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친 외양간에도 볕 들 날은 오는가

멀티버스도, 시간 여행도 없는 우리에게 부서진 외양간이란

by 이서랍

티비를 보거나,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빠지지 않는 주제가 있다. “너 그때로 돌아가면 무엇을 하고 싶니?”라는 질문에서 시작하는 자신이 후회하는 과거에 관한 이야기다. 뜬금없는 질문에 답하려다 과거의 삶에서 후회했던 순간들을 되짚기 시작하면 결국 어떤 순간을 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결국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정하지 못한 채 그저 로또를 산다거나 값어치가 크게 오를 주식을 사겠다는 조금은 뻔한 답을 내놓곤 한다.


‘과거의 사건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이라는 사람들의 상상은 대중문화에서 다양한 형태로 구현되곤 한다.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거나, 한 번 죽은 사람이 과거로 돌아와 두 번째 삶을 살며 잘못을 바로잡거나, 멀티버스 속 또 다른 나와 함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분투한다. 사람들이 달라 보여도 결국 같은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들에 열광하는 이유도 인생에서 후회되는 사건들을 바로잡을 기회가 오길 바라는 마음을 주인공들이 대신 풀어준다는 점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다운로드.jpg (왼쪽부터) 피터 2, 피터 1, 피터 3

2021년에 개봉했던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블 유니버스 속 피터 파커(영화 속 피터 1)의 실수로 다른 세계에서 살던 악당들이 풀려난 뒤 사고가 연이어 발생한다. 이에 피터 1이 고군분투하지만, 해법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우연히 다른 세계의 스파이더맨들이 마블 유니버스의 세계에 합류한다. 그렇게 만난 세 스파이더맨은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한다.


언뜻 보면 시간 여행과 멀티버스 등을 다룬 이야기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서사는 차이점이 있다. 과거와 미래를 알기에 쉽게 문제를 풀어내는 인물이 아니라 ‘소 잃고 외양간 고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 달랐다.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속 피터 파커(영화 속 피터 2)는 친구의 아버지였던 그린 고블린과 결투 끝에 그의 죽음을 곁에서 본다. 약 20년 뒤 그린 고블린을 다시 만난 피터 2는 과거의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했던 연구를 토대로 치료제를 만들고, 격투 끝에 그린 고블린을 죽이려 하는 피터 1을 막아내며 자신이 과거에 했던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한다.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속 피터 파커(피터 3)는 과거 자신의 연인인 그웬이 높은 건물에서 떨어질 때 거미줄을 쏘아 구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피터 1의 연인인 MJ에게 몸을 먼저 던져 안정적으로 구해낸다.


영화 속 피터 2와 3이 과거의 실수에서 나아가 아픈 기억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과거를 바로잡을 방법을 찾기 위한 끝없는 연구였다. 피터 2와 3이 과거의 사건을 묻어두기만 했다면, 실수는 다시 반복됐을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쳤기에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한 셈이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피터 2와 3처럼 상처로 자리 잡은 아픈 기억이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시간 여행이나 멀티버스가 없어 아픈 과거를 바로잡을 기회가 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에서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자 고민하는 우리를 조금은 놀리는 듯한 뉘앙스가 들리는 게 아닐까. “실수를 돌이킬 수 없으니, 아픈 과거는 묻어둬”라고 하는 훈수와 함께 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시간 여행과 멀티버스가 없더라도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피터 2와 3이 큰 고통으로 방황하는 피터 1의 재기를 도운 것처럼 과거의 실수를 넘어선 사람은 다른 이를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아픈 기억을 넘어선 경험을 토대로 타인의 실수를 막고, 더 나은 길을 알려주는 히어로가 될 수 있다면 이제 와서 외양간을 고쳐서 뭐 하냐는 조롱은 오히려 바보 같은 말이 아닐까.


앞으로는 실수를 극복하고 나아가려는 사람에게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어쩌면 그 사람은 언젠가 나의 실수를 막아줄 히어로로 돌아올 수 있는 인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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