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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래블러 Sep 10. 2023

추억의 흔적들 #33

Ep33.│나의 추억도 포르토에 남겨지길 바라며


드디어 산티아고를 떠나 포르토에서의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는 날이다. 버스를 타기 위해 이른 새벽의 거리로 나온 우리는 서늘한 아침 공기를 맞으며 터미널로 향했다.


아직까지 이곳을 떠나보내기 싫다는 미련이 남아서인지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은 왠지 모르게 무겁게만 느껴졌다. 그 마음을 아는지 서늘한 새벽 공기는 산티아고를 떠나는 나의 섭섭한 마음을 건드리기 충분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여행에서 작별의 아쉬움 대신 새로운 시작의 설렘을 채우기로 다짐한 나였다. 버스에 몸을 싣고 천천히 산티아고 시내를 빠져나온 버스의 유리창 너머로 내심 쿨한 척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 '아디오스 산티아고, 꼭 다시 돌아올게!'



버스는 빠르게 달려 스페인에서 포르투갈로 국경을 넘어섰고, 어느새 잠이 들어버린 나는 사람들의 하차 준비 소리에 포르토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부랴부랴 몽롱했던 정신을 부여잡고 가방을 찾은 뒤 기지개를 쭉 켰다. 따듯한 햇살이 가득 내리쬐고 있던 포르토의 정오는 다정한 첫인상을 심어주는 데 충분했다.


예약한 숙소로 가는 길, 거리 곳곳에는 포르토를 상징하는 파란색으로 그려진 벽화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기 시작했고 어느새 예약한 에어비앤비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니 한 아주머니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아주머니를 따라 향한 방에는 빼곡하게 자리 잡은 추억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주머니와 가족들의 사진이었다. 부부의 연애시절 사진들부터 아들과 딸이 태어나 함께 울고 웃은 추억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따듯한 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가족과의 추억들이 천천히 스쳐 지나가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 서서히 마음 한편이 따듯해지고 있었다. 문득 포르토에서 웃음 가득하고 따듯한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분명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퍼져나갔다.


간단한 숙소 설명을 마친 아주머니는 마지막으로 책상 한편을 가리켰다. 책상 위에는 무언가 적혀있는 조그마한 메모가 놓여 있었다. 숙소 근처 맛있는 음식점들과 포르토 시내로 나갈 수 있는 버스 번호를 손수 적어 책상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적혀있는 글씨 하나하나를 다시 한번 손으로 짚어주시며 이곳은 무엇이 맛있고 어떤 버스를 타고 가면 더 편하게 갈 수 있는지 설명해 주셨다. 10분가량의 짧은 대화였지만 아주머니의 배려와 정성에 감동받은 우리는 연신 감사하다는 말로 답했다.  



짐 정리를 어느 정도 끝낸 우리는 산책 겸 동네를 돌아다니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일부러 포르토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의 바닷가 근처에 숙소를 잡은 덕분에 숙소에서 나와 조그마한 공원을 가로질러 이내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한참을 제자리에서 바라보다 홀린 듯 아무 생각 없이 일렁이는 물결 위에 반짝이는 윤슬을 바라보며 해안가를 따라 걸었다.



그러다 유독 한 할아버지와 손자가 나의 눈에 들어왔다. 계단에 걸터앉은 할아버지와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할아버지의 발에 묻어있는 모래를 대신 털어주던 손자의 모습이 너무나도 정겨웠다.


어린 시절 대가족으로 살았던 나는 유독 조부모님과의 추억이 많다. 장손인 나를 무척 아꼈던 조부모님, 그중에서도 할아버지는 나의 친구였다. 심심할 때면 할아버지와 함께 배드민턴을 치기도 했고, 나만의 아지트를 만들어주시고 싶었는지 옥상에 조그마한 집을 하나 지어주시며 나의 동심을 지켜주기도 하셨다. 저 조그만 아이도 할아버지에게 효도하는데.. 마음속으로 돌아가면 할아버지께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한 순간이었다.


그 다정한 모습 옆으로 쭉 펼쳐져 있던 모래사장 위에는 수많은 이들의 발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모래사장에 찍힌 수많은 발자국을 보고 있으니 누군가 사랑하는 이와 이곳을 걸었던 행복한 기억이 보이기도 했고, 가족과 함께 이곳을 걸으며 함께 따스한 추억을 쌓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그동안 걸었던 산티아고 순례길에도 분명 나의 발자취가 남아있겠지.


세월이 지나고 서서히 그 향기가 옅어져 갈 때, 다시금 나의 발자국을 새기러 꼭 돌아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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