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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카고 최과장 Oct 27. 2024

브런치 글 쓰는 것을 시작하며... (上)

上 _자기소개

브런치에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나에 대한 자기소개를 하고, 이렇게 글을 쓰고 올리게 된 계기를 한번 정리하고 가는 것이 앞으로 내가 게재할 글의 진의를 이해하는데 여러모로 도움이 될듯하여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자기소개

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모든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6년제 의과대학도 무사히 입학 및 졸업한 한국 사람이다. 의과대학 졸업 후에는 의사면허를 취득하고 공중보건의로 대체 군 복무를 마칠 예정이었으나, 복무 종료 6개월여를 남겨 놓고 군면제가 되었다.

이후 미국 의사 자격 시험(USMLE)을 치르고 미국 병원의 레지던트 매칭 시스템을 통해 외과 인턴으로 수련생활을 시작하였고, 마취과로 전과를 해서 레지던트 수련과정을 마쳤다. 

이후 중환자 의학 펠로우와 간이식 마취 펠로우 과정을 밟았다.

지금은 미국 대학병원에서 수술방과 외과계 중환자실에서 일하고 있는 현직 미국 마취+중환자 의학 전문의사이다.



글을 쓰게 된 계기

글을 쓴다는 것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고,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나에게는 고통의 과정 그 자체이다. 또한, 평소에 글재주가 좋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고통의 과정을 나는 왜 밟아 가려는 것일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레지던트 졸업 축하식 때이다.

2012년 6월 초의 어느 날, 뉴욕시 북쪽으로 차로 1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던 Tarrytown의 Tappan Hill Mansion에서 나와 동기 마취과 레지던트들은 졸업 축하식에 참석 중이었다.


레지던트 졸업 축하식이 열렸던 Tappan Hill Mansion 전경


졸업 예정이었던 모든 마취과 레지던트들에게 연단에 서서, 한 마디씩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내 앞의 순서에서 한 마디씩 발언을 했던 동기 레지던트들은 대부분 가족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 기회를 활용하고 연단에서 내려왔다. 

나는 그날 오전까지 병원 근무를 하고 졸업 축하 식에 참석했으므로, 당일날 평소 친하게 지내던  마취과 전문의 선생님께 연단에 서면 보통 무슨 말을 하느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그 선생님께서는 통상 그런 자리에서는 그냥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해 주셨다. 내 생각에도 설령 공개적으로 하고 싶은 쓴소리가 있고, 수련 과정에서 감정이 좋지 않았던 사건이나 기억이 있었더라도, 그런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좋게 좋게 발언을 하고 나가는 것이 좋을 거 같았다. 그래서 그냥 감사하다는 말만 하고 내려오라는 전문의 선생님의 조언을 되새기면서, 연단으로 걸어 나갔다.


연단


 그러나, 막상 연단에 서서 그동안 같이 일했던 다른 마취과 전문의 선생님들의 면면을 보고 있자니, 마취과 수련을 받는 동안 나에게 일어났던 말도 되지 않고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던 많은 사건 사고들이 떠오르면서, 그냥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퉁치고 이 모든 일들을 그냥 넘어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동안 저를 가르쳐 주시고 이렇게 연단에 설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시작은 조언받은 대로 무난하게 감사로 시작했다. 



 하지만, 이렇게 감사의 말로만 마취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무리지을 수는 없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제가 너무나 감사해서, 레지던트 때 있었던 일들을 반드시 책으로 기록하고 기념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축하 식 참가자들은 아마도 나의 이러한 말을 내가 정말 감사해서 책으로 까지 감사한 마음을 기록하겠다는 기특한(?) 언사로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수련기간 동안 내가 겪었던 인간적 갈등, 경험과 수많은 사건 사고들을 반드시 책으로 기록해서 당신들 모조리 영구 박제하도록 할 거다…!' 

라는 생각으로 이렇게 멘트를 날린 것이다.


그렇다. 


수련과정에서 겪었던, 아무리 상식 수준에서 이해해 보려고 해도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그들의 행동과 발언들에 대한 나의 가장 공평한 대응 방법은, 그러한 사건 사고 등에 관하여 객관적으로 기록해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함으로서 오래도록 지속적으로 평가받게 하고 교훈을 얻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게 바로  이렇게 글을 쓰게 된 첫 번째 이자, 가장 강력한 동기이다.




글을 쓰게 된 또 다른 이유

그렇게 미국에서 마취과 및 중환자의학 수련을 마치고 나서도, 나에게는 계속해서 이상하고 기이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 났기 때문이다. 

왜 이러한 현상들이 유독 나에게만 계속 일어나는 것일까? 

아님 원래 인생이라는 것이 이상하고 기이한 일들의 연속인데,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 많은 다른 인생 선후배님들에게 그동안 나에게 일어났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서 쓰면서 질문을 던져 보고 싶었고, 이렇게 하는 것이 질문에 대한 답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효과적인 방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글을 쓰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에게 유독 이런 이해 불가능한 상황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부분적인 답변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을 듯도 하였다. 내가 매일 근무하는 수술방과 중환자실이라는 공간은 그 특성상 평소와 같은 평화로운 일상이 지속되는 공간이 아니고, 언제든지 급박한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라는 자체적인 결론을 냈다. 

 그런 공간에서 계속 일하다 보니, 당연히 보고 듣는 일들 또한 일반인들은 접하기 힘든 일들이 나에게 특별히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설명만으로는 부족한 경우들도 많이 있었다.


예를 들면, 

생체 간이식 공여자 로서의 내 개인적인 경험과 그 이후에 이어진 간이식 마취 전문의로서의 나의 삶, 

하버드대 부속 병원에서 펠로우 수련받고 있을 때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을 직접 경험하게 된 점, 

코로나가 한참 맹위를 떨치던 시절에 인공호흡기마저 부족하던 뉴욕시 한복판에 위치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코로나 환자를 치료하고 있던 점, 

남들은 단 한 군데서도 일하기 힘들다는 미국 내 탑 10 병원 중 3군데에서 일해본 경험 등등…


 이러한 일들은 단순히 내가 일하고 있는 공간이나 분야가 특별해서 경험 또한 특별할 수밖에 없다는 단순화된 논리만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힘든 부분이 있다.


 그래서,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었는 데 이 글쓰기 작업의 중간 혹은 마지막 목적지가 어디가 될지 지금 시점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인 미국의사로서 겪은 여러 가지 경험과 사건 사고 그리고 갈등과 고뇌들의 전개 과정과 결과를 나 혼자만 알고 가는 것보다는 나의 글들을 관심 있게 봐줄 다른 분들과 함께 알고 공유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참 가치 있는 일이 될 듯싶었다.


나는 나의 체험을 공유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령 의사 수필문학상과 한미 수필 문학상에 응모하였지만, 입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 글을 꾸준히 브런치에 올리고 나의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면, 언젠가는 여기에 관심을 가져주실 분들이 많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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