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희 Aug 04. 2023

본향을 향하는 미물의 나래짓

누가  크니?

비가 종일 오락가락합니다. 후덥지근한 장마가 지루하게 계속된다고 합니다. 불안은 현실이 되어 수해소식도 들려옵니다. 어쩌면 좋단 말인가! 기후만큼이나 습한 컨디션창문을 열 수도 없고, 열어도 시원한 바람도 들진 않습니다.


잠시 비가 멈췄나,

' 어맛, 고추잠자리네!'


아파트 16층인데 두세 층 더 높이 날고 있는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제 시선을  스칩니다. 고추잠자리를 보니 생각난 것이 있습니다.

서랍을 열었습니다. 더위도, 지루함도 잊고서 시간 여행, 추억 여행을 떠납니다. 40년 전 대학시절로.




  눈이 시립 습니다. 푸른 하늘 탓에. 쳐다볼수록 자꾸만 높아 갑니다. 또 쳐다봅니다. 대구 땅 어디선가부터 왔답니다. 능금 익는 청량한 내음이. 요즘 저는 통금 임박한 시각의 겨울 거리, 그 겨울밤 거리에 흩어지는 발소리를 들을 때처럼, 왠지 조급해지고 바빠집니다. 영어 캠프, 여름성경학교, 봉사활동, 수련회 등등. 유난히 땀 속에 젖어 보낸 여름. 작렬했던 태양만큼이나 내 삶을 송두리째 던져서 지낸 날들. 점검하며 새롭게 가다듬을 여유도 잃은 채 부지런히 일몰과 함께 돌았었는데 벽에 까맣게 말라붙은 한 마리 파리를 보고 다시 오늘이란 시점을 생각합니다. 행동했던 계절, 그 여름이 지난 다음의 시점에서 저는 생각하는 계절을 맞이합니다. 그래선지 하루를 온통, 입 열지 않고 긴 명상 속의 대화로 보낼 수가 있습니다. 아침 등굣길에서부터 저를 명상에로 이끄는 것들을 만납니다.


  골목에서 몰려나오는 한 무리 사내아이들은 제각기 책가방을 메고 작은 도시락  가방을 들고 있었습니다. 상기된 바알 간 얼굴들은 상당히 흥미롭게 보였습니다. "상훈이 네가 나보다 크니?" "아니, 그럼 영일이 네가 우리 형보다 커?" "뭐? 그럼 너희 형이 저 나무보다 크니?" "흥 , 그럼 저 나무가 자이언트 바바보다 크니?" 각기 큰 것을, 보다 큰 것을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에이, 그럼 그..." 말문이 막히는지 머리만 긁적 대는 영일이라는 아이도, 다른 아이들도 궁색한 표정으로 더 큰 것에 대해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그중 한 아이가 소리쳤습니다. "얘! 그럼 넌, 너는 '하나님보다 크니?' 하면 되잖아! ". 아이는 안타까운 듯 돌멩이를 걷어찹니다. 그제야 영일이도 함께 하던 아이들도 화알짝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이들의 발걸음은 다시 경쾌하게 학교로 향해졌습니다. 저도 문득 다시 걸음을 옮겼습니다. 왠지 이마가 서늘해졌습니다. 분명 눈을 뜨고 걷고 있는데도 다시 눈을 크게 떠 보았습니다. 절대적인 신앙! 어린아이와 같은…. 아, 우리가 저처럼 어떤 이의 논리도, 내부로부터 끊임없이 솟아 나오는 어떤 종류의 의혹도 완전히 압도해 버리고, 이 모든 것들, 누구나가 긍정하지 않을 수 없는 진리의 선포를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절대적인 신앙, 그 자체 그대로가 우리들 신학도의 것이어야 하는데…. 무엇엔가 가슴이 벅차서, 성주산으로부터 오는 아침 신선한 정기를 맞기가 어지러웠습니다. 화요 예배를 드리는 오늘, 아직 아무도 오잖은 넓은 고요, 진지함이 곳곳에 배인 성소에서  신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주여, 당신께 왔습니다. 무엇보다 당신이 먼저 절 사랑해 주셨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이 기억을 자꾸만 흐리게 하려는 저의 넝마 같은 모습, 자꾸만 절 주께 올 수 없도록 윽박지르는 가증한 저의 죄. 하여 여기 굳이 당신의 사랑의 징표, 십자가를 의지하고 단숨에 이렇게 엎드려 버립니다. 사랑의 참 주여! 두려움에 떠는 이 죄인에게 아직도 영원히 사랑하고 계신다는 그 음성, 자비의 그 음성을 또 들려주시옵소서. 저의 마음의 컵과 내 이웃의 요구가 부딪혔을 때 내 컵에서 쏟아지는 것은 주의 향기로운 영이게 하옵소서. 오 주여, 간구하나이다. 아침 오르는 길에 보여주신 그 절대로운 믿음을 모든 신학 위에, 물 끓듯 이는 의혹 위에 , 무뎌 지친 교회 위에, 온전히 내려 주소서. 또한 양들 앞에 선 목자로서의 격 이전에 항상, 오늘도 '주께 용서받은(죄인) 자'로서 겸허한 자세로 있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의 골고다를 의지하옵고 감히 주께 고백합니다. 하오니 진정 당신의 보혈이 참일진대, 저의 주께 드리는 이 마음도 참이옵니다. 이제 저를 써 주시옵소서 당신의 양을 먹이렵니다. 고요히 진지하게 당신의 부르심을 기다립니다. 오늘도 그 영광스러운 부름에 합당키 위해 공부하며 훈련하는 저의 생활 속에 주! 나의 보혜사시여 함께 하시옵소서. 다시금 고백합니다. 저의 궁극은 주께 있나이다. 힘주시기를 빕니다. 날 사랑하는 그리스도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가쁘던 호흡도 평온으로 가라앉고 스며 번지는 포근함이 외가 할아버지 품에 안겼던 어린 시절 같았습니다. 또한, 밀려오는 감사가 눈가에 이슬 되어 기쁘게 반짝입니다. 영원한 그분의 잔영을 담은 채 예배당 창 너머 숲을 바라봅니다. 아~ 당사실! 열필 명주를 올올이 걸어 맨 듯, 따사로운 빛줄기줄기는 숲에 온통 눈부셨습니다. 은혜의 빛 줄기줄기. 현미경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보듯 너무도 선명한 저 빛의 올, 올들. 감전된 듯 떨며 전율합니다. 저기 저런, 꼭 저 빛줄기처럼 그분의 사랑은 세밀하게, 공평하게, 그리고 완전하게, 우리 모두에게 향하고 있겠지. 꼬-옥 저 빛 낱처럼 말이다. 행여 바람이 스치기만 해도 숲은 감사의 함성을 터뜨릴 것만 같이 찬양으로 충만합니다. 이제 저곳도 감사로 빨갛게 익게 되리라. 그렇지, 곧.


하지만 강의 시간에 나는 몇 번이고 주께 죄인임을 고백해야 했습니다. 그분이 맡기신 시간, 건강, 지혜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모르겠습니다. 왜 자꾸만 실수 아닌 실수를 저지르는지. 예습도 복습도 없는 나의 수업 준비.

 '오늘만은….' 하고 바삐 집으로 향하는 하굣길에서 또  명상으로 이끄는 귀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한 마리 고추잠자리가 캠퍼스 한 모퉁이 코스모스 길 위를 납니다. "오호, 해마다 이맘때면 내 고향 갈대숲이 황혼빛에 익는 강변 한 어귀에 유난히도 많이 모여 맴돌곤 했지" 대체 어디서 올까? 그리고 대체 어디로저는 가는 걸까? 그 작은 고추잠자리는 위를 향해 자꾸만 날아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섭도록 푸른 창공을 향해 쉬지 않고 비벼대는 고 빨간 고추잠자리의 나래짓이 제게는 무모한 도전자의 부질없는 행위처럼 보여, 조금 비웃었습니다. 저기, 저렇게 버티고 있는 웅장한 산도 망망대해 창공도 도무지 겁내지 않고 치솟는 조그만 점. 나의 이런 생각, 모처럼의 관심마저도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날아오르고 있습니다. 고 조그만 잠자리는 용케도, 놀랍게도 자기가 미물이란 것에 대해 창조주께 불평을 말하지도 않으며 여전히 날고 있었습니다.


문득, '한 떨기 작은 불꽃!' 이렇게 외쳐버렸습니다.

아하! 고추잠자리가 저리 붉은 까닭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 어디서 왔는지 이제야 모두 알 것 같습니다. 하늘 끝 어딘가의 본향을 향해 날도록 창조된 그 미물은 숙명처럼 끈기 있게 날개를 비벼대며 저 엄청난 창공을 향해 치솟아 오르다가 본향을 향한 열망으로 그 작은 몸이 그토록 붉게 타 버렸나 봅니다. 오직 한 목적, 본향을 향한 그 바람의 성실한 나래짓은 결국 빨간 불꽃으로 화하여 저 창공에 흡수되었기에 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토옹 모르고 있었나 봅니다. 아, 날고 싶습니다. 저 미물처럼 불꽃 되어 타도록... 거대한 창조주의 영역 속에 있는 한 점, 미물 고추잠자리 같은  나지만 작음을, 나약함을 탓하지 않고 성실히, 쉼 없이, 그리고 끈기 있게 날고 싶습니다. 불평 없이 숙명처럼 말입니다. 끝없이 푸른 창공을 아직도 날고 있는 고추잠자리를 바라보다가 아, 그분을 생각했습니다. 울컥 감사가 치밀어 오릅니다. 본향을 향하는 미물의 나래짓을 통해서 또 새롭게 힘을 주시는 그분!


  다시금 바빠지고 조급해집니다. 이 계절 탓 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침, 예배당 너머의 숲, 바로 그 숲이. 아니, 남도 어느 들녘에서부터 인지 벼 익는 소리가. 또 , 아니, 북녘 웬 심산유곡에서 인지, 단풍 익는 소리가 그분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기 전에 제가 먼저 서둘러 감사의 글을 올리고 싶어서.   작은 불꽃 되기까지 아마 곳곳에서 벌써 감사의 함성. 그 봇물이 터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저기 작은 고추잠자리가 아직, 끊임없이 날고 있듯 나도 그렇게 날아보렵니다. 이 계절에...


하늘을 쳐다봅니다. 눈이 시립니다.

작가의 이전글 관계의 능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