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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랍 Jan 09. 2023

‘저장하기’와 ‘덮어쓰기’

뉴진스의 ‘Ditto’ 얘기부터 시작하려 한다. Ditto라는 단어는 ‘나도 그래’라는 뜻의 영단어다. 조금은 조용한 듯 빠른 템포의 이 노래는 처음은 그저 그런 노래 중 하나였다. 하지만 뮤직비디오를 보고 나는 며칠 동안 한 곡만을 반복해 들었다. 뮤직비디오가 전하는 메시지를 기반으로 가사를 다시 읽으면 그 속에는 추억에 대한 말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Ditto’의 뮤직비디오는 한 소녀와 뉴진스로 대표되는 스타의 이야기가 담겼다. 캠코더를 늘 들고 다니는 소녀는 자신의 스타와 함께 일상을 보낸다. 하지만 어느 순간 캠코더를 내려놓고 사랑했던 스타와 점차 멀어지고 소녀는 성인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구석에 있던 박스에 담겨있던 옛 비디오를 다시 보고, 자신만의 스타와 함께했던 시간에서 다시 온기를 느끼며 비디오는 끝난다.     


뮤직비디오는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만남과 이별, 특히 한 때는 전부였지만 어느 순간 멀어진 대상에 대한 감상을 시끌벅적한 학교의 모습에 담아냈다. 그리고 헤어지고 긴 시간이 지나서 다시 꺼내도 나를 찾아와 시끌벅적했던 그때로 데려간다. 뉴진스의 뮤직비디오는 “우리가 함께하고, 나중에 헤어지더라도 지금의 마음은 언제나 남을테니 가치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동안 많이 애정했던 이들과 연이은 이별로 인해 그들과 겪었던 시간들이 어쩌면 허공에 흩날린 그 무엇이 아니었는지, 그저 시간낭비로 치부될 것들이 아닌지 고민했었다. 그러던 순간 DItto 뮤직비디오는 말했다. 지금의 위치가 달라졌지만, 그때 그 시간 속에 내가 느꼈던 감정의 흔적은 가치없는 무언가가 아니라고 말이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사랑했던 기억을 고통스럽게 바라보지 말라는 말 앞에서 나는 따스함을 느꼈다. 그렇기에 한동안 나는 그 순간이 행복했냐고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상대들에게 무수히 묻고 ‘나도 그렇다’는 답변이 돌아오길 바라곤 했다.     


그러던 와중 이번엔 가볍게 보던 드라마의 한 장면의 말들이 나를 이끌었다. 남편과 사별하고 힘들어하는 한 여인에게 등장인물은 말한다. “이제 우리는 단어를 새로 배워야 해요”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여인의 집에 남아있는 사별한 남편의 물건을 모두 버리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이 소파는 남편과 함께 앉던 소파가 아닌 너무 낡아 버려야 할 소파에요”라고 말하며 차례대로 사별한 이의 흔적이 남은 것들을 차례로 집 밖으로 내놓기 시작한다.     


물건을 덜어낸 뒤 등장인물은 말한다. “이제 우리는 방을 새롭게 채울 고민을 해야 해요. 어떤 물건을 들여놓을지, 이 방을 어떻게 쓸지 고민해봐요”라며 방의 문위기를 모두 바꿔버린다. 그렇게 여인은 사별한 남편의 흔적과 살아가는 일을 멈추고 자신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등장인물에게 왜 물건을 다 버렸냐고 묻자 그는 “내가 죽은 사람과 살아 봤기에, 지금을 살지 못하고 죽은 사람과 사는 꼴을 또 볼 수는 없었다”고 답한다.   

  

조금은 감동적이면서도 추억의 더미에 깔려 사는 내게 이 장면은 의미심장했다. 불과 지난주엔 추억이 헛된 것이 아닐지 고민하지 않기로 해놓고 이제는 지금을 살기 위해 과거의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 이어진다는 건 조금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두 이야기를 마주하고 고민에 빠졌지만, 이내 두 말은 어쩌면 하나를 말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착했다.    

  

Ditto와 드라마 속 한 장면이 내게 말한 것은 하나의 결론이었다. 결국 ‘지금을 충실하게 살자’는 것. 언제 꺼내 봐도 그날의 온도와 공기를 느낄 수 있으려면 추억을 쌓는 지금에 집중하고, 미래에 다가올 이별을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과거의 흔적들에 휘둘리지 말고 과감하게 지금 내게 다가오는 것들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일을 겪고, 또 많은 것을 저장한다. 그렇게 저장된 기억은 내게 행복이 되기도 하고, 나를 계속 과거로 데려가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가 더 많은 기억을 쌓고 행복을 위해 나아가려면 슬픈 기억을 지우기 위한 과감한 덮어쓰기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바로 내가 마주한 음악과 드라마가 전한 메시지의 결론이었다.     


문득 마음에도, 뇌에도 컨트롤 S 버튼이 있어서 놓치지 않고 저장하고, 언제라도 쉽게 덮어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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