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당신은 저의 주문이었어요.
기억하죠, 오래전 그날은 눈이 내렸고
그보다 더 오래전의 그 날에는 제 세계를 침범하고도
사과하지 않는 오만한 당신이 있었지요.
깨진 접시를 치우는 것보다
쓸모있는 일을 냉큼 말하기가 어려웠고
그 탓에 당신이 실존한다는 사실을 파고들어
섭렵하고 싶어지지 않았겠어요.
그런 내가 원하기 이전에도
당신은 이 세상에 있어주어
저는 그게 감격스러웠습니다.
당신에게 고백하고 문득 부끄러워 뒤돌아 달렸을 때
내리던 눈을 부리던 게 당신이었나요?
당신이 앞에 없는데도
저는 여전히 당신을 볼 수 있다는 걸
그 순간에도 말해주고 싶었더랬죠.
저 골목부터 이 골목 끝까지 당신에게 휘어있다고요.
이제껏 올곧은 애정을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던
당신의 눈빛이 더 곧은 직선이었던 걸 기억합니다.
누군가 당신 눈꺼풀 안쪽에
도료 따위를 발라 두었을지 모르는 일이죠.
모든 걸 제 시선에서 보고 싶다고
허리를 구붓하게 둘 때면 보이던
허공의 비눗방울 같은 건 다 뭐였을까요?
영, 알고 있죠?
저는 얼굴보다는 뒷모습
뒤통수의 모양으로 사람을 구별하는 거요.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당신을 찾을 수 있었던 건
당신 뒷모습이 저를 가깝게 찾아오던 예감과
가장 많이 닮아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 모든 것이 당신에게 무용하다면
무용한대로 두어도 좋겠죠.
악착스럽게 맞닿아 있는 형용사며 부사를 몽땅 지웁시다.
그런 것 없이도 누군가 면죄부를 줄 테니까요.
영아, 당신은 알고 있죠?
내가 자꾸 널 영이라 칭하는 이유는
넌 여기서도 저기서도 영(煐)이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