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경제 기사를 훑고 나서 내 마음에 남은 한 꼭지를 들여다본다. 20대 자식 셋을 둔 엄마 눈이라 '취업 준비생'이란 단어는 늘 지나칠 수 없는 주제겠다. 취업 준비생들의 목소리도 귀가 쫑긋하지만, 취업 준비생들 지원 정책은 '눈에 불을 켜고' 읽게 되는 거 같다. 평소에도 핀란드 이야기엔 늘 그랬다. 아니, 진짜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나라 아닌가? 읽기도 전에 부러운 나라, 최연소 30대 여성 총리 산나 마린이 있는 나라라서 더 그렇다.
북유럽 복지국가 핀란드. 이 나라 청년들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많이 뛰어드나 보다. 이 나라의 관대하고 보편적인 노동복지가 큰 기여를 하고 있어서란다. 성공을 보장할 것인지, 안정적인 수입과 미래를 얼마나 보장할 것인지, 이런 계산으로는 결코 뛰어들기 어려운 분야 아닌가. 핀란드라고 지상 낙원 아닌 건 말해 무엇하겠나. 그럼에도 핀란드 취업 준비생 지원 정책을 마음으로 꼼꼼히 읽는 나는, 취업 준비생 셋 둔 중년 엄마로다.
기본 소득, 무상 교육, 학업 보조금, 취업 취업 준비생을 위한 노동시장 보조금, 주택수당, 취업 준비생을 위한 유급 출산휴가, 산모 수당, 아무 경력 구직자를 위한 실업 급여, 구직자를 위한 다양한 현금 급여 정책......
특히나 내 눈이 머무르는 지점은 임신 출산 관련이었다. 직장이 있건 없건, 실업자건 취업준비생이건 차별 없는 임신 출산에 따른 유급 휴가제도며 지원정책. 진심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역시 수준이 다른 나라임을 인정한다. 사람의 의식과 상상력은 끊임없는 남들 사는 거 봐가며 자극을 받아야 한다. 가랑이 찢어지며 경계를 확장해야 하리. 증세도 해야 하리. 미친 듯 배우고 따라가도, 우리 자식들이 내 때와 다른 세상에 살아갈 거란 확신이 잘 안 드는 건 어쩔 수 없도다.
우리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우리 큰아들은 3년 차 직장인으로 20대 마지막 새해를 맞았다. 대학 재학 중엔 방학마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했고 졸업 후 1년간 취업 준비생으로 살았다. 스타트업에서 비정규직 개발자로 일을 시작했다. 노동강도와 시간에 비해 수입과 미래가 불투명했다. 결국 반 년 만에 퇴사하고 다시 취준생, 반 년 후 취업했다. 수십 군데 지원하고 딱 한 군데 합격하면서 좁은 취업문을 실감했다. 코로나 시국이라 신입사원 퇴사 꿈꾸지 않는다. 지방의 회사 기숙사 생활, 서울로 자리가 나길 고대하며, 열심히 '존버'하며, 주말엔 집에 다녀간다. 엄지 척!
아들보다 한 살 적은 우리 딸은 4년 차 직장인이다. 두 달 후면 만 3년이 되지만 2년 차부터 계속 이직을 시도 중인 취업 준비생이기도 하다. 작년에 취업 시험 재수 실패하고 '3수 취업 준비생 직장인'으로 새해를 맞았다. 부모 지원 없이 살려니 직장 때려치우고 취업 준비할 엄두는 못 낸다. 쥐꼬리 월급이라 독립생활 역시 꿈꾸지 않는다. 가진 것 없는 부모지만 먹고 자는 건 제공되니까, '존버'하고 있다. 취업 준비생 신분은 벗고 대학원생 신분으로 서른을 맞는 게 딸의 올해 목표다. 엄지 척!
누나보다 다섯 살 아래인 우리 막내는 대학생이다. 군 제대 후 복학생으로 코로나 시대를 살며 방학 아르바이트로 생활비 버는 게 어려웠다. '재난지원금'을 우리 식구들은 모두 막내한테 몰아줬다. 자립적인 대학생활 꿈꾸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그래도 아들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아르바이트로 인강비를 벌어 등록했다. 이제 대학 졸업반이자 본격 취업 준비생으로 새해를 출발한 것이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 준비생 신분을 벗는 게 그의 목표다. 월세와 생활비를 지원받는 취업 준비생 신분이 길어지는 걸 결단코 원하지 않는 20대다. 그의 앞 길에 엄지 척!
나도 알고 보면 취업 준비생이다. 중년의 경단녀로 직장 생활 10년 남짓하고 암 수술로 직장 그만둬야 했다. 사표 낸 후 지난 5년여 나는 공식 백수로 살았다. 날로 건강한 몸 덕분에 간헐적인 일용직 아르바이트도 하고, 간간이 쥐꼬리 원고료가 수입인 작가로 살고 있다. 자식들이 가끔 용돈도 주고 선물도 밥도 사 준다. 환갑이 낼 모레로 다가오는 중년 아줌마. 작년엔 근로장려금 80여만 원 받았다. 나 같은 취업 지원생을 위한 지원정책도 요즘 눈 씻고 살펴보게 된다.
그래도 우리 자식들은 각자 가기 길을 잘 가는 경우겠다. 취업 준비생 지원 정책 타령하는 게 배부른 소리로 들릴까 봐 살짝 조심스러운 맘 없지 않다. 더구나 나는 당장 생계형 노동시장에 몰리지도 않거니와 작가로 늙어갈 배짱으로 살고 있으니 말이다. 20대 세 자식들의 독립을 응원하며, 이들이 안심하고 취업준비생으로살 수 있길, 이들을 위한 취업지원정책이 나날이 좋아지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핀란드 취업 준비생은 어떻게 보호받을까?"
2017년부터 2년간 핀란드는 기본소득 실험을 했다. 2020년 5월 기본소득 실험 최종 보고서가 발표되면서 그 결과에 대한 다양한 논의도 이뤄졌다. 청년실업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낮은 수준의 고용률이 지속하는 상황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현상이다. 기존 고용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적 대안으로 보편적 기본소득 제도를 지지하는 의견이 늘고 있다.
반면 핀란드에서 기본소득 제도에 대한 일반 시민의 관심은 그리 높지 않다. 사회민주주의 당을 중심으로 한 핀란드 중도좌파 연합정부도 기본소득 제도 도입은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 밝히면서 다른 대안으로 사회보장제도를 개편하기 위해 국가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현행 제도에서 핀란드 취업 준비생은 어떻게 소득을 보장받고 있을까?
핀란드 취업 준비생은 상환해야 할 학자금 대출이 없다는 게 우리나라 상황과 가장 다른 점이다. 핀란드에서 공교육은 무상이다. 대학 교육뿐만 아니라 직업훈련도 무상이다. 따라서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결정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학비를 대출받고 갚느라 장시간 일할 필요도 없고 학자금 빚을 지고 사회로 나가는 일도 없다.
부모에게서 독립생활하는 학생들은 정부로부터 매달 253유로(약 33만 원) 정도의 학업보조금을 받는다. 양육하는 자녀가 있는 학생은 약 354유로(약 46만 원)를 받는다. 지방정부와 대학은 저렴한 월세로 기숙사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관대한 혜택이 제공되지만 생활비가 넉넉히 충당되는 건 아니다. 핀란드에서도 많은 학생이 부모 도움을 받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사실이란다.
핀란드에서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하기는 쉽지 않다. 짧지 않은 취업 준비 기간도 비슷하다. 취업 준비생은 핀란드 중앙정부기관인 사회보험청(KELA)에서 노동시장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노동시장 보조금은 실업 급여의 일종으로 노동시장 참여 이력이 없는 구직자나 실업보험 기금에서 지급하는 실업수당의 수급 기간이 만료된 장기 실업자에게 지급된다. 노동자와 고용자의 기여금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실업보험과는 별도로 조세로 운영되는 또 하나의 실업급여 제도가 존재하는 것이다.
노동시장 보조금은 구직자 소득을 지속해서 보장하는 동시에 노동시장 참여 지원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구직 활동을 수급 요건으로 한다. 2020년 기준 노동시장 보조금 급여액은 월평균 724유로(약 94만 원) 수준이고, 수급자는 구직 활동을 유지하는 한 이 보조금을 무기한 받을 수 있다.
노동시장 보조금은 소득을 조사해 지급이 결정된다. 이때 배우자 소득은 고려되지 않고, 구직자가 부모와 함께 거주할 경우 부모 소득이 수급 자격과 급여액에 영향을 미친다. 핀란드 취업 준비생은 주택수당도 받을 수 있다. 수급 자격과 급여액은 신청 가구의 규모, 소득, 거주 지역, 주택 유형, 주택 유지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된다. 취업 준비생 대부분은 독립가구를 이루고 소득이 많지 않기 때문에 주택수당을 받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핀란드 사회보험청 통계에 따르면, 2019년 연금수령자를 제외하고 주택수당을 받은 가구는 약 38만 가구였고, 한 가구당 매월 약 323유로(약 42만 원)가 주택수당으로 지급됐다. 이 가운데 1인 가구는 약 26만 가구로 2010년보다 세 배 가까이 늘어났다.
핀란드에서는 취업 준비생도 유급 출산·육아 휴가를 가질 수 있다. 실업자가 어떻게 유급휴가? 하지만 핀란드에서는 출산과 육아가 구직 활동을 어렵게 함으로써 노동시장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시기에 구직자에게 발생하는 소득 상실을 유급 출산·육아 휴가로 보상하는 것이다. 직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모두 유급 휴가 기간이 동일하고 그 기간 지급되는 수당만 차이가 있다.
임산부는 출산 앞뒤로 4개월간 유급 출산휴가를 갖는다. 이 휴가가 시작되기 전 학생이거나 실업 상태에 있던 산모는 매월 750유로(약 98만 원) 정도 수당을 받는다. 출산 뒤, 모든 아빠는 동일한 금액의 수당을 받으며 9주 동안 유급휴가를 가질 수 있다. 산모의 출산휴가가 끝나면 부모 중 한 명이 약 6개월간 유급 육아휴가를 쓸 수 있다. 이때도 출산휴가 때와 동일한 금액의 수당이 지급된다.
비록 핀란드 소득 보장 제도의 일부분만 살펴봤지만, 취업 준비생이 받을 수 있는 현금급여 내용만 봐도 핀란드 사람들이 왜 기본소득 제도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다. 핀란드에서는 이미 관대한 수준의 현금급여가 지급되고 있으니까. 생애 주기에 따라 다양한 사회적 위험을 바탕으로 구체적이고 유기적으로 설계됐다.
복지 원리에 따라 사회적 위험에 직면한 사람이면 누구나 그에 대응하는 현금급여를 받을 권리가 있다. 아무 경력 구직자에게도 실업급여를 지급하고 실업자에게도 유급 출산·육아 휴가를 보장하는 핀란드 사례는 신선한 관점을 제공한다. 사실 직장을 다니던 사람보다 그들이 더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생활을 할 가능성이 큰데도 기존 사회보험 틀은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함을 상기시킨다.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겨레, 신영규, 2021. 1. 11.)
신영규(youngkyu.shin@gmail.com)
핀란드에서 복지국가 비교 연구를 하는 연구자이다. 노동시장 정책, 실업급여, 비정규직 노동, 노동조합, 복지 선호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에서 행정학, 런던정치 경제대학교에서 사회정책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2013년에 헬싱키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헬싱키대학교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고, 유럽 불안정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가입과 복지 선호에 관한 연구로 박사논문을 제출하여 졸업을 앞두고 있다. 2020년 가을부터는 핀란드 국립보건복지연구원(THL)에 방문연구원으로 파견되어 핀란드의 사회서비스 디지털화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