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24일 토요일 이야기
오늘도 어김없이 눈이 6시에 떠진다. 그리고 그때 울리는 벨소리. 새벽배송이 도착한 시간이다. 새벽 3시에 잠들었는데도 익숙한 루틴대로 몸이 움직인다. 이제 꼼짝없이 세 시간 잤던 좀비가 되어 흐느적거리며 하루종일 움직일 따름일 것이다.
도착한 물건들을 살핀다. 설탕, 피클링 스파이스, 2리터들이 폐쇄용기, 그리고 돼지고기까지. 나는 얼마 전 햄을 만드는 데 도전했고, 실패했다. 너무 높은 온도에서 익혔던 것인지 속이 바싹 익은 로스트 포크가 되어버렸다. 염지가 모자랐던 것인지 맛도 다소 싱거웠다. 그래서 다시 레시피를 가다듬어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우선 고기를 썬다. 도마 위에 올린 고기를 적당한 크기의 덩어리로 썰어낸 뒤 한번 닦아낸다. 그러고 나서 저울을 꺼낸다. 저울은 소금과 설탕의 양을 재기 위해서다. 요즘 소금값이 금값이라지만, 집안 곳곳에 선물로 들어왔던 천일염(선물 세트의 일부다)이 숨어 있다. 설탕과 소금의 무게를 재고, 물을 정확히 재어 폐쇄용기에 붓는다. 설탕과 소금을 녹여 염지액을 만든다.
만들어진 염지액 안에 고깃덩이들을 넣고, 피클링 스파이스를 붓는다. 고루고루 섞은 뒤, 냉장고에 공간을 만들고서 염지를 시작한 용기를 넣는다. 별도로 염지액을 주입하지 않았으니, 적어도 7일 정도는 염지를 해야 한다는 조언을 받았다. 이제 다음 주에 다시 꺼낼 생각이다. 이번에는 대략 50도 내지 60도 정도로 장시간 말려볼 생각이다. 저번에는 90도의 온도에서 로스트 포크가 되어 버렸으니까.
내가 처음 요리라는 것을 시작했던 것은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위한 거였다. 물론 초등학교 3학년 생이 뭘 얼마나 할 수 있겠냐만은, 치즈를 녹이고, 우유에 무언가를 섞어 음료를 만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솔직히 맛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조합이지만, 부모님은 기쁘게 드셔 주셨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나는 간혹 요리를 했다.
본격적으로 요리라는 것을 시작한 것은 자취를 하고 나서 이후였을까. 이것저것, 간혹 떠오르는 게 있으면 요리라는 것을 해 보곤 했다. 뭐, 절대다수의 경우 배달을 시키거나 밖의 식당에서 사 먹는 게 거의였지만 말이다. 그때의 나에게 있어 요리라는 개념은 일종의 예술의 영역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내가 요리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라드를 만들고 있는 나를 발견할 즈음이었다. 돼지비계를 잘게 썰어 기름을 우려낸 뒤 굳혀내는 라드, 그런 라드를 두 병 가득 만들고서 요리를 할 때마다 쓰고 있는 나를 보며, 나는 요리를 참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귀찮은 일을, 내 손으로 해내보겠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었으니까.
아마도, 이번의 햄이 만약 성공하게 된다면 더 많은 종류의 요리에 도전해 보게 되겠지. 요즘 나는 술을 양조하는 영상을 즐겨 본다. 홈브루잉 기계를 이용한 것이 아닌, 자기 손으로 밥을 지어 술을 빚는 영상들이다. 어쩌면, 햄이 성공하면, 다음 목표는 술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인생이 바뀔 수도 있지 않겠는가?
놀랍게도, 이만큼을 한 번에 써 내려가며 맞춤법 검사에서 하나의 오류도 잡히지 않았다.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