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awer Oct 23. 2020

나에게 인생은 마늘 치즈와도 같아서


  최근 읽은 책에서 이런 구절을 봤다. 이제는 치즈를 당당히 한식 재료의 반열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고. 한식의 5대 재료는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 그리고 치즈라고. 우리는 모든 음식에 치즈를 올렸으며 심지어 밥 위에도 치즈를 올려 먹는 유구한 민족이라는 재미있는 글을 읽었다. 생각해 보니 맞다. 어느 음식점에 가도 치즈를 얹은 퓨전 메뉴를 쉽게 찾을 수 있고 치즈 토핑은 기본 토핑 중 하나이지 않나.



  그런데 나는 치즈를 싫어한다. 치즈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싫어한다. 아마 많은 이들은 내 갑작스러운 취향 선언에 “그래서? 뭐 어쩌라고?” 라 답하겠지? 그러나 내가 “제가 프랑스에서 좀 살았거든요” 라 말하면 반응이 조금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프랑스는 치즈가 유명하지 않나?”, “프랑스인들 주식이 치즈 아니야?”, “엄청나게 다양한 치즈가 한국보다 몇 배는 싸다고 하던데” 등등 프랑스에 있었으면서 치즈를 왜 안 먹어 봤냐고 거의 따지듯이 물어보는 사람도 몇 봤기 때문이다.


  

꼭 Boursin의 Ail et fines herbes여야 한다.

  느끼해서, 특유의 냄새가 익숙하지 않아서, 입에 남는 느낌이 싫어서 등등 내가 치즈를 싫어하는 이유는 참 많다. 이렇게 치즈 극혐론을 펼치는 내가 유일하게 입에 대는 치즈가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fromage ail et fines herbes라는 치즈다. 사실 이건 치즈라고 일컫기도 좀 애매하다. 크림치즈의 한 종류로 일반적인 치즈보다 숙성 기간이 짧기 때문에 특유의 꼬릿한 냄새나 맛이 덜하기 때문이다. 



  이 치즈도 내 자의로 먹은 건 아니다. 반강제로 먹어 본 치즈인데, 사정은 이렇다. 함께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친구 중 한 명이 치즈의 나라 프랑스에 온 주제에, 그것도 그 도시를 대표하는 치즈가 있음에도 입에도 대지 않는 나를 가엽게 여겨 던져준 치즈가 이 마늘 치즈였다. 그녀는 갓 나온 따끈한 바게트를 크게 찢고 마늘 치즈를 곱게 펴 발라 나에게 하사해 자신의 눈 앞에서 먹으라고 협박했다. 이것 조차 안 먹으면 너는 프랑스에서 유학 할 자격도 없다는 눈빛으로 몰아 붙여 거부할 수 없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먹어 본 치즈 맛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해 보자면 알싸하고 뭔가 익숙한 느낌이 나는 게 좀… 맛있었다… 








  왜일까? 베이글에 크림 치즈 발라 먹는 것도 안 좋아해서 생 베이글로 씹어 먹던 나였는데, 왜 그건 또 맛있게 느껴졌을까? 치즈를 발라 먹었던 바게트가 따뜻하니 맛있어서? 아니, 이것 보단 한국인의 얼이 담긴 내 최애 향신료 마늘이 들어가 있어서 거부감 없이 쉽게 먹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고작 마늘 하나가 들어 갔을 뿐인데, 그냥 치즈에서 고작 ‘마늘’ 치즈가 된 것 뿐인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내 인생은 아이러니 하게도, 그리고 또 슬프게도 마늘 치즈 같다. (누구는 인생을 초콜릿 상자 같다고 하던데…) 모든 게 다 마음에 안 들고 짜증나는 거 투성이지만, 그러는 와중 나에겐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것들 덕분에 아무렇지 않게 어쩌다 가끔은 웃으면서 인생을 재미있게 살아 나간다. 날 좋은 날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드는 낮잠, 우연히 발견한 내 취향의 노래, 쿠폰과 적립금 영끌해서 산 셔츠… 

  이런 게 내 인생이라는 치즈에 마늘 같다는 거지.





  Boursin의 마늘 치즈가 단연 1위지만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다. 치즈퀸, 마켓컬리 등에서 Tartare, Madame loik 브랜드의 마늘 치즈를 맛볼 수 있으니 꿩 대신 닭이라도 원하는 사람이라면 도전해 보길 바란다. 맛은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혹시 당신도 시시포스의 저주에 걸렸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