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슬픈 게 뭐죠? 다른 행성으로 갈래요? 나의 지옥 나의 천국
새해 벽두엔 어떤 책을 읽을까?
여기 푸른빛의 소녀가 시인을 찾아왔다.
푸른빛, 푸른빛.... 신비와 축복의 상징색인가?
미지의 불안과 두려움을 말하는 색일까?
새해, 푸른빛의 소녀가 저 멀리 우주에서 나를 찾아온다면? 무슨 질문을 하고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이 팍팍한 팬데믹 지구를 떠나 저 푸른빛 속 다른 행성으로 떠나자 제안한다면? 코로나도 경제도 지리멸렬한 일상도 다 버리고 푸른빛의 소녀를 따라 떠날까? 여기 남아 또 한 해를 살까? 다시 어떤 새해를 살고 싶은데?......
< 푸른빛의 소녀가>(박노해, 느린걸음, 2020)는 이렇게 묻고 대답하는 책이다.
한 편의 시가 한 권의 그림 속을 거니는 시 그림책. 시인과 화가가 같이 낳은 작품이라 하겠다. 예술가의 얼굴이 자꾸 궁금해지고 보고 싶게 하는 책이다. 겉표지부터 속지 그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푸른빛이 자꾸 말을 걸어온다. 책을 손에 드는 순간, 이미 가슴이 뛸지도 모른다. 저 멀리 우주, 다른 행성을 그리게 될지도 모른다. 벌써 눈물이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원색에 가까운 추상화 사이사이에 시가 흐르는, 성인을 위한 시 그림책이다.
겉표지를 열고 까만 속표지를 넘기면 '푸른빛의 소녀가' 독자를 맞이한다. 빳빳한 그림 종이 속지가 시 그림책의 품격을 더해주는구나, 또 한 장 넘긴다. '지구별 아이들에게'라는 시인의 목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러니까, 푸른빛의 소녀가, 아니 시인이 지구별 아이들에게, 소녀가 묻고 시인이 말하는 책이구나. 다음 장을 넘기면 양면이 온통 노란색이다. 그 오른쪽 아래 한 사람이 서 있다.
진녹색과 검정 색종이를 오려 붙인 양 단순하고 뭉툭한 도형들이다. 사각형 삼각형 동그라미 조합이 사람 형상으로 서 있다. 생각에 잠긴 듯, 말을 거는 듯, 서 있는 사람, 그리고 글자는 하나도 없다.
이렇게 글이 없는 여백의 면은 책 속에 여러 번 나온다. 푸른빛의 소녀가 묻고 시인이 대답하는 중간중간, 마치 쉬어가듯 숨 쉬는 공간이겠다. 소녀가 다른 질문을 하기 전에 숨을 돌리겠고 시인이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겠다. 생각의 숲 속 같고 깊은 강물 같은 공간인가 하면, 바다 같은 심연의 기간이기도 하다. 푸른 하늘이고 우주같이 넓고 끝없는 공간, 푸른빛의 끝없는 시간, 원색의 빛나는 그림이 있을 뿐이다. 시와 그림이 독자에게 말을 걸고 거니는 시간과 공간이다.
푸른빛의 소녀가. 시와 그림들이, 이렇게 만나고 이렇게 어우러질 수 있구나. 이런 신비로운 그림을 그린 사람은 누구지? 시 그림책을 읽어 나갈수록 시인이 선택한 그림이 자꾸만 말을 걸어올 것이다. 이 추상화 뒤에서 말하는 작가가 궁금해 참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 시를 이런 그림으로 담아낸 주인공을 만나 말을 걸어볼 수 있을까? 시 그림책을 그린 화가 이야기부터 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림은 러시아 화가 카지미르 세베리노비치 말레비치(Kazimir Severnovich Malevich, 1879-1935)의 작품이다. 생몰 연대가 보여 주듯 현역 화가가 아니다. 안타깝게도, 아니 세상을 떠난 작가의 그림을 지금 보고 있으니 행운이다. 러시아 혁명이 1917년이었음을 기억하며 그가 활동하던 시대를 짐작하자. <푸른빛의 소녀가>에 실린 그림들은 모두 말레비치의 생전 작품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란다.
말레비치는 우크라이나 키예프 태생의 러시아 추상미술의 대표 화가다. 초반에는 인상주의 영향의 풍경화나 입체파처럼 그린 적도 있었다. 1915년 <0, 10>이라는 전시회를 통해 그는 자신만의 추상미술을 발표한다. 검은 사각형, 흰색 위의 또 다른 느낌의 흰색 사각형, 검은 십자 무늬 등 무채색 도형으로 가득한 전시회였다. 이후에 그는 지속적으로 사각형을 중심으로 한 추상화를 그리게 된다. 그에게 도형은, 특히 사각형이란 가장 순수한 정신세계를 상징했다.
그가 한창 활동할 당시의 러시아는 그에게 너무 물질적이었다. 미술은 정치적인 선동과 레닌 선전에 이용되고 있었다. 그는 추상화를 통해 순수한 정신세계를 지키고 표현하고자 했다. 정권의 압박 때문에 구상화를 조금 그린 적이 있지만 결코 자신의 신념과 사각형 추상화를 포기하지 않았다. 도형의 세계에서 그는 정신의 순수함을 지키고 표현할 수 있었다. 그가 56세에 암으로 죽었을 때, 그의 뜻에 따라, 사각형 추상화가 그려진 관이 준비되었다.
지구에서 좋은 게 뭐죠?
시 그림책을 여는 첫 질문이다. 저 먼 행성에서 불시착한 푸른빛의 소녀가 지구 시인에게 하는 첫마디가 "지구에서 좋은 게 뭐죠?" 질문이다. 지구 말고 더 좋은 곳이 있다면 떠나자는 제안일까? 지구에서 좋은 게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라는 걸까? 금방 대답할 말이 생각날까? 시는 푸른빛의 소녀가 던지는 이런 질문과 시인의 목소리로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푸른빛의 소녀가>의 시는 박노해가 썼다. 그림이 말레비치의 정신세계라면 시는 박노해 시인의 정신을 담고 있다. 이 두 작가의 예술 정신이 <푸른빛의 소녀가>로 만나 작품이 된 거다. <노동의 새벽>으로 알려진 박노해 시인을 지금은 노동자 시인으로만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지 사진작가, 사진 시 전시회, 나눔 문화 시민 단체, 저술 활동..... 책 말미엔 시인의 자그마한 사진과 소개 글이 한글과 영어로 정리돼 있다. 그의 저서 목록도 함께.
< 길>, <노동의 새벽>,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다른 길>, <나 거기에 그들처럼>. <푸른빛의 소녀가>처럼 그의 저서들도 모두 원색의 컬러 표지로 펴낸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나눔 문화에서 운영하는 <라 카페 갤러리>에서 상설 전시하고 있는 박노해 사진전이 현재 18번째까지 이어지고 있다. 총 30만 관객이 다녀갔다니, 그 숫자엔 나도 있겠다. <하루>, <단순하게 단아하게>, 그리고 <길>을 전시회로 보고, 책으로 읽은 독자에겐 시 그림책이 또 하나의 시화 전시가 될 것이다.
책에 실린 '지은이 박노해'에서 시작과 끝부분만 조금 옮겨 본다.
질문하고 답하던 소녀와 시인에게 헤어질 시간이 온다. 시인은 지구에 남고 소녀는 빛으로 사라진다.
이쯤에서 내게 시 그림책을 새해 선물로 보낸 벗 이야기를 해야겠다.
우리는 한살림 마을 모임 '책살림'에서 책 읽고 토론하는 사람들. 나이와 경험, 지금 사는 모습도 조금씩 다르지만, 서로 이름 부르고 평어 쓰는 친구들이다. 세상에 많지 않은 관계겠다. <푸른빛의 소녀가>를 받고 포장을 뜯었을 때, 내 이름을 부르는 엽서가 나왔다. 손글씨로 쓴 글을 소리 내 읽다가 나는 울컥,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나를 울린 친구야!" 수다로 답했다.
어쩜 이리 절묘한 편집일까!
책 말미에 내가 나에게, 그리고 벗에게 화답할 말을 시인이 남겨 주었으니 말이다.
책 뒤표지 바로 앞장은 까만 여백. 아마도 우리가 바라볼 까만 밤하늘이 아닐까. 어두운 하늘일수록 별이 잘 보이니까. 그 앞 왼쪽 페이지엔 추상적인 무채색 동그라미들과 작대기와 시인의 에필로그가 있다. 거기서 너의 별을 보고, 내 별을 보고, 내 안에 빛나는 별을 볼 수 있다. 까만 밤하늘의 공간과 시간을 허락하는 책. 참 잘 만든 시 그림책이다.
친구야! 정말 좋은 책 선물 고마워. 시는 소리 내서 읽어야 맛이지. 다시 보고 다시 소리 내 읽으며, 손은 자판을 두드렸어. 좋은 책을 읽으면, 혼자 간직하지 못하는 우리들. 책을 추천하든, 글을 쓰든, 토론을 하는 우리들. 우린 새 한 해 이 지구에 남아 함께 토론하겠지? 우리의 지구별에서 새 한 해가 기대되고 설렌다. 내가 여러모로 부족했지만 화답하며 함께 울고 웃어준 벗들이 있고 아이들이 있는 여기.
시인의 마지막 목소리를 내가 다시 낭독할게. 친구야 들리지?
우리 모두는
별에서 온 아이들
네 안에는
별이 빛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