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적으로 오후 반차를 쓰고 군산으로 갔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박해일이 나오는 영화에서도 나왔떤 곳이기도 했고, 어렴풋이 예술과 맞닿아 있는 소도시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흥미로웠다.
군산은 다른 곳들과 다르게 기차가 버스보다 더 오래걸리는 곳이었다. 사실은 오랜만에 국내 여행은 기차를 타보고 싶었는데 더 오래걸린다고 하니 고민이 많이 되면서도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하늘 아래 최대한 가볍게 싼 가방을 매고 버스에 올랐다. 고개를 숙여 안전벨트를 메고 다시 정면을 바라보니 버스가 낯설어 자리를 찾아 헤매는 할머니가 보였다.
"20번이면 제 옆자리로 오시면 되세요"
너무 고맙다며 수차례 인사하고 나와 비슷한 아들도 있다며 원래 알던 사람처럼 수다를 떨기 시작하는 할머니가 부담스러웠지만 싫진 않았다. 어렸을 적 돌아가셨떤 할머니가 문득 생각이 나서, 철없을 때 할머니와 같이 놀지 못했던 내 모습이 보여, 열심히 할머니의 말씀에 맞장구를 쳤다.
전날에 SNS에서 군산 여행 정보를 찾아보니 가기 전에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고 가면 좋다는 글이 있었다. 군산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를 봤다.
영화를 절반 즈음 봤을 때 잠시 휴게소에 정차를 했다. 할머니는 초면에 얘기를 들어준 내가 고맙다며 녹차맛 젤라또 와플을 반 떼어서 내게 주었다. 할머니도 처음 먹어본다고 하셨고, 나 또한 젤라또가 들어간 와플은 처음이었기에 함께 반찬가게에서 도라지무침을 한입 맛보고 맛평가를 하듯 먹었다.
이어서 마저 영화를 다 본 뒤, 군산에 대한 의심은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몽글몽글하면서도 정겹지만 애틋한 스토리의 영화를 보고 난 뒤, 나는 조금 더 설레는 마음으로 군산 터미널에 내렸다. 사람들이 여행을 많이 가는 '소도시'라고 들었던 것에 비해 터미널은 나의 고향인 고흥 터미널 만큼이나 낡고 바랬다.
주변엔 보통 터미널이면 있을 법한 수많은 카페나 음식점이 있다기 보다는 매우 적어서 소도시라기 보다는 시골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쩌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새벽에 부랴부랴 귀찮음과 피곤함을 물리치고 지도로 찾아본 군산 여행 스팟들을 다시 뒤져보았다. 원래의 계획적이었던 나의 모습은 온전히 먼지처럼 사라진 채로, 나는 평소답지않은 즉흥적인 탐색을 시작했다. 컨디션만 괜찮다면 왠만한 여행 스팟이 한 동네에 몰려 있어, 터미널에서 천천히 걸어가면 모두 갈만한 곳들이었다.
군산에는 독립서점들이 몇 군데 있었기에, 서점들을 메인 스팟으로 하고 주변을 여행하는 방식으로 이번 군산 여행을 다니기로 했다. 말 그대로 소도시였기 때문에, 개발 중인 곳들도 많았고, 개발이 필요한, 그러니까 사람들이 떠났거나, 가게가 폐점을 한 곳들도 많았다.
제일 먼저 가까운 곳은 철길마을이었기에 그곳을 향했다. 철도의 끝자락에도 닿기 전에 어디선가 군산의 바다향이 조금씩 스멀스멀 풍기기 시작했다. 바다가 보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신기했던 건, 버스를 기다렸을 때 멍하니 4차선 도로를 바라보고 있었을 때, 자동차가 씽씽 달리며 생기는 바람소리가 마치 파도소리 같았다. 자동차들은 날치처럼, 때로는 돌고래처럼 수면 위를(도로 위를) 헤엄쳤다.
철길 마을은 검정고무신을 연상케 할 만큼 옛날 추억거리를 테마로 한 곳이었다. 부모님 세대에겐 너무나도 좋을 곳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폐업을 한 수많은 가게의 유리창 너머로 햇살들이 다녀가고 있었다. 동네 사람보다 여행자가 더 많은 이 곳에서, 문 닫고 허허벌판처럼 휑한 가게마다 사람냄새가 잘났다. 오래 머물렀던 곳들이다. 그곳에 무언가를 싹 틔우려는 듯이 햇살이 오래 머물렀다.
군산은 생각보다 갈 곳이 많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볼 것이 적지는 않았다. 동네의 집들이 고풍스러우면서도 멋진 곳들이 많았고, 사람들이 많이 없어서 한적하고 고요한 동네를 산책하듯 걸으며 구경하는 것이 좋았다.
군데군데 벽화와 함께 써있는 동시와 문장들이 자주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군산의 집들은 나무 한 그루씩, 또는 크고 작은 분재를 대체로 가지고 있었다. 아무도 살지 않을 것 같은 집앞의 화분이 싱그럽게 살아있는 곳도 있었다.
서울에서 잘 보기 힘든 동네의 모습에 예상보다 더 오랫동안 걸으며 구경을 했다. 서점들을 빨리 가고 싶었지만, 그 욕심을 억누르며 걸었다. 간판 없이 고즈넉하고 세련되게 꾸며진 가게들도 군데군데 숨어있어 보물찾기를 하는 마음이었다.
많은 소품샵들을 가봤지만, 소품샵보다 가게의 멋지고 아름다운, 그러나 뽐내지 않고 각자의 위치에서 살아가고 있는 가게들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어떤 가게들은 폐업으로 텅 빈 가게들 사이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여행을 가서 서점을 들르면 꼭 책을 한 권씩 사는 버릇이 생겼다. 인터넷으로 구매하면 더 편할 것을 알면서도 굳이 가방의 무게를 견디겠다는 각오까지 하면서 책을 산다. 그날의 서점에서 풍겨오는 책냄새와 그날의 온도, 문장들이 내게 걸어오는 그곳의 메시지를 기억하고 싶어서다. 첫 번째 서점에서는 시집을 두 권이나 샀고, 나머지 서점들에선 동화책과 굿즈들을 샀다.
군산에서 기억에 남는 서점은 '봄날의 책방', '마리서사', '쓰담'이다. 마리서사에서는 카운터에 있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있을 법한 고양이를 보았다. 만지고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사장님에게 문의를 했더니,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하면서 이 동네를 돌아다니는 길고양이라고 했다.
길고양이 치고는 너무나 말끔하고 사람 손길을 좋아하고 온순해서 신기했다. 군산을 1박 2일동안 돌아다니면서 알게 된 건, 그 고양이가(미처 이름을 알지 못한 채) 여기저기 동네 가게를 돌아다닌다는 것이었다. 동네마다 고양이를 위한 작은 집과 밥그릇들이 있었다. 고양이와 사람들을 통해서 정겨운 냄새가 물씬 풍겼다.
맛집들이 몇 군데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딱히 땡기지는 않아서, 유명한 '이성당' 빵집에서 빵을 한가득 사고 길거리를 돌아다닐 때마다 먹으면서 허기를 달랬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에서, 혼밥도 하지 못하는 내가 아랑곳하지 않고 길거리에서 빵을 먹으며 다음 여행지를 찾아 떠나는 것이 작은 모험가가 된 것 같아서 좋았다.
'봄날의 책방'은 독특하게도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만 하는 독림서점이었다. 그 안에는 흰 머리와 인자한 미소가 가득한 사장님이 있었는데, 나를 보자 차를 한 잔 건네며 몇 시간이던 상관없이 편하게 있다가 가도 좋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줄곧 말을 거시더니, 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김소월 시인과 김삿갓 시인의 일화들을 알려주면서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거의 한 시간을 그 서점에서 붙잡혀 있었지만, 이색적이면서도 군산 사람의 정을 느끼고, 시에 대해서도 배우는 것이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 독서클럽도 운영할 만큼 글을 사랑하는 사장님이 손님들이 사랑방처럼 다녀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서점을 만들었다고 한 말씀이 너무 좋았다.
심리서점 '쓰담'은 심리상담사가 운영하는 독림서점이었다. 그렇기에 심리삼당사만의 전문지식과 경험들을 토대로 북큐레이션을 하는 곳이었다. 이곳이 제일 가보고 싶었던 서점이었는데 12시 영업시작이라서 억지로 시간에 맞춰 가기 위해 동네를 더 걷기도 했다.
그럼에도 참지 못하고, 11시 55분에 열린 서점의 문으로 들어갔다. 무례할 수도 있고, 염치 없는 행동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당히 들어가 사장님에게 들어와도 되는지 정중히 문의했다.
너무나도 온화하고 밝은 미소와 인사로 혼쾌히 허락을 하며, 서점을 이요하는 방식에 대해서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그곳에서 두 시간을 있었다.
현대인들이 많이 겪는 아픔과 상황에 대한 여러가지 큐레이션들이 있었는데 모두 마음에 들었다. 만일, 군산에 살았다면 매일 갔을 것 같다. 군산을 떠나야 하는 마지막 날이었기에 모든 북큐레이션을 다 읽을 수 없다는 아쉬움을 뒤로 한채, 가장 읽고 싶은 것을 골라 읽고 나왔다.
쓰담 서점에서 만큼은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커피 한 잔 산 것이 전부였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북큐레이션을 통해 치유를 받은 나를 그곳에 남겨두고 싶었다. 서점 밖을 나설 때 아까 보았던 길고양이를 또 다시 마주쳤다. 고양이에게 또 오겠다고 말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로 향했다.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동국사라는 사찰을 가보기로 했다. 사찰이라서 높은 곳에 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과 소망이 담긴 종들과 작은 불상들, 등불들을 보았다.
구석에는 TV에서만 보던 기왓장에 글씨를 쓰는 체험공간이 있어서 해보았다. 나중에 동국사 안에 건물을 하나 더 지을 때 사람들이 쓴 기왓장으로 지붕을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희망과 기도가 모여 집이 된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군산을 다니면서 다짐했던, 기도했던 마음을 기왓장에 쓰고 나왔다.
버스를 타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남아서 터미널 옆에 유일하게 있던 오래된 카페로 갔다. 조금 나이드신 아주머님(할머니에 더 가까울까)이 운영하고 있는 카페였는데, 커피와 크로아상을 주문했다. 사장님은 탁월한 선택이라고 하셨다. 크로아상을 직접 만드신다고 했다.
음식을 먹으면 마지막에 후식으로 디저트를 먹는 것처럼, 군산의 마지막 음식을 크로아상으로 먹을 수 있어 좋았다.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지금까지 먹어봤던 크로아상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 창밖 너머로 비치는 세피아 빛깔의 노을이 좋았다. 광활한 노을빛 하늘에 필기체로 써내려 가듯이 군산 여행을 회상했다.
첫날에는 한적하면서 바쁠 정도로 돌아다닐 곳도 없었고, 땡기는 음식도 없어서 혼자 여행했떤 나에게 조금은 심심했다. 물론 힐링은 되었지만 말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왔던 초원사진관도 기대했던 것보다 어떠한 감동이나 여운도 다가오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었다.
그럼에도 마지막 날 여행을 하고, 조금 더 이어폰을 꽂지 않고 군산을 돌아다니면서 느꼈던 것은, 군데군데마다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당연하지 않게 느껴진 군산 여행이었다. 그러니까, 누구나 다 살아간다는 것이다. 누구나 무언가를 위해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꿈이던, 희망이던, 오늘이던, 내일이던, 그 무엇이던.
곧 폐업할 것만 같은 오래된 옷가게의 입구에 의자를 놓고 햇살을 받으며 성경책을 일고 있는 아주머니. 동국사에 불경을 함께 외우며 절을 하는 아저씨. 오래된 빵집은 '영국빵집'에서 분주하게 구수한 빵을 만들고 있는 제빵사. 소품샵에서 누군가의 추억이 될 소품들을 만들고 있는 청년.
모두가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군산에서 본 사람들은 모두가 경쟁이 아닌, 자신을 깊이 고찰하고,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서슴없이 기도하고 천천히 살아가고 있었다.
한적하고 인적이 드물 것 같은 동네에 군데군데마다 사람이 있었다. 모두가 조금씩 자신만의 순간들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씩은, 조금 더 씩씩해져 보자는 말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조금은 앞으로도 약간의, 어떤 티도 나지 않을 자그마한 것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은 무지막지한 것이 될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나는 내가 일궈온 수많은 조금들로 쌓아온 것이다. 조금도 아깝지 않은 순간들. 조금만 더 잘 살아보고자 했던 마음들. 조금씩 그렇게 버리지 않고 쌓아온 나의 모든 것들.
조금이라는 건, 나의 모든 것이 될 수 있다는 그 믿음을 군산에서 읽어내며, 후회 보다는 충분함과 괜찮다는 말을 나에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는 마음을 쓰고 왔다.
조금의 기도, 약간의 고백을 해오면서도 너무 많이 바랐던 날들을 지나,
이제는 조금씩, 그러니까 꾸준하게 나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더 많은 기도와 고백으로 희망을 품어보기로 한다. 너무 많이 바랐기에 결핍에 매몰되었던 내가 아닌, 과정 속에서 잘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나 또한 충분하다는 마음을 가져보기로 하며, 군산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