의 소식을 전한다. 또한 누구나 휴대폰을 가지고 있기에 유튜버는 후보의 개인적인 영역에 접근할 기회도 많다.


취재기자들이 앞에 앉아있다. 왼쪽에는 유튜버, 오른쪽에는 영상기자의 카메라.

언론의 자유는 시민 누구에게나 있다. 기자에게도 있고, 유튜버에게도 있다. 취재의 권리는 카메라의 크기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기자만이 취재의 특권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장비가 변해도, 포토라인이 변해도, 시대의 흐름이 변해도 기자에겐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이다.


기자는 현장에서 선을 지켜야 한다. 보도의 정확성, 공정성, 독립성은 물론 취재원의 인격권·배려·존중을 현장에서 사수해야 한다. 각사의 입장 차로 모든 방송사가 통일된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을 가지기 어려운 현실이지만, 공동 논의의 장을 가질 필요성이 있다. 또한, 가이드라인이 준수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언론과 유튜브를 통틀어 영상 미디어 생태계 전체에 대한 미디어 리터러시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영상기자의 시선이 중요하다. 포토라인은 유튜버에게 내줬지만, 가이드라인마저 내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영상기자에게 취재 성역은 없다. 다만, 우리에겐 지켜야 할 선이 있다. 기자는 뉴스 사냥이 아닌, 뉴스 취재를 하는 게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기자로서 선을 지키면서 현장 취재를 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원칙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선후배들이 보도 가이드라인을 지켜가며 현장 포토라인에 서 있는 것 아닐까.


* 이 글은 방송기자연합회 <방송기자> '[특집] 지금 우리 대선보도는 : 영상기자' 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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