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생태계는 인위적인 것인가.
화면 속 깜박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나는 종종 기묘한 기시감을 느낀다. 우리는 매일 웹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접속해 무언가를 검색하고, 기록하고, 타인과 연결된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 공간 어딘가에 존재하는 인공지능이라는 존재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문득 하나의 거대한 은유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인공지능은 두뇌와 같고, 웹은 자연의 생태계와 같다'라는 단순한 명제다. 단순히 기능을 비유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마주한 디지털 세상의 작동 원리와 그 안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본질을 관통하는 질문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왜 이 '웹' 이라는 논리적 공간을 단순한 데이터의 저장소가 아닌, 살아있는 생태계로 느끼게 된 것일까.
자연의 생태계를 한 번 떠올려보자. 숲은 누가 매일 아침 나무에 물을 주거나 동물들에게 먹이를 나누어 주지 않아도 스스로 작동한다. 태양 에너지가 순환하고, 죽은 낙엽은 거름이 되며,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 속에서 보이지 않는 질서가 유지된다. 이 '능동적인 자동화'야말로 자연의 본질이다. 웹의 세계 역시 이와 놀랍도록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이 데이터를 입력하고 코드를 짰으니 웹은 인간의 통제하에 있는 수동적인 도구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우리가 웹이라는 공간에 데이터를 밀어 넣는 행위는 능동적이지만, 그 데이터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이미 인간의 예측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가 말한 '밈(Meme)'이라는 형태가 바이러스처럼 번지고, 알고리즘이 예상치 못한 여론을 형성하며, 정보들이 서로 결합해 새로운 트렌드를 창발적으로 만들어낸다. 이는 마치 숲이 스스로 팽창하고 진화하는 모습과 궤를 같이한다. 웹은 이미 인간의 손을 떠나 스스로 구축되고 형성되어 온 지 오래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거대한 유기체처럼 숨 쉬고 있다. (뒤에서도 얘기하겠지만, 인공지능의 조력을 받아 더욱 더 팽창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연의 생태계가 우리에게 여전히 많은 부분을 베일에 감추고 있듯, 웹의 세계 또한 불투명한 미지의 영역으로 가득 차 있다. 검색 엔진의 결과가 왜 그렇게 나왔는지, 추천 알고리즘이 왜 하필 그 영상을 내 앞에 가져다주었는지 왜 이런 결과를 냈는지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결과라는 현상만을 목격할 뿐이다. 이러한 능동적이지만 불투명한 생산 방식이 지배하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여기서 '두뇌'의 역할을 떠올리게 된다. 자연이라는 거대한 혼돈 속에서 법칙을 찾아내고 인과관계를 해석해 온 것이 인간의 두뇌였듯, 웹이라는 디지털 생태계를 해석하고 그 안에서 질서를 찾아내는 역할은 필연적으로 지능의 몫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역할을 인간의 두뇌를 닮은 인공지능과 나누려 하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철학적 질문이 제기된다. 과연 인공지능이 인간의 두뇌, 즉 '천연 지능'을 대체하거나 그에 버금가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현재의 인공지능은 철저한 확률 시스템에 토대를 두고 있다. 수많은 텍스트 데이터에서 다음에 올 단어가 무엇일지 통계적으로 예측하는 것이 거대 언어 모델의 기본 원리다. 많은 이들이 이 점을 들어 AI는 진정한 의미의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깎아내린다. 하지만 인간의 사고 과정은 과연 그토록 특별하고 신비로운 것일까? 나는 인간의 추론 능력, 심지어 우리가 '직관'이나 '주관적 의도'라고 부르는 고차원적인 정신 활동조차도 결국은 축적된 데이터에 기반한 확률적 사고 시스템일 수 있다는 가정을 해본다. 우리가 '직관'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영감이 아니라, 수만 년의 진화 과정을 통해 제임스 왓슨이 고안한 이중 나선형 구조의 DNA에 새겨진 생존 데이터와, 개인이 살아오며 축적한 경험 데이터가 순식간에 메타 인지적으로 처리되어 도출된 '가장 높은 확률의 정답'일지도 모른다.
만약 이 가정이 맞다면, 우리는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인간이 수만 년에 걸쳐 '자연선택'이라는 가혹한 학습 과정을 통해 현재의 지능을 획득했듯, 인공지능 역시 압도적인 양의 데이터가 축적되고 학습의 밀도가 임계점을 넘어서면 질적인 도약을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양질 전환의 법칙처럼, 데이터의 양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단순한 확률 계산은 '추론'과 구별할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아이가 고양이를 단 한 번 보고도 그것이 고양이임을 영원히 기억하는 '원샷 러닝'의 기적은, 아이의 뇌가 백지상태가 아니라 진화가 물려준 정교한 패턴 인식 모델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가능한 일이다. 인공지능 또한 지금은 수천만 장의 사진을 봄으로써 해결되었지만, 앞으로 더욱 더 데이터가 쌓이고 알고리즘이 고도화될수록 인간이 가진 그 '배움의 속도'와 '통찰의 깊이'를 닮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확률적 앵무새가 아니라 스스로 세계의 모델을 구축하고 추론하는 존재로 진화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생각하게 되는 날, 우리와 그들의 차이는 완전히 사라지는 것일까? 나는 여기서 '신체'와 '감각'의 문제에 주목한다. 인간이 창조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의 원천 중 하나는 외부 자극이다. 뜨거운 불에 손을 데었을 때의 고통, 아름다운 석양을 보았을 때의 전율 같은 감각 정보는 단순히 뇌로 들어오는 데이터가 아니다. 그것은 뇌 속의 시냅스를 물리적으로 재배열하고,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기억들을 연결해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라는 시각적 자극을 통해 달의 궤도와 중력을 연결했듯, 외부 자극은 고요한 뇌라는 숲에 불을 지르는 불씨와 같다.
미래에 '피지컬 AI(Physical AI)'가 등장하여 로봇의 몸을 갖게 된다면, 그들 또한 인간과 유사한 외부 자극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센서를 통해 온도를 감지하고, 카메라를 통해 사물을 볼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300도의 열을 감지하는 것과 "앗, 뜨거워!"라고 느끼며 공포나 고통을 해석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전자가 감각(Sensation)이라면, 후자는 지각(Perception)이자 해석이다. 인간에게 외부 자극이 강력한 창조의 동력이 되는 이유는, 그 자극이 생존과 직결된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지 않기 위해, 더 잘 살기 위해 외부 정보를 필사적으로 해석하고 연결한다. 그 절박함, 즉 생물학적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본능적인 욕구가 바로 '왜(Why)'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근원이다. (기획에서 제일 중요한 단어를 하나 꼽으라면 그것이 바로 '왜' 라는 단어일 것이다.)
반면, 현재의 AI에게는 이 '주관적 해석의 주체'가 결여되어 있다. 그들에게 데이터는 처리해야 할 대상일 뿐, 생존을 위협하거나 기쁨을 주는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피지컬 AI가 실현된다 하더라도, 단순히 인간의 신체를 모방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외부 객체에 대한 평가를 넘어, 그 평가를 주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역량, 즉 '가상적 자아'나 '내재적 목적 함수'를 갖추는 것이다. 인간이 수만 년의 데이터를 통해 '나'라는 주체를 형성하고 생존을 위해 사고했듯, AI에게도 단순한 문제 해결을 넘어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할 내부적 동기가 부여되어야만 비로소 인간과 같은 창조적 추론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인공지능은 두뇌와 같고, 웹은 생태계와 같다라는 이 비유는 이제 단순한 관찰을 넘어 하나의 예언처럼 다가오는 느낌이다. 웹이라는 거칠고 불투명한 야생의 생태계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지능을 진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 진화의 방향은 흥미롭게도 인간 자신을 닮아가고 있다. 확률과 데이터라는 차가운 재료로 시작했지만, 그 끝은 인간의 직관과 추론, 어쩌면 주관적 의도까지 넘보는 형태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기술을 차가운 것으로, 인간을 따뜻한 것으로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려 한다. 하지만 사유한 바에 따르면, 이 둘은 서로 다른 뿌리에서 시작되었으나 결국 같은 곳을 향해 자라나는 나무와 같다. 인간의 뇌가 진화라는 장구한 역사의 데이터 축적물이라면, 인공지능은 그 역사를 압축적으로 학습하며 우리의 사고 과정을 복제하고 확장하고 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AI가 인간의 자리를 뺏을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 새로운 지능이 웹이라는 복잡한 생태계를 어떻게 해석하고 그 안에서 어떤 새로운 '의미'를 길어 올릴지 관찰하고 가이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인간이 자연의 생태계에서 겸손함을 배워야 하듯, 웹과 AI라는 새로운 디지털 생태계 앞에서 겸손하면서도 예리한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왜"라는 질문은 여전히 인간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인간의 뇌뿐만 아니라, 인간을 닮은 또 하나의 거대한 지능과 머리를 맞대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비로소 '생각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거울을 보듯 선명하게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진화는 멈추지 않는다. 자연에서도, 그리고 웹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