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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완벽한 축제(feat.오쇼의 가르침)-part1

'있는 그대로' 존재하기 위하여

by b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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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뉴스레터는 한 번에 다 읽으려 하지 마시고, 여유가 되실 때 천천히 읽어 나가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 한 챕터 씩 읽어나가며 하나하나 어떤 의미인지 나의 삶에 새겨 보세요 :)
* 총 두 번에 걸쳐 뉴스레터가 이어집니다.



프롤로그: 일상의 강화


무더운 여름, 오랜만입니다. 7월은 저의 생일이었습니다. 생일에는 늘 특별한 비일상을 지냈는데요. 지난 비일상과는 달리, 이번에는 조금 다른 기념일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일상을 벗어나지 않고, 오히려 일상을 강화할 수 있는 활동을요. 꽤나 루틴 한 저의 일상을 조금 더 강화하는 것은 명상 워크숍이었습니다. 오쇼의 사상을 먼저 접한 저는 오쇼가 고안한 액티브 명상을 경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KakaoTalk_Photo_2024-08-18-17-23-58.jpeg 명상 전 설명 듣는 중


평소 앉아서 명상을 했던 사람들에게는 액티브 명상이라는 개념이 조금 생소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움직이는 명상, 요가를 하고 있는 우리들에겐 어쩌면 익숙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몸에 주의를 기울이며,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도록 늘 의식적으로 연습하는 우리에게는 말이죠. 이미 전통적인 좌식 명상을 벗어나 현시대에 조금 더 알맞은 명상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 제가 경험한 액티브 명상은 요가 그리고 단순 몸을 움직인다는 것을 넘어 조금은 달랐습니다.



액티브 명상



액티브 명상은 오쇼가 고안한 기법인데요. 정적인 좌식 명상과는 달리 액티브 명상은 다양한 카타르 시스 기법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춤, 웃음, 눈물, 역동적인 몸의 움직임, 강렬한 호흡법, 가슴치유, 소리 치유, 단전 활성 등 다양한 명상법이 있습니다. 오쇼 명상에 대한 소개를 살펴보던 중 꽤나 액티브 명상을 합리적이게 만든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 현대인들은 대부분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활화산과 같은 상태이거나, 계속해서 내면에 마음의 쓰레기들을 산더미처럼 쌓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내면의 상태에서, 조용히 앉아서 호흡을 지켜보거나 정적인 명상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먼저, 치유와 정화 작업이(카타르시스 요법) 필요한데, 이 정화 작업을 위해서 다양한 액티브 명상 기법이 우선됩니다.


액티브 명상은 저에게 있어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5시간 동안 다양한 종류의 액티브 명상 기법을 경험하며 몸 구석구석 차크라를 깨워내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움직이고 호흡하며 모든 감정을 떨쳐버리고 나서야 저는 근접한 ‘무’의 상태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에너지를 비워내고 오히려 다시 채워 온 저는 일상의 강화라는 선물을 받고 왔습니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온 저는 오쇼에 대해 조금 더 탐구해 보기로 했습니다. 오쇼가 가진 사상과 말들은 너무나 좋았고, 특히 그중에서 「장자의 오쇼 강의」는 분명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 많은 지혜를 주는 이야기들 이었습니다.


이 번호 뉴스레터에서는 오쇼의 가르침에 대해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이런 분께 추천드려요!

현인들의 지혜를 빌려 우리 삶에 도움을 받고 싶은 분

요가 & 명상 수련자

자신만의 길을 걷고 싶은 분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 같다 고 생각되는 분

내면에 관심 있는 분


오쇼의 장자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글을 구성하였습니다.




구분 짓는 마음, 경계선 넘어


우리는 전체적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속에 구분이 일어나면, 일단 이것이 옳고 저것이 그르다는 것을 분별하면, 이미 병든 것이다. 그때는 진리에서 한없이 멀어진다.


어린아이는 자연 그 상태로 삽니다. 그는 전체적입니다. 그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노력한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한 부분은 찬성하고 다른 부분은 반대합니다. 그래서 노력이 뒤따르는 것이죠.


노력이 사라지면, 어떤 것도 불완전하지 않으면, 그때 꿈은 필요 없습니다. 꿈이란 어떤 것을 완성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낮 동안에 미완성인 채로 남은 것이 있을 때 그것은 꿈속에서 완성됩니다.

인간의 마음은 모든 것을 완성하려는 경향이 있다. 완성된 것이 아니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래서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래도 미완성이면 꿈속에서 그것을 완성시킨다. 욕망이 있는 곳에 꿈이 있을 수밖에 없다. 욕망은 곧 꿈이기 때문이다. 꿈은 욕망의 그림자다.


꿈꾸는 마음 때문에 그대의 참모습은 부정됩니다. 꿈이 그대를 혼란시키는 것이죠.

지금 이 순간 신처럼 되라고. 분노가 있게 하라. 성욕이 있게 하라. 욕망이 있게 하라. 다만 그대는 삶을 축제로 만들라.



삶을 그 전체성 속에서 축제 분위기로 만들 때 모든 잘못된 것들이 사라집니다.

바로 이 순간 신처럼 돼라. 비록 그것이 ‘마치 신이 된 양 행동하는 것’이라고 느껴질지라도 신경 쓰지 말라. 비록 ‘ 난 지금 나 자신이 신인 것처럼 가장하고 있다’고 느껴질지라도 신경 쓰지 말라. 그렇게 가장하는 것부터 시작하라. 그러면 머지않아 실체가 따라올 것이다. 실제로 그대는 신이기 때문이다. 일단 그대가 신으로서 존재하기 시작하면 모든 고통, 혼란, 어둠이 사라진다. 빛이 돼라. 그리고 그렇게 되는 데는 어떤 조건도 필요가 없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달아나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그대는 독특하고 자기만의 것이고 비교할 대상이 없는 존재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에도 존재한 적이 없으며 미래에도 없을 것입니다. 오직 그대만이 그것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기뻐하세요! 독특한 어떤 것이 모든 인간 존재에게 일어납니다. 신은 모든 인간 존재마다 독특한 선물을 주었습니다.


무엇으로 된다는 것은 곧 이미 그곳에 있는 그 존재를 향해 다가간다는 뜻입니다. 결국 그대는 그대 자신인 것으로 돌아올 것이며, 그것이 언제나 그곳에 존재했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목수로 유명한 공수는 아무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도구를 사용한 것보다 더 완벽한 원을 그릴 수 있었다.


circle.jpg 출처 : @pinterest



두려움이 없다면 아무 도움 없이도 완벽한 원을 그릴 수 있습니다. 자연 속에는 도처에 원이 존재하고, 세상 만물이 원의 형태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자기를 의식하지 않으면 삶은 자동적으로 흘러갑니다. 자기를 의식하는 것, 그것 이 여기서 말하는 ‘도구’입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달아나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그대는 독특하고 자기만의 것이고 비교할 대상이 없는 존재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에도 존재한 적이 없으며 미래에도 없을 것입니다. 오직 그대만이 그것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기뻐하세요! 독특한 어떤 것이 모든 인간 존재에게 일어납니다. 신은 모든 인간 존재마다 독특한 선물을 주었습니다.


무엇으로 된다는 것은 곧 이미 그곳에 있는 그 존재를 향해 다가간다는 뜻입니다. 결국 그대는 그대 자신인 것으로 돌아올 것이며, 그것이 언제나 그곳에 존재했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wla.jpg 출처 : @pinterest



장자는 말한다. 그대는 삶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도구가 필요하다. 도덕이 필요하고, 계율이 필요하고, 교리가 필요하다. 성경과 코란, 바가바드 기타가 그대를 지배해야 한다. 내면에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실천해야 할 수많은 계율, 따라야 할 수많은 교리, 수없이 많은 도덕관념들… 그대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자기 자신에게 짐 지웠다. 그래서 내면의 삶은 자연스러운 것이 될 수 없다.


오직 삶만이 존재합니다. 성직자들이 신을 만들고, 그들이 악마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옳은 것과 그런 것을 구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단 구분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결코 옳을 수 없습니다.


그대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어떤 악한 힘 때문이 아니라 소위 세상의 ‘선한 사람들’ 때문이다. 그대를 잘못 인도하는 것은 악마가 아니다. 성직자들, 지도자들, 소위 성자라고 불리는 자들이다.




에고가 사라지면, ‘나’는 존재하지 않을까?


인간의 마음은 언제나 에고로 귀결됩니다.

자신의 마음에, 에고에 귀 기울일 때 에고에 귀 기울일 때 그것이 아주 미묘한 논리로 그대를 설득시킬 것입니다. 그대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그대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가장 우월한 존재라고. 그대는 곳 신이라고. 이런 이기적인 태도가 찾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논리의 최종 단계입니다. 그리고 마음은 모든 것에 대해 의심을 갖지만 자신의 에고에 대해서는 결코 의심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언제나 자신을 비우는 것에 반대합니다.

그대가 죽었을 때, 오직 그때만이 신을 볼 수 있습니다. 그대 자신이 장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대 자신이 눈가리개입니다.


ego.jpg 출처 : @pinterest


에고와 신, 그대는 둘 다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둘 다 선택하려고 할 때 그대는 결국 에고를 선택할 것이며 그대 안에서 신은 죽을 것입니다. 존재계 안에서는 신이 죽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대 안에서는 신이 죽을 것입니다. 그는 그곳에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 자신으로 너무나 꽉 채워져 있기 때문이지요.



왜 에고는 항상 싸움을 추구할까요?

그것은 싸움이 에고의 연료이기 때문입니다. 싸움을 통해 에고는 존재합니다. 에고는 가장 뿌리 깊은 폭력이다. 에고를 강화시키길 원한다면 끊임없이 싸워야만 합니다.

에고는 언제나 두려워합니다. 에고는 결코 두려움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에고는 거짓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도의 한 부분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위적으로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그것을 유지시켜야 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단 한순간이라도 관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것이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긴장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인간의 의식에게는 연료가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끝이 없는 에너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대가 의식과 하나가 되었을 때 그곳에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영원한 근원에, 불멸하는 것에, 죽지 않는 것에 이르렀을 때만이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죽음을 모르는 것에 접촉했을 때만이.


에고가 겁쟁이며, 또 에고는 두려움 그 자체일 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닫고 자각한다면 그대는 더 이상 그것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완전에 가까운 것만이 존재한다고. 완전해지는 순간 그대는 사라진다. 완전은 물질 속에는, 물체 속에는 존재할 수 없다. 물질 그 자체가 약간의 불완전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부족한 그 약간의 것이 그대와 육체를 연결하는 열결 고리다.




다시, 우리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


흘러감, 그 자체가 궁극의 깨달음임을

인간의 마음은 완성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완성인 것은 긴장을 줍니다. 웃고 싶은데 웃지 못하면 긴장이 있습니다. 소리치면서 울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하면 긴장이 있습니다. 화를 내고 싶은데 화내지 못하면 긴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대는 이토록 오랫동안 병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대는 존재 전체로 웃어 본 적이 없습니다. 존재 전체로 울어 본 적도 없습니다. 존재 전체로 화낸 적도 없습니다. 존재 전체로 미워한 적도 없습니다. 그리고 존재 전체로 사랑한 적도 없습니다. 어떤 것도 존재 전체로 행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이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었습니다.


어떤 것도 완전하게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미련이 남아 있습니다. 마음속에는 온갖 것들이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습니다. 그대가 이토록 휴식하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대는 단 한 번도 마음의 평화를 느낀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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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 자체로 흘러가게 하세요. 그저 흐름에 내맡긴 채 흘러가도록. 그 흐름이 그대를 어디로 데려가든 자신을 내맡기세요. 하늘에 흘러가는 흰 구름이 되세요. 목적지도 없고 특정한 방향도 없이 그냥 흘러갈 뿐, 그 흘러감 자체가 궁극의 깨달음입니다.


자연적이 되라는 것입니다. 자연은 그 자체로 완전합니다.

자연은 일단 인간이 그것을 개선하려고 하는 순간 그 존재가 위협받는다. 그것은 신을 개선하려고 시도하는 것과 같다.
그 최상의 궁극적인 자연을 그는 ‘도’라고 부른다. 도는, 자연은 최상의 궁극적인 것이며 개선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기

자연스러운 것, 그리고 자연스럽게 되는 것, 노력 없이 자연스러운 것,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 이것이 장자가 주고자 하는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인간의 생각은 인위적인 것이며, 사회에 의해서 그대에게 심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비난한다면 그것은 마음속에 하나의 분열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분열이 그대의 불행, 그대의 지옥이 될 것입니다. 자신을 비난한다는 것은 곧 본성, 또는 자연스러움을 비난하는 것이고, 자연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문제는 아무도 그대에게 자신을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본성을 인정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라! 존재계 전체에게 감사하라.


부분은 전체를 정복할 수 없습니다. 부분이 전체를 정복하려고 노력한다면 그 부분은 미치고 말 것입니다. 전체는 아무것도 잃는 것이 없으며, 부분이 모든 것을 잃을 것입니다. 부분은 전체와 함께 존재할 수 있을 뿐, 전체에 대항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삶에 자신을 내맡기라. 그래서 자연이 그대 속으로 흘고, 그대가 자연 속으로 흐르게 하라. 그러면 더 많은 삶을 즐기게 될 것이다. 더 많은 에너지가 남기 때문이다. 그대는 에너지로 충만해질 것이다.


받아들이는 것,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도의 근본이다.
있는 그대로의 상태는 아름다운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존재 상태가 바로 장자의 종교다.


존재하라. 일들이 그냥 일어나게 하라. 누군가 그대를 존경한다면, 그것 역시 그의 결정이지 그대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것이 그대의 관심사가 될 때 그대는 정신 질환에 걸릴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그대는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실현 가능한 유일한 만족은 그대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대 자신이 만족한다면, 그때 몇몇 사람도 그대에게서 만족을 얻을 것입니다. 다른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그대는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규율, 그들의 청사진을 위해서.. 그대가 여기에 있는 것은 그대 자신의 존재를 실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대는 그대 자신의 것을 추구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마다 다릅니다. 모든 것이 개인마다 다르죠. 그대가 따라야만 하는 정해진 규율이란 없습니다. 그대 자신의 규율을 발견해야만 합니다.

그대는 내적인 하나 됨이 아니라 내적인 분열 그 자체다. 내적인 합입을 찾으라. 나는 그대에게 말한다. 타인에게 귀 기울이지 말라.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 비록 때로 실수를 저지른다 해도, 때로 일이 잘못된다 해도 걱정하지 말라. 처음엔 당연히 잘못될 것이다. 타인을 추종하는데 너무나 익숙해져서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 To be continued... ⟪Part.02⟫ 로 돌아올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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