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망초꽃 흐드러진 여름 속을 걸으며

여름에 태어난 아이 단원고 2학년 8반 박수찬에게

by 꿀벌 김화숙

개망초꽃

안도현


눈치코치 없이 아무 데서나 피는 게 아니라

개망초꽃은

사람의 눈길이 닿아야 핀다

이곳저곳 널린 밥풀 같은 꽃이라고 하지만

개망초꽃을 개망초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개망초꽃은 핀다

더러는 바람에 누우리라

햇빛 받아 줄기가 시들기도 하리라

그 모습을 늦여름 한때

눈물지으며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이 세상 한쪽이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훗날 그 보잘것없이 자잘하고 하얀 것이

어느 들길에 무더기 무더기로 돋아난다 한들

누가 그것을 개망초꽃이라 부르겠는가.



개망초꽃 피는 여름에 태어난 수찬아!


요즘 흐드러지게 피는 개망초꽃으로 너를 부른다. 네 생일 7월 25일이 든 이번 한 주는 정말 뜨거운 한여름을 통과하고 있어. 장마가 끝났으니 날마다 말갛게 씻은 하늘에 불같은 태양이 이글거리지. 이 뜨거운 계절에 네가 태어났구나. 네 생일을 뜨겁게 축하하며 너를 생각하며 걸었어. 흙도 아스팔트도 공기도 하늘도 모두 뜨거웠지. 너는 여름의 아이로구나.


이 더위에도 개망초꽃은 어찌나 생생하게 피는지! 네가 뛰놀던 화정 천변이며 화랑공원엔 걷는 걸음마다 개망초야. 안산 천변에도 호수 공원에도 동네 산에도 공터에도 놀이터에도 길가에도..... 늦은 봄부터 피기 시작해서 가을까지도 볼 수 있는 풀꽃이지. 작고 가녀린 줄기 위에 밥풀인 양 눈꽃인 양 하얗게 노랗게 핀 들꽃. 온 세상이 뜨거운 햇볕에 숨죽이는 이 계절이 개망초의 계절이란다. 7,8월은 개망초의 계절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구나, 수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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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코치 없이 아무 데서나 피는 게 아니라

개망초꽃은

사람의 눈길이 닿아야 핀다

이곳저곳 널린 밥풀 같은 꽃이라고 하지만

개망초꽃을 개망초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개망초꽃은 핀다


누가 감히 개망초를 아무 데서나 아무렇게나 피는 꽃이래.


그래, 너무 자잘해서 보잘것없어 보이지. 푸대접으로 지나쳐 봐도 저 혼자 피고 지는 꽃이라고들 하지. 쑥이 그렇듯 봄이면 온 천지에 흔해빠지게 자라나는 푸른 풀 개망초. 이름조차 '개'망초라 시시해 보이겠지. 그러나 수찬아, 이 하얗고 노란 개망초꽃은 홀로 피는 법이 없더구나. 어찌나 옹기종기 모여 피는지, 온 세상을 가득 채워 밝히듯 환하게 사랑스럽게 말을 걸어주는구나.


오늘도 동네 놀이터를 지나다 하얗게 부서진 개망초꽃 무더기 앞에 한참 서 있었단다. 안산 천변을 걷는 내내 개망초꽃이 나란히 나란히 나를 따라왔단다. 나와 눈을 맞추며 나를 어루만지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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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꽃은 예쁘기만 한 게 아냐. 알고 보면 아주아주 개성 있고 귀하고 유용한 식물이야. 아주 옛날부터 한방에서는, 피를 맑게 하고 열을 내리며, 가려움증을 멎게 하는 약재로 사용됐어. 민간에서는 해독과 소화를 돕고 장염과 설사, 감기 치료에도 쓰였대. 봄에 자라날 때 데쳐서 무쳐 먹으면 얼마나 맛난 나물인지 몰라. 요즘엔 개망초에서 항산화 물질(Antioxidant)인 폴리페놀을 추출해 제약과 화장품 제조에 사용되고 있단다.


꽃말이 뭔지 아니? "화해"야. 꽃들 중엔 꽃말이 여럿인 경우도 많은데 개망초는 딱 하나야. 나는 개망초꽃 앞에 설 때마다 나 자신과 화해하곤 해.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도록 내리누르는 세상의 모든 거대한 것들로부터 나를 지키려 해. 뜨거운 이 계절에 굴하지 않고 무더기로 피어나는 개망초꽃이 나를 받아들이게 하거든.


개망초 피는 여름에 태어난 수찬아!


여름은 개망초꽃 천지구나. 너와 엄마와 누나와 남동생, 네 식구 얼굴이 보여. 작고 힘없어 보이는 꽃, 아무렇게나 피는 듯 보이는 꽃, 그러나 살아 움직이는 놀라운 생명력. 네가 아직 어린 다섯 살, 동생이 세 살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가버렸지. 밤낮없이 일하며 홀로 너희를 키우신 엄마 꽃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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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의 계절에 태어난 수찬아!


한부모로 너희를 키운 삶을 엄마는 '알콩달콩 행복'이라고 표현하셨구나.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으로도 엄만 열심히 살아갈 자신이 있었대. 아~ 나도 애 셋을 낳고 기른 엄마란다. 둘이 해도 세 아이는 만만한 일 아니었어. 아니, 한 아이를 기르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잖아.


더러는 바람에 누우리라

햇빛 받아 줄기가 시들기도 하리라

그 모습을 늦여름 한때

눈물지으며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이 세상 한쪽이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엄마는 너희 셋을 데리고 주말이나 방학엔 공원이며 박물관이며 계곡과 바다로 다니셨구나. 버스도 전철도 기차도 택시까지도 아이 셋 데리고 타고 내리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닌데도 말이야. 네가 열두 살 여름, 네 식구가 경포호에서 4인용 자전거를 탔지. 세 아이를 태우고 엄마 혼자 페달을 밟을 엄두가 안 났던 거 너는 알고 있었지? 네가 엄마와 함께 페달을 밟았지. 얼마나 힘차게 밟았던지 넌 엉덩이가 아파 자전거를 세워야 했지. 엉덩이에 묻은 모래를 바지 밖으로 털어내고 다시 달려 4킬로를 완주하더구나.


엄마에게 너는 남편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든든한 큰아들이었어. 너는 엄마를 사랑하고 가족을 책임지고자 하는 속 깊은 아들이었구나. 친구들과 놀다가도 엄마 걱정할까 봐 저녁 8시면 집에 들어오는 아들. 아~~ 너는 엄마에게 모든 것 이상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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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초등학교 땐 엄마는 주간만 일해도 됐지만 중고등학교에 진학하자 엄마는 연장 근무에 야간 근무에 주말 근무까지 해야 했어. 점점 커지는 생활비와 교육비 규모를 감당하자니 엄만 아르바이트도 해야 했지. 그래도 생활은 빠듯하고 학원비를 대기가 벅찼구나. 주말 근무 있는 날이면 엄마는 집에 있을 너희들을 위해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 김밥을 쌌지. 야간 근무하는 날은 밤새 일하고 아침 9시 집으로 왔고. 너희들과 서로 얼굴도 못 보는 날도 많았지. 낮에는 자고 다시 밤에 일하는 생활로 엄마 몸이 녹아내리듯 피곤한 나날이었어.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주말에도 엄마는 야간 근무였지. 엄마는 토요일 출근 전 너와 여행 준비 쇼핑을 했고, 일요일에도 또 야근, 낮에 자고 월요일 밤 출근하기 전, 수학여행 떠날 네 얼굴을 잠깐 보았다는구나. 짐 싸며 설렘이 가득했던 네 얼굴을 엄마는 또렷이 기억하신대. 낯선 제주도, 처음 가보는 수학여행, 너는 그날 밤 잠을 설쳤지. 화요일 아침 너는 근무 중인 엄마와 잠깐 통화하고 혼자 수학여행을 떠났구나.


수찬아! 엄마는 그토록 쉬지 못하고 일했지만 네가 원하는 미술학원엘 선뜻 보낼 수 없었구나. 너 역시 네가 원하는 걸 엄마에게 요구하길 망설이는 아이였지. 엄마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 집안 형편이 어떠한지 다 알기 때문이지. 너는 학원 보내달라 했다가 금방 안 다니겠다고 마음을 바꾸곤 했다지. 왜 아니겠어.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넌 애니메이션을 제대로 배우고 애니메이션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말이야. 네 꿈을 지켜주지 못해 너무너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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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찬아!


너와 네 가족을 알고 나니 내가 얼마나 이 세상을 피상적으로 보고 살았는지 부끄러웠어.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단다. 이전엔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본 적 없거나 했더라도 이론적으로 하던 질문이었어.


"아빠는 집 나가고 엄마 혼자 수찬이 삼 남매를 홀로 키울 때, 이 나라는 무얼 했지?"

"한 부모 가족을 위한 법과 제도는 어디까지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집 나가 버린 아빠 또는 양육비 안 주는 아빠 몫의 책임을 국가는 어떤 식으로 관여해 왔지?"

"엄마가 야근에 연장 근무에 추가 아르바이트를 반복하지 않고 아이들과 시간을 좀 더 보낼 수 있게 지지할 사회적 자원은 없는가?"

"왜 한부모의 80%가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독박을 쓰도록 국가는 방치하고 있지?"


수찬아! 미안해.

이전에 지나쳐본 현실을 너와 네 가족이 일깨워주었어. 개망초꽃이 고맙구나. 고백할게 수찬아. 눈 감고 안 보고 못 보고 살았어. 이 세상에 질문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세월이 정말 부끄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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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그 보잘것없이 자잘하고 하얀 것이

어느 들길에 무더기 무더기로 돋아난다 한들

누가 그것을 개망초꽃이라 부르겠는가.


개망초꽃 피는 여름에 태어난 수찬아!

개망초꽃으로 너를 부른다.

수찬아 보고 싶구나!


(세월호와 함께 별이 된 단원고 2학년 8반 박수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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