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대로 모자를 벗지 않으련다

모자를 좋아하는 소년, 별이된 단원고 2학년 8반 지상준에게

by 꿀벌 김화숙

모자


나는 분명히 모자를 쓰고 있는데 사람들은 알아보지를 못한다

그것도 공작 깃털이 달린 것인데 말이다

아무려나 나는 모자를 썼다

레스토랑으로 밥 먹으러 가서도 모자를 쓰고 먹고

극장에서도 모자를 쓰고 영화를 보고

미술관에서도 모자를 쓰고 그림을 감상한다

나는 모자를 쓰고 콧수염에 나비넥타이까지 했다

모자를 썼으므로 난 어딜 조금 가도 그걸 여행이거니 한다

나는 절대로 모자를 벗지 않으련다

이제부터는 인사를 할 때도 모자를 쓰고 하리라.

ㅡ신현정(1948~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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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를 좋아하는 소년 상준아!


나는 너를 생각하며 요 며칠 신현정 시인의 시 <모자>를 읽고 또 읽고 있단다. 모자 좋아하는 내 맘과 모자 쓴 소년 상준이가 이어지는 기분이야. 함께 이 시를 읽고 이야기하고 싶었어. 느낌 알지? 응응, 정말 고마워. 난 모자 쓴 네 사진을 처음 본 순간 네가 좋아졌어. 너랑 이야기하고 싶고 통하는 친구가 되는 느낌이야.


모자를 쓰면 기분이 참 좋아 그치? 패션의 완성 아냐? 시인은 이젠 모자를 안 벗을 거라고 하잖아. 네가 가진 모자 중 제일 멋진 건 뭘까? 시에 나온 것처럼 공작새 깃털 달린 모자 있을까? 내겐 있어. 쓰고 다니면 깃털처럼 기분이 가벼워지고 발랄해지는 느낌, 딱 그거였어. 모자를 쓰면 여행 기분으로 다닐 수 있어, 맞아. 사람들이 날 못 알아봐도 재미있고 알아보면 더 재미있어.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어도 모자는 안 벗고 싶은 기분 알지?


중3 때 3박 4일간 제주도 가족여행 때 넌 그 기분 만끽했겠지? 좋아하는 까만색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멋을 내고 가장 아끼는 까만 모자를 썼잖아. 고2 수학여행 갈 때 역시 너는 모자부터 티셔츠, 바지, 운동화까지 올블랙을 고집했더구나. 모처럼 만의 아들의 고집을 지켜주고 싶은 엄마는 네가 원하는 색상으로 다 교환해 주셨더구나. 그 멋진 모자를 쓰고 떠난 수학여행이 이렇게도 긴 여행이 되었구나 상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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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쓴 멋쟁이 소년 상준아!


넌 늘 집에서 책을 읽고, 용돈을 받으면 책을 먼저 사더구나. 가끔 소설 습작도 했지. 와~~ 이 지점에서 너는 내게 더욱더 친한 친구로 다가왔어. 나도 그렇게 자랐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거든. 내가 시간 여행을 떠나 너를 만날 수 있다면 너와 사귈 거 같아. 같은 책을 읽고 서로 생각을 나누고 글을 쓰고 서로 읽어주는 사귐. 멋진 모자를 쓰고 나란히 해변을 걸으며 대화하는 소녀와 소년을 상상하게 되는구나. 우리를 이어주는 모자가 고마워.


상준아! 혹시 경북 영덕군 병곡면의 고래불 해수욕장 가 본 적 있니? 내가 지난 8월 초에 거길 다녀왔거든. 내 고향집에서 가까운 곳이란다. 상준아 아니? 그 해변에서 나는 너와 함께 시간을 보냈어. 사진에서 "멍"자 보이니? 줄무늬가 있는 빨간 셔츠에 모자를 쓴 소년과 강아지 조형물이 있는 거야. 앗! 내 눈엔 바로 상준이로 보였어. 내가 그 곁에 올라가 강아지를 감싸 안으며 너와 나란히 앉았지. 아~~ 그때 내가 소리친 거 생각나?


어머나! 상준아! 여기서 만나니 너무 반갑다. 줄무늬 티셔츠에 중절모 쓴 멋쟁이 상준아! 난 화숙이라고 해!.....


난 너와 포옹했지. 네 모자와 머리와 얼굴과 어깨를 쓰다듬었고 말이야. 어떻게 단원고 2학년 8반 지상준을 거기서 만날 줄 알았겠니. 나는 네 옆에 앉아 멍하니 바다와 하늘과 모래, 그리고 사람들 구경했단다. 너는 저 바다에서 무얼 읽고 있었니? 무슨 글을 쓸 거야? 나는 이달 별에게 보내는 편지를 상준이에게 쓸 거야. 그런 수다도 떨었지. 그 자리를 내려오고 안산으로 돌아온 후에도, 모자 쓴 소년과 함께 멍 때리던 추억을 떠올리곤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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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준아! 네가 좋아한 책 <삼국지> 말이야. 모자를 좋아한 너를 생각하며, 삼국지 속 인물들을 다시 찾아봤어. 관우, 장비, 유비, 제갈공명..... 이번엔 그들의 어떤 점을 생각했게? 그들 머리엔 어떤 모자가 있었나 궁금한 거야. 검색하고 이미지들을 찾고 비교해봤지 않겠어? 과연 참 다양한 모자로구나, 확인할 수 있었어.


네가 후속편 나오길 기다렸던 <엑셀 월드> 있잖아. 수학여행 직전 사 놓고 간 책 말이야. 라이트노블 시리즈가 굉장했더구나. 엑셀 월드 13권이 2013년 8월에, 14권이 2014년 2월에, 15권이 5월 나왔더라? 네가 포장 안 뜯고 뒀다가 수학여행에서 돌아와서 읽어야지 했잖아. 그 책은 <엑셀 월드 14권>인 거지? 평소 여행 갈 땐 책 네다섯 권을 가져가야 적성이 풀리는 너잖아. 얼마나 설레며 오롯이 즐기고 싶었을까, 네 마음이 전해져.


<엑셀 월드>가 어떤 책인지 너를 생각하며 내가 찾아봤어. 이거 맞지?



왕따 뚱보 중학생 하루유키가 유일하게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은, 교내 로컬 네트워크에 설치된 스쿼시 게임을 플레이할 때뿐이다. 아바타를 조작해 '속도'를 겨루는 그 시시한 게임을, 하루유키는 좋아했다. 그러나 교내 최고의 미모와 기품을 가진 소녀 '혹설 공주'와 만나며 그의 인생은 돌변하는데…. 일본의 라이트노블 레이블 전격 문고의 전격 소설 대상 수상작.

-<엑셀 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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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준아! 너는 안산에서 태어나서 초등학교 갈 때 대구로 이사 갔다가 중학교 2학년 때 다시 안산으로 이사 왔지. 바쁘신 엄마 아빠는 너와 동생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며 함께 하셨구나. 특히 캠핑을 좋아하시는 아빠 덕분에 너는 어려서부터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많이 다녔지. 자연을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이었어.


하나뿐인 여동생과도 엄마와도 너는 참 잘 지냈어. 평소엔 짠돌인데 동생 간식 사 줄 땐 돈을 아끼지 않는 오빠였지. 엄마는 너의 호기심과 탐구심에 맞춰 함께 도서관과 박물관을 다니셨지. 하루에 세 번 "사랑해"라는 말을 들으면 암에 안 걸린다며, 엄마에게 하루 세 번 사랑고백을 하는 아들이었어.


상준아! 너는 틀림없이 나무와 꽃과 풀을 사랑하며 자연 가까이 사는 어른이 되었을 거야. 사색과 예술을 즐기며 네 꿈대로 좋은 연구원으로 컸을 거야. 네가 참 그립구나. 너와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끝도 없이 많지만, 너를 그리는 엄마의 편지글을 조금 인용하며 마무리할게. 상준아 보고 싶구나!



나의 아들 상준이 이름 부르는 게 너무 가슴 시리고 아프다 부를 때마다 눈물이 나고 가슴이 턱 막히고 머리가 아프다. 단 한순간도 너를 잊은 적도...... 아프도록 가슴에 새기고 아파하지 않은 적도 없지만, 보고 싶고 안아 보고 싶은 마음은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다. 시시때때로 너의 목소리가, 웃음소리가 떠올라. 현실과 괴리감이 너무나 크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이 제일 큰 것 같지만, 자식이 부모에게 버팀목이었음을, 남은 생의 모든 희망이었음을, 희망을 빼앗기고서야 알게 되었네. 날씨가 너무 화창해도, 비가 와도, 음악을 들어도, 말을 하고 있어도 슬프고, 아프네. 아들,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너와 함께 한 모든 시간들이 소중하고 고마워. 엄마 아들이어서 고마워. 사랑해. 우리 다시 꼭 만나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자.

-<그리운 너에게>(416가족협의회, 후마니타스, 2018) 323-324쪽



-(세월호와 함께 별이된 단원고 2학년 8반 지상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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