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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인철 Jul 11. 2020

닥터 포레스트

자연 속에서 힐링을 찾고 음식 속에서 휴식을 찾는  일상의 소중함을 위하

닥터 포레스트를 시작하며


2009.07.16.

산부인과 의사가 요리라는 주제를 가지고 블로그에 첫 포스팅을 하던 날

어찌나 가슴은 콩탁콩탁 뛰는지.

지금은 남자 요리사가 생방송을 진행하면서 미디어를 진두지휘하는 시대이지만

그때는 그랬습니다. 아직은 어색하고 창피하고 부끄럽고...


하지만 이런 어색함 뒤에 반전이라고 할까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에 찾아오시고 저의 어색함을 즐겨주셨습니다.

스토리가 담긴, 남자가 하는 요리에 일종에 격려를 보내주신 것이죠.

의사가 환자나 열심히 보지 부엌을 들락거리네라는 댓글 하나하나에 심한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 시절이지만 처음으로 아내에게 미역국을 끓여주었다며 저에게 기쁜 메일을 보내주었던 한 미국 남성 교포의 메일을 가슴에 품고 열심히 포스팅을 했었죠.

팥죽을 끓이다가 분만 환자가 있어 부랴부랴 분만을 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다 타서 못 먹었던 일부터 많은 일화부터 저에게는 새롭고 재미나는 놀이터 같은 즐거움이 생긴 것이죠. 점차 이런 화제성은 미디어의 좋은 양념거리가 되었고 이후 쭉 방송, 출판, 강연과 함께 새로운 이벤트의 삶을 살아오게 되었죠.

10년이 더 된 시절의 이야기지만 이런 블로그의 포스팅은 나의 중년 생활에 일기이자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는 소중한 저만의 보물 통로였답니다.

 

하지만 그런 달콤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병원에서 일하는 나에게 핸드폰으로 들려오는 아내의 울먹이는 목소리


"여보 나... 암 이래"


모든 것이 그 한마디로 멈추어버렸습니다.

아니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런 대비 없는 이런 식의 암의 공격은 정말 의사인 저 조차도 어떻게 대응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름도 희귀하고, 병의 경과 희귀하고, 약도 희귀하고

수술을 집도할 의사도 희귀하고 심지어 수술한 조직의 검사를 판독할 의사조차도 희귀한

그야말로 모든 게 희귀한 희귀 암

부부생활 28년 만에 희귀하기엔 너무도 끔찍한 일들이 현실 앞에 던져졌습니다.



2015.05.23

힘든 봄날이 가고 항암치료가 어느덧 마무리한 날

우리 부부는 모처럼의 여행을 떠났습니다.

무언가 마무리에는 결과물과 희망이 있어야 되는데 항암치료의 마무리에는 오로지 근심만 남게 되더라고요.

앞으로의 살얼음판을 걷기 위한 숨 고르기라고 할까요?

어차피 자연으로 돌아가야 되는 삶이라 미리 자연을 연습하기 위한 부부의 여행이라고 하면 너무 슬플까요?

그냥 조용한 공기 좋은 곳을 찾던 중 강원도 영월 산속에 조그마한 오두막집을 발견하고 민박을 하게 되었죠.



정말 오랜만의 휴식이었습니다.

삶의 조용함이 어찌나 이렇게 마음의 힐링을 주는지 몰랐습니다.

아니 힐링을 지금까지 모르고 말로만 외쳐왔던 거죠.

아파트 창문 옆으로 아침마다 그리 울어대면서 깨웠던 새소리는 단잠의 훼방꾼이었지만 여기서 쉼 없이 울어대는 새소리는 마치 우리를 위로하듯이 생각지도 못한 여행의 친구였습니다.

아침에 불어오는 아직은 찬 바람이지만 너무도 메말라서 거칠어진 부부의 마음에 단비를 내려주는 듯한 시원함을 선물해주었고, 평상시에는 그냥 지나쳐버렸을 법한 자연의 풍경이 시간을 내려놓으니 새롭게 보였습니다.

처마 밑의 새집이며, 마루 위의 나비며, 무섭게 울어대는 개구리며...


아내의 암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오지만 않았다면 이런 여행은 꿈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며 많은 화려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사 먹고 즐겼을 모처럼의 여행이었지만

새로운 자연의 음식과 여행은

소박한 소반에 아침에 끓인 콩나물국 한 그릇이면 충분했습니다.

고추와 파김치, 장아찌조차도 따뜻한 콩나물국을 거들기만 할 뿐이죠.

아침을 준비하면서 눈물이 왈칵 흘러내렸습니다.

뜨거운 국물에 덴 것도 아니고, 칼에 베인 것도 아닌데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의 대한 후회와

소박함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에

아내에 대한 미안함에

눈물이 계속 계속 흐르더군요.


평생을 살아온 밥 상중에 이처럼 아름다운 아침이 있을는지요.

지난 45년간의 내 인생에서 삶을 다시 돌아보는 콩나물국이 소박한 아침밥상은 나에게 진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평소에 콩나물 비린내가 싫다며 입에도 안되었던 아내가 아침 한 숟가락을 띄며 조그마한 미소를 남깁니다.

그리고 멈추었던 시간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금씩, 조금씩 다시 움직이기 시작함을 느낍니다.

그리 비린내 난다고 싫어하던 콩나물 한 숟가락에 미소 짓는 아내의 얼굴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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