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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 간략후기

매우 아쉬운 의학 고증의 오류들

by 시카고 최과장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 정주행을 마치고 쓰는 간략 후기입니다.


몇 주 전 한국을 방문하고 있을 때에, 넷플릭스 '중증 외상 센터'가 1월 24일에 공개된다는 광고가 엄청 뜨길래, 공개되면 바로 정주행 달리고 후기를 쓰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브런치북 후발주자 + 지지부진한 조회수 (+라이킷 수)를 만회해보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나도 한번 시류를 타보자'라는 얄팍한 속셈에서 시작된 계획이었습니다.

0124_Netflix.jpg 1월 24일에 공개된다는 광고


중증외상센터가 넷플릭스에서 공개되고 8회 모두 정주행을 마친 지금, 심경이 매우 복잡해졌습니다.


첫 번째로는 '이런 드라마를 대체 어떻게 리뷰해야 하나'하는 근본적인 고민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드라마의 고증에 대해서 논하려고 하면, '판타지 드라마에 웬 현실적인 잣대? 너나 잘하세요'라는 드라마 추종자들의 무소불위의 방탄이 가능하기도 했고...


두 번째로는 일반적인 대중들의 평가와 정말 반대되는 내 의견을 효과적으로 개진하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이 들었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이곳 제 브런치 스토리에 글 써봤자, 글 휘발성이 1주일도 못 가는 엿같은 주목도와 영향력으로는 당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듯합니다.

(그렇다고 어디 딴 곳에 쓸 데가 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라서...)



중증 외상센터는 네이버 웹 소설과 네이버 웹툰 '중증외상센터 : 골든아워'에 기반을 둔 의학 드라마로, 제작진들이 판타지 의학 드라마라고 장르를 정의 내린 바 있습니다. 실제 원작가도 의사로 알려져 있어 의학적 사실 고증이 뛰어나다는 것이 일반 사람들의 평가입니다.

Trauma_Center_WebBook_WebToon.jpg 중증외상센터 : 골든아워 웹소설 (왼쪽) , 웹툰 (오른쪽)


웹소설부터 출발해서 웹툰을 거쳐 넷플릭스까지 성공적으로 진출한 만큼, '중증 외상 센터'의 등장인물들의 매력은 차고도 넘쳐 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8 회차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특징을 잘 보여주면서도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하는 1위를 할만한 요소가 넘쳐나는 드라마라는 사실은 제가 분명하게 인정하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중증 외상 센터'가 의학적으로 고증이 뛰어나다는 평가는 비전문가들의 시점에서나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지, 제 관점에서는 의학적인 고증이 너무 엉성하고 틀린 부분이 너무 많았습니다.

고증이 틀린 부분이 단순히 지엽적이 내용이고 내용 전개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미미하다면 눈감고 넘어가 줄 수도 있다고 봅니다만, '중증 외상센터'의 틀린 고증은 아예 내용 전개 자체를 막는 치명적 오류가 많습니다.

네이버에서 웹소설이나 웹툰으로 그쳤다면 동네 책방이나 만화방 수준의 의학적인 고증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겠습니다만, 넷플릭스로 글로벌하게 진출했다면 형편없는 의학적 고증으로 전 세계적으로 비난받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일 수밖에 없습니다.


'중증외상센터'의 의학적인 고증이 틀린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회별로 나누어서 리뷰글을 써서 좀 더 자세히 다루고자 합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중증외상센터'의 수많은 의학 고증의 오류들 중에서도 최고봉은 단연 마취과 혹은 중환자의학에 대한 것으로, 원작자가 관련 지식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그냥 지나가다가 주워들은 말 적어놨나 싶을 정도로 마취과+중환자의학에 대해서는 엉터리 고증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리고 '중증외상센터' 각각 회차 말미에 제작진 명부를 면밀히 관찰해 봐도 자문 의사들이 외과의사들만 잔뜩 있고 마취과나 중환자의학 전문가가 아예 없는 것 또한 수많은 의학 고증의 오류가 왜 생겼나에 대한 질문에 답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누군가에게 지적받을 거라면 관련분야 (마취+중환자의학)에서 최고의 전문가인 제가 먼저 앞장서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중증 외상센터'에 대한 비판적인 후기를 올릴 예정입니다.

Med_Advice.jpg 드라마 의학자문은 모두 외과계뿐이다


판타지 드라마에 대해서, 왜 그렇게 엄격한 현실적인 척도를 들이대느냐하고 누군가 저에게 묻는 다면...

'중증외상센터' 드라마 제작진들이 새로운 수술장면이 시작될 때마다 관련 수술명과 해부학 혹은 생리학적인 간단한 그림을 첨부하는 등, 나름 현실 고증에 충실하려고 노력한 점이 보인다는 점에서 적어도 의학적인 부분에서는 판타지스러움보다는 현실성에 무게를 두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중증외상센터' 드라마에서 의학까지도 아예 판타지를 추구할 예정이었으면 아예 사람 몸에는 원래 2개의 심장이 있는데, 주된 심장이 기능이 떨어질 경우 보조 심장이 잠시동안은 대체할 수 있다는 식으로 아예 판타지스럽게 가는 것도 가능했으리라 봅니다.

하지만 '중증외상센터'가 그렇게 하지 않고 나름 고증에 신경 쓰려 노력한 것은, 의학마저도 너무 판타지스럽게 가면 시청자들의 몰입감이 형편없이 떨어지기 때문이겠죠.

그러한 점에서 더더욱 의학적 고증을 엄격하게 또한 현시대에 맞게 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한 것은 '중증외상센터'라는 드라마가 글로벌하게 넷플릭스에서 뻗어 나가는 데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할 것은 명확합니다.


미드, 영드등 서양권 의학드라마들이 미쳤다거나 혹은 시간과 돈이 남아돈다고 의학적 고증을 철저히 하고 있겠습니까? 고증을 철저히 안 하면 금방 시장에서 밀려나고 외면받는 것이 글로벌한 요즘 시대의 냉혹한 트렌드기 때문에 필수불가결하게 철저하게 고증을 하는 것이겠지요...

'중증 외상 센터' 넷플릭스에 지금 올라와 있는 회차들은 대한민국보다도 의료 수준이 한참 떨어지는 제3세계의 의료관계자들조차 의학적인 고증이 너무 부족하다고 대차게 깔 수 있을 정도로 형편없습니다.




'중증 외상센터'의 의학적 사실 고증이 심하게 떨어지게 된 것의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세운 한 가지 가설은...

원작자가 시간이 좀 지난 실제 이야기를 어디선가에서 주워듣고 그것을 현재의 시점에 발생한 이야기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2025년 현재에 대한 업데이트나 고증 없이 그냥 올렸다 보면, 얼추 아다리가 맞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중증외상센터'에서 생긴 일 모두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 도 초기에 발생했다고 보면 현실성이 매우 올라갈 확률이 높습니다.


(1) 그 당시에는 외상성 뇌손상에 관해서 연구나 치료지침이 아직 정립되기 전이어서, Papilledema (유두부종)만 보고도 Puncture Craniotomy (작중 '머리에 구멍 뚫는 것') 해도 괜찮은 시절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2) 그 당시에는 국립 장기 조직 혈액 관리원 같은 기관이 존재하지 않아서, 지금과 같은 장기 이식관리 시스템이 (K-net) 작동하지 않아서 주먹구구식으로 장기 이식이 진행되어도 문제가 없었을 시절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3) 당시에는 아직 MELD score 가 적용되기 전이라, Child-Pugh Classification 만으로 만성 간질환이 있는 환자의 예후를 짐작하는 것이 괜찮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는 최소 2017년대 이후의 시간 (사우론의 탑으로 알려진 롯데 월드 타워가 건재함)과 대한민국이라는 장소가 명확하게 나왔다는 점에서 작중에 나오는 여러 가지 의학적 오류들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명확한 오류입니다.

Lotte_Tower_Date.jpg 드라마에서 롯데 월드 타워가 명확히 보이고, 이것은 최소 2017년 이후라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따라서, 앞으로 2-3회 동안은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를 회별로 의학적인 고증이 어떻게 틀리고, 2025년인 지금의 치료 가이드라인은 어떤지 자세히 살펴볼 예정입니다.




그렇게 하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화자나 글 쓰는 이의 권위가 그가 속해 있거나 근무하는 기관에 의존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소위 말하는 '빅 5 대학병원'에 속해있으면 화자나 글쓴이의 권위가 비약적으로 높아지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신뢰도가 추락하는 경우를 왕왕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제가 쓰는 글의 신뢰도를 조금이나마 높이고자 짧게나마 다시 자기소개를 하고자 합니다.

저는 미국 마취과 전문의이자 중환자 의학과 전문의로 현재 시카고 대학병원 (University of Chicago Medical Center) 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시카고 대학병원은 레벨 1 외상센터로 시카고 내에서도 가장 바쁘면서도 심각한 외상 환자들을 다루는 병원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레벨 1 외상센터는 미국 외상센터 체계 중 가장 높은 등급으로 가장 심하게 다친 환자들이 쉴 새 없이 이송되어 치료받는 병원입니다)

물론 제가 일하는 병원은 미국에서도 전국구로 손꼽히는 유명한 외상센터에는 꼽히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 내 전국구급 외상센터 : 볼티모어, 마이애미, 휴스턴, 시애틀)

수술방과 외상중환자실에서 일하고 있는 마취과+중환자의학 전문의로서 외상이나 응급 환자를 다루는 것은, 저에게는 그냥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상에 불과합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2025년 1월 29일 (수)에는 외상 마취 수술실과 응급실 담당이네요)

UCMC_Birdseye_View.jpg 시카고 대학병원 전경 (레벨 1 외상 센터)


내가 무조건 옳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가 그나마 전 세계적으로 명맥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음 글부터 매우 신랄하게 비판하고자 합니다.

그냥 저렇게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라고 비판하기보다는 관련 문헌이나 논문등을 가능한 최대한 활용해서 비판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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