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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교사 Oct 08. 2019

그래서 교사는 왜 되고 싶었는데?

안전빵 직장을 선택한 나름의 대의명분을 들어보실래요?

"길을 몰라 방황하는 나와 같은 학창시절을 겪는 아이들에게 나침반이 되어 주고 싶었습니다."

딱 진부하다. 그러나 사실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학창시절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몰라 무척 힘들었다. 그리고 학교에서의 한정된 공부는 나에게 내가 뭘 원하고, 좋아하고, 잘 하는지 파악하기에는 충분치 않았고, 10대의 나의 생활은 집, 학교, 교회가 전부였다. 오히려 교회에서의 다양한 활동이 나의 역량을 많이 키웠고 덕분에 하고 싶은 것도 많아졌다. 외교관도 하고 싶고, 아이들도 가르치고 싶고, 해외에 나가서 일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 그냥 회사는 너무 막연하게 느껴졌고 딱히 직장으로 삼고 싶은 소위 꿈의 직장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솔직히 아는 직업군이 그게 전부였다. 형태는 분명하지 않았다. 그냥 어딘가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존재를 인정 받고 싶었던 것 같다. 꿈 많고 겁 많던 10대의 나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영문학이라는 아주 흔하면서 가능성이 많은 과를 택했고, 새내기가 끝날 즈음 혹시하는 마음으로 교원 자격증을 신청했고, 4학년을 시작할 즈음 꿈을 이룰 무대로 학교를 선택했다.   


조금 더 솔직해져볼까.

내 어린시절 학창시절 선생님이 제일 부럽고, 멋있었다. 학교 밖으로 식사하러 나가는 샘들이 부러웠다. 시험 앞두고 자습한다고 빡공할 때 감독하며 책 읽는 선생님들이 부러웠다. 더운 여름 교실 에어컨이 하나도 안 시원한데, 빵빵하게 튼 교무실에서 시원하게 업무 보는 선생님들이 부러웠다. 내가 못하는 걸 하시는 샘들이 멋있었다. 판서를 예쁘게 하는 샘들이 멋있었다. 친구가 아파서 토한 걸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맨손으로 닦아내는 샘이 멋있었다. 내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시는 샘이 참 좋았다.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샘이 참 좋았다. 어려울 때 같이 그 길을 걸어주시는 샘이 좋았다. 평가권을 가진 선생님은 거대한 권력자였다. 학생인 나에게 그 권력은 실로 대단했다.


막상 해보니, 다 이유가 있었다. 

점심식사를 밖에서 하신 날은 생각해보니 시험기간 일찍 끝나는 날이었다. 학교에서 밥을 안 주는 날이었다. 시대가 변했다. 이젠 교실에도 에어컨이 빵빵하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요즘은 보통 공립학교에서도 교무실 청소는 학생들이 하지 않는다. 멋진 선생님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나는 판서를 못하고 요즘은 파워포인트를 사용해서 판서할 일이 별로 없다. 조심스레 고민을 꺼내놓는 학생들에게 내가 아는 답을 주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지만 꾹 참고 아이가 마음 밑바닥에 있는 마음을 꺼낼 수 있도록 귀만 열어 두고, 입은 가끔 질문을 할 때만 사용한다. 답은 스스로 찾아야 하니까. 아직 내 수업시간에 토한 학생은 못 만났다. 가끔 상상한다. 학생들과 함께 위기 상황을 맞딱트리면 과연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의로운 행동을 자진해서 하겠다고 감히 자신하지 않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들어가고, 또 주변에서 학생들을 먼저 생각하는 선생님들을 보며 태도도 전이되고 학습되겠지 하며 배우는 중이다. 


내가 교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왜 선생님을 하냐며, 이해가 안 간다고 반응하던 나의 오랜 친구가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이내 말을 꺼냈다.

“너는 참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나보다.”


알게 모르게 나는 나를 스쳐가는 많은 선생님들께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나보다. 사실 그랬다. 또 그 땐 부정적인 영향을 주셨다고 생각했던 선생님들도 계셨지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어떤 영향도 교사가 되겠다는 다짐으로 수렴된 걸 보면 그냥 교사가 되고 싶었나 보다. 이제와서 그 날의 선택의 이유와 동기를 분석하는 건 불가하고 또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아무튼 내가 보는 그분들의 삶은 의도적이지 않게 나에게 많은 동기부여를 했다. 


 

요즘 시대에 선생님으로 살아간다는 것 

요즘은 교사 외에도 학생들이 접하는 가족 밖 ‘성인’이 참 많다. 유투브가 또 다른 세상인 아이들에게는 교사 말고도 동기부여의 원동력이 되는 대상이 참 많고 교사라는 위치 자체는 예전과 같지 않다. 그래도 옷깃을 스치고, 매일 얼굴을 본다는 것은 아주 강력한 인력을 갖기에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처럼 학생들은 교사에게 이런 저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에 나는 자부심을 갖는다. 그렇다고 학생들 앞에서 무게를 잡거나 가식을 떨진 않는다. ‘선생님’ 답게 행동하고 노력했던 초창기의 시간도 있었지만 결국 나는 ‘나답게’ 살면 된다는 나름의 해답을 얻어 나아가고 있다. 굳이 본성을 거스르며 애쓰는 것이 있다면, 배움을 멈추지 않는 것. 책상 위에서의 배움이든, 현장에서의 배움이든 나는 가르치는 것이 업이지만 동시에 배우는 것도 중요한 직무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에게 공부하라고 하면서, 정작 나는 안 하면?  친구랑 사이 좋게 지내라고 하면서 나는 안 하면? 업무 분장에 명시 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곳에 있으면서 점점 느끼는 것이 교육이라는 건 거창한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간다는 것.  삶으로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나는 학생들과 학교라는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 거니까. 그래서 이 자리가 나는 참 좋다. 



불평을 하기도 하고, 투덜 대기도 하고, 딴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나는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서 많은 아이들과 나누는 인사와 교감이 좋고, 불안했던 20대의 내가 한 선택과 용기에 감사하다. 


오늘도 나는 출근을 했다. 조금의 스트레스와, 조금의 설렘과, 조금의 용기를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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