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독자를 만났을 때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 출간 후 두 달 이야기

by 꿀벌 김화숙

내 책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가 나온 지 어언 두 달이다.


오늘로 생후 60일 된 아기 책이다. 집에 아이가 하나 태어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옛날에야 집 앞에 금줄을 쳐서 알렸다. 소식을 아는 사람마다 아기 이야기를 하고 서로 축하하고 선물을 주고받았을 테다. 아기가 태어난 집에서는? 아기를 먹이고 씻기고 돌보는 일로 어른들의 생활은 천지개벽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내 책과 함께 한 지난 두 달도 얼추 이와 비슷했다면 과장일까?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


생뚱맞게도 나는 고슴도치를 자주 생각하곤 했다. 내가 내 책을 너무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다는 말이다. 볼수록 내 새끼가 함함한 건, 내가 배 아파 낳은 자식들 셋한테서도 느끼지 못한 감정이 아닌가 한다. 솔직히 애 낳고 두 달 정도 될 때를 돌아보라. 얼떨떨하고 정신없고, 온몸은 내 몸이 아니고, 잠은 부족하고 젖은 아프고..... 낳자마자, 혹은 산욕기에 제 새끼 함함하다 느끼는 산모가 과연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내 경운 셋째 낳았을 때 쯤에사 갓난쟁이가 함함해 보이더라). 책 아기는 달랐다는 소리다.


함함하다, 나온 김에 이 단어 한 번 살펴보고 가자. 지 새끼 이쁘게 보인다는 뜻 정도가 아니다. 고슴도치 털을 잠시 상상하자. 함함하다는 건 '털이 보드랍고 반지르르하다'라는 뜻이다. 손끝에 느껴지는가? 물론 새끼 고슴도치는 얇은 막에 싸여 태어나거니와 갓난쟁이일 때 털은 아직 날카롭지가 않기도 하다. 허나 금방 삐죽삐죽 가시가 자라나는 새끼가 어미 눈엔 함함하다는 거다.


책이야말로 알고 보면 가시 투성이 아니던가? 더러는 가시가 두려위 집어들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내겐 그러나 날로 함함하기만 하니, 나는 고슴도치 작가?




1. 지난 10월 30일(일) 새벽 6시의 줌 저자 특강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마나 블로거 이웃 네트워크와 함께 한 강의였다. 내가 진행하는 책 모임들 아닌 외부 독자들과 줌으로 만나는 두 번째 기회였다. 저자 특강이란 이름에 맞게, 내가 1시간 15분 정도 강의를 한 후 40분 정도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빠르고 바쁘고 열정 넘치는 우리 사회의 단면 같은 모임이었다. 아이들 키우랴, 직장일에 살림에, 글 쓰고 각종 교육까지 받는 분들이 16명 접속했다. 인플루언서도 있고 파워블로거도 있었다. 공감과 연대의 새벽이었다.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 얼마나 좋은 소리인가. 허나 현실에서 어떻게? 아이와 가족을 우선하다 보면 자기 몸의 소리를 잘 듣기 어려운 게 여성들의 삶이다. 내가 겪은 시행착오와 흑역사를 솔직히 나누는 시간이었다. 댓글로 목소리로, 솔직한 고백과 질문이 이어졌다. B형 간염과 암, 건강 문제 관련 질문도 얼마나 실제적인지. 작은 한 권의 책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생명을 살리고 변화를 만들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여운이 오래가는 새벽 줌에 대해 정성스러운 후기를 쓴 분이 있길래 하나 공유한다.


https://m.blog.naver.com/jelee0110/222924793104




2.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 작가와 독자가 줌이 아닌 대면으로 10월 25일(화)에 만났다.


안산여성노동자회 페미니즘 토론 모임인 '이프' 10월 모임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줌으로 오래 해 오던 모임을 조금 확대해서 우리 동네 작은 북 카페 '펨'에서 연대로 했다. 양쪽 실무자들이 함께 기획회의를 하며 만들었다. 그 바쁜 10월에, 퇴근 후 피곤을 잊고 북토크에 달려와 준 이프 벗들이 고맙다. 서울에서 온 분들도 있었다. 내 짝꿍 덕도 함께 했다. 소통과 박수와 웃음과 질문으로 가득한 만남이었다.


6년간 평어로 소통해 온 이프 답게 북 토크는 평어로 진행됐다. 낯선 사람들도 오는 모임이지만 페미니즘 해방구 이프는, 해 오던대로, 용감하게 시도하기로 결정했단다. 처음 온 분들조차 즐거워하며 인사와 소개와 질문을 평어로 했다. 암, 안 되는 게 어딨어.


평어 진행자 안산 여노 회장 현선의 시작하는 목소리를 조금만 옮겨 본다.


여성노동자회 이프라는 페미니즘 책 읽기 소모임에서 화숙이 ‘우리 서로 이름을 부르자’라고 제안했던 때가 있었어. 머리도 하얗고, 어떻게 보아도 나보다는 나이가 많이 보이는 화숙에게 ‘언니’, ‘선생님’, ‘화숙님’이란 존칭어를 빼고 ‘화숙’으로 불러야 할 때 참 멋쩍고, 당황했었지. 처음엔 나도 입이 안 떨어지더라고


하지만 평어를 쓰자고 한 화숙의 제안은 어느새 안산여성노동자회의 소모임 문화로 물들어 가고 있고 있어.


화숙이 제안한 평어 쓰기엔 이런 장점이 있어. 삶과는 멀게 느껴졌던 ‘평등’이란 가치를 지금 여기의 삶의 순간으로 가져와 느끼고 경험하게 한다는 것이야. 개인적으론 화숙과 ‘언니’가 아닌 ‘친구’라는 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시작이자 출발이 되기도 했지. 문화와 정서 등 다양한 요인으로 17년 여성노동운동 현장에서도 한 번도 시도 하지 못했던 ‘반~말~’!을 오랜 후원회원에서 해성같이 활동회원으로 등장한 화숙 덕분에 안산여노의 조직 문화는 평등을 현재 누리게 된 거지. 멋지지?


그래서 오늘은 북 토크는 낯 설 지만 ‘우리 모두 평어’를 쓸 것을 제안해! 이런 북토크 처음이지? 나도 처음이야! -자기돌봄 북 토크쇼 진행자 현선의 들어가는 말 중에서




이프 북토크는 오프닝 공연에서도 '튀었다'. 작가가 장구치며 시작했으니까. 책방의 출입구 쪽에서 북과 장구를 치며 두 사람이 걸어들어왔다. 최문성 김화숙. 몇 달 전 세월호 행사에서 알게 된 두 사람이 의기투합 장구와 북으로 뭉쳤다. 최 선생은 안산 평생학습관 동아리 모임인 '다채움풍물놀이' 지도 강사다. 올 봄부터 내가 독학으로 장구 장단을 조금씩 배우던 차에 이어진 인연이였다. 흔쾌히 함께 해주신 선생님 감사합니다!




3. 안산에서 모인 두 번째 북토크는 11월 3일(목) 오전 여성단체 울림에서 있었다.


애초에 '북치고 장구치고'라는 제목대로 최문성 선생과 한바탕 오프닝으로 놀 예정이었다. 안타까운 1029참사 애도 분위기로 인해 하지 못했다. 안산 시민으로서 지난 8년간 크고 작은 모임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순서는 늘 해온 바였다. 416의 트라우마 위에 1029라는 참사가 또 하나 더해진 현실이 너무 아프다.


함께 크는 여성 울림은 회원 소모임 활동이 다양하고 활발한 여성단체다.


평일 낮시간인데 시간을 낸 열혈 독자들로 좁은 교육장이 꽉 찼다. 책 읽는 소모임 '북소리'의 경우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로 10월 모임에서 토론을 하고 다시 작가와 함께 하러 달려왔다. 세월호 소모임 '별을 품은 사람들'과 글 쓰는 소모임 '수글수글' 등 회원 독자들이 점심과 축하 꽃과 케이크까지 준비해 주었다. 점심 먹으며 질의응답이 이어진 후, 뒤풀이가 저녁까지 이어졌다.



북토크는 작가를 위한 자리일까 독자들을 위한 자리일까?


독자가 작가를 만났을 때, 작가와 독자가 만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작가는 글만 쓰는 사람이 아닌 게 확실하다. 작가는 독자와 만나야 하는 걸 다시 알겠다. 이건 새로운 창조행위 같은 거였다. 이토록 벅찬 즐거움일 줄 나도 미처 몰랐다. 다른 저자의 북토크를 내가 좋아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치유이자 놀이이자 소통과 영감의 선물이었다. 원 없이 말하고 웃어젖히고, 흑역사를 까발리면서도 같이 울고 웃는 기적의 축제였다.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묻는 질문이 빠지지 않았다. 나는 아주 할 말이 많았는데 대개 이렇게 흘러갔다.


여자로 태어난 게 내겐 실패요 오류 같은 거였다. 나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데 오랜 세월이 걸린 것 같다. 가정에서도 성차별적으로 컸는데, 20대부터 보수적인 선교단체에서 차별적인 여성관을 배웠다. 결혼식에서 남편 순종하며 살겠다고 서약했다. 돕는 배필, 순종하고 헌신하는 아내, 기도하고 남 섬기는 사모의 삶.... 약속했으니 뼈를 갈아 넣어 나를 낮추며 살았다. 인생엔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다잖아. 내 진짜 자아, 내 진짜 목소리는 자꾸 감추어졌다. 남들에게 맞춰주고 들어주는 삶만 살다 보니 가슴속에 내 할 말이 쌓여갔다. 어딜 가나 내 목소리를 내기가 조심스러운 삶이었다. 설명하다 늙어 죽게 생겼더라. 이건 잘 보관했다가 나중에 글로 써야겠다.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살았다. 40대를 새천년으로 맞고, 나는 예감했다. 내 인생에 진짜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는 글쓰기라고. 글을 써야 내가 진짜 나로 살고 할 말을 하고 살겠더라. 자유기고가로 시작해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오마이 블로그, 소설쓰기, 네이버 블로그와 브런치까지 왔다. 첫 책이 이런 성격이 될 줄 예상하지 못했다....




4. 11월 9일(수) 저녁의 '작가와의 만남'은 또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살다 보니 나는 진보당과 연을 맺게 됐다. 내가 진보 정치를 안다고 말하긴 조심스럽다. 탈정치적인 '여자의 삶'에 길들었던 나 아닌가. 돌고 돌아서,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임을 나는 온몸으로 깨달아버렸을 뿐이다. 얼치기나마, 아직 오지 않은 유토피아, 예수의 하나님 나라 정신이야말로 진보 중의 진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근데 예수 믿는다는 교회는 왜 꼴보 소리 듣지? 내가 진보당과 연을 맺었다고 내가 진보적인 사람인가? 단정해서 말하긴 세상 살기만큼 모르겠고 또 어렵도다.


진보당 안산시위원회답게 당원이 오프닝을 하고 지역위원장이 토크를 진행했다. 몇 달 전 내게 자기 부인을 소개해 준 조덕현 님. 지난 지방선거 때 시의원에 출마했던 박범수 님. 이날 참여자 구성 또한 고무적인 게, 남녀 성비가 2:3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중년 아저씨가 적극 호응하고 질문하는 북토크였으니 감동 또 감동이었다. 진보당원들만 아니라 원근에서 온 내 벗들도 있고 초대받아 온 이들도 있었다.




작가와의 만남, 독자도 작가도 거침없이 말하고 실컷 웃는 시간이었다. 짝꿍 덕에게도 말미에 마이크를 주니 한마디 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책을 구입하는 독자들 덕분에 싸인도 열심히 했다. 어색하더니 이제 싸인이 좀 익숙해지는 것 같다. 다만, 한마디를 쓰는 건 아직 어색하다. 책에 다 말했는데 뭘 새삼스럽게 쓰냐, 그런 맘이다.


내 목소리에 듣고 반응하고 함께 웃어준 독자들에게 감사 또 감사한다. 뒤풀이까지 따로 준비해주고 사귐의 시간을 선물해 준 것 감사한다. 백만 년 만에 그 밤에 나는 비건 포기하고 맛있는 수육과 맥주로 1시 반까지 달렸다. 정치인, 신부, 노조위원장, 목사, 사업가, 퇴역장교의 부인.... 새로운 만남이고 새로운 인식의 세계로의 여행이었다.




5.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


몇 번의 북토크 또는 저자와의 만남을 하고 나니 내 책상엔 꽃이 끊이지 않고 피고 있다. 책상 앞에 앉을 때마다 꽃 향기가 나를 감싸 안는다. 꽃만 고우랴. 향기만 취하랴. 꽃을 선물한 이들의 이름을 떠올리게 되고,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취하게 된다. 작가를 향한 응원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내 작은 책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가 나를 얼마나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지 점점 기대하게 된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


그렇다. 내 책이 세상 사랑스럽고 멋지다. 내 책을 읽어주는 독자들이 나는 세상 사랑스럽고 고맙다. 책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만남을 즐기는 이들이 나는 말할 수 없이 함함하다. 이게 내가 원하던 연대요 소통이요 사랑으로 가는 새 길이다. 길치가 만들어 낸 새길이다.


이달 말엔 서울에서 새 독자들을 만날 계획이다. 12월엔 저 멀리 의정부에서, 그리고 안산에서 크고 작은 만남이 이어질 예정이다. 책이 만들어내는 새 길을 가는 즐거움. 그 길에 새로운 벗들을 만나는 기쁨. 독자와 저자가 만날 때, 그 길에 또 책이 써지고 있다. 우리 새 길 같이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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