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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희 Sep 01. 2023

말, 말, 말

일생, 잊히지 않는 말

  70년대 말, 80년대 초 그 무렵엔 돈이 없거나, 외모에 관심이 없거나를 제하곤 대부분 헤어펌 하는 것이 유행이었던 듯하다. 요즘 흔한, 머리에 차분히 붙는 생머리 스타일이 아닌, 볼륨 있는 단발머리에, 앞, 옆머리 등을 바람머리로 말아 올린 <혜은이 머리>를 한다고 거금을 투자해 펌을  했다.  좋아하는  교회 형제님과의  주일 오후 데이트를 앞두고.  

그러나 막상 펌을 하고 나니 어색함에, 생소함에 어쩔 줄을 몰랐다. 모두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아 주일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만 손이 머리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오후가 되었고,  성가연습 후에 의례적으로 청년들만 모여 갖는 <다방 커피타임>도 마친 후에야 , 형제님과  나는  걸었다. 집이 같은 방향이었다. 천천히 걸었다. 그날따라 부쩍 조용한 나를 보며  " 헤어 펌을 하셨군요. 잘 어울리네요."  " 아니에요. 제 얼굴이 아닌 것 같아요. 어색해 죽을  맛이네요. 괜히 했어요."  변명하느라 전전긍긍했다.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을 들킨 것도 같고. 한편으론  " 예쁘다. 잘 어울린다 " 로 확인받고 싶기도 해서.

" 아니, 제가 보기엔 좋은데~~

저엉 어색해도~  걱정 말아요.

머리카락은 또 자랄 거니까. "


그 후로  절망스럽고, 후회스러운 일이 있어 주저앉게 될 때마다, 이 말이 떠올라서  나를 일으켜 세워주곤 했다. 나의 첫사랑, 눈웃음이 선한 형제님의 그 말!

" 머리카락은 또다시 자랄 거니까 ~ "


마지막 시무지를 떠나야 할 때  우리에겐 아무런 경제적 대책이 없었다. 이런 날이 올 줄 모르고, 그간  들었던  종신보험(은퇴한 후 환급될), 아이들 교육 보험 등등을 해지해서 예배당 신축헌금에 앞장섰다. 입당 후 헌당 시까지 부모형제에게 도움받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모아  드렸다.  그래서 건강찮은 남편을 모시고 , 아직 학업 중인 아들들을 위한 대책이 준비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사회복지대학원에서  <은퇴목회자의 복지실제와 발전방안>에  관한 연구로 석사논문을 썼었다.

그리고 남편은 시종일관  " 여보, 믿어요. 하나님께서 주실 거야. 예비해 놓으실 거니까  무얼 먹을까 입을까 걱정 말아요." 하여서, 어렵지만 강제력을 빌어서 조금씩 모은 보험, 적금 등도 ' 믿음 적다 ' 핀잔받을까 봐 조심스러웠던 실정였다.

 드릴 퇴직금이  없다는 그들을 뒤로하고 , 자칫 그간의 헌신과 전파한 예수그리스도께 욕이 될까 봐  서둘러 나와서  맏이의 숙소에 머물었을 때, 친정 동생의 배려로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차, 새가구, 가전, 주방기구, 식기류, 쌀등 식료품, 각종 향신료, 양념, 생필품.… 일체를  공급받았다. 동생은 " 자형과 누나는 선교사요, 그 사명을 다하셔서 이제는 쉬시는 안식관이라고 여기시고 건강 챙기십시오. " 하며 혈육이라기보다 주님의 일꾼으로 예우했다. 평소에도 자신의 거쳐보다 열악했던 누나네가 마음에 걸렸다고  다윗 같은 고백을 했다. 뚝딱 아파트 한채 사주고 넘칠 재벌은 아니었는데 자기의 안락을 조금 덜 편하고,  나누려 한 것이었다 그동안도 동생은 누나와 자형의 대학원 학비, 조카들의 학비, 생활비, 건축감사헌금 등. 물심양면을 돈독한 신앙가운데서 도와왔다. 목회하는 우리를 소중히 여겼고 축복기도의 능력도 믿었다.  

나는 좋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면서도 혈육인 동생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함에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변명처럼, " 세상에, 그럴 줄은 몰랐다." 며 탄식했더니,

"누나!

땅에서 다 받아 버리면 하늘에서 받을 것이 없잖겠어요?  하늘에서 받을 것이 있어야죠… "


그래서 나는 불평할 수 없다.

그저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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