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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영미 Jan 25. 2021

나는 지하철입니다

-당신에게 지하철의 의미는?

   

김효은 작가가 그리고 지은 그림책 [나는 지하철입니다]다. 표지는 앞, 뒷면이 연결된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합정역 안 스크린도어 앞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할아버지, 젊은 여성, 젊은 남성, 여학생, 할머니, 직장인들의 모습까지. 이 그림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려져 있다.      

표지

    

앞면지에는 푸른 하늘 아래 한강 위를 달리는 지하철의 모습이 보인다. 이 그림책에서는 특이하게 앞면지 뒤에 약표제지, 표제지를 뛰어넘고 바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에서는 지하철을 타려고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는 사람들, 개찰구를 오가는 사람들,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리고 터널을 뚫고 달려오는 지하철의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다. 

4장의 이야기는 이렇다.

[나는 오늘도 달립니다.]

[매일 같은 시간 매일 같은 길을.]

[어디에선가 와서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을 싣고]

[한강을 두 번 건너며 땅 위와 아래를 오르내립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이 길 마디마디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약표제지

그리고 이렇게 다시 약표제지가 나타난다.

[나는 지하철입니다]

글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 그림책 이야기 구조는 크게 두 개로 나눌 수 있다. 앞의 이야기는 지하철을 타는 7명의 삶을 가까이서 자세히 보여주는 것이고, 뒤에는 서울 한 바퀴를 돌고 지하철 전체와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 전체를 멀리서 조망하듯 관조하며 보여준다.     

먼저 앞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지하철을 타는 7명의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2개의 펼침면으로 엇박자로 구성하여 보여주고 있다. 화자는 지하철과 등장인물이다. 

역을 알리는 지하철의 모습이 한쪽, 등장인물이 보이는 모습 한쪽 이렇게 한 펼침면으로 구성되어 있고, 다음 펼침면에는 등장인물이 화자로 바뀌고 그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7명의 등장인물이 각자 지하철을 타고 내리며, 그들의 삶을 말한다.

중년 남자, 제주에서 딸의 집에 해산물을 싸들고 올라온 할머니, 아이 둘을 키우는 전라도 출신의 애엄마, 구로동에서 구두 수선집을 운영하는 할아버지, 공부에 치인 십 대 소녀, 그리고 지하철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 그리고 마지막 등장인물인 스물아홉인 이도영 씨까지.

앞의 이야기의 시퀀스는 그림 구성을 동일하게 잡고 있다. 한쪽 그림, 펼침면 그림식으로. 작가는 등장인물의 성별, 나이, 고향까지 염두하고,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이용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문이 열리는 범위도 다양하게 만들고, 위의 여섯 명의 둥장인물까지는 그들이 어떤 일을 하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도록 그들의 얼굴은 숨기고, 그들의 모습과 옷차림, 신발, 아이들의 모습을 계획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앞의 6명의 등장인물들은 그들의 시선이 정면으로 독자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7번째 주인공은 등장부터 시선이 독자와 만난다.

그리고 앞의 글과는 다르게, 등장인물이 화자가 되어 말하는데,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나의 하루는 남들과 조금 다릅니다. 아침 일찍 양복을 입고 회사에 가는 대신 오늘은 무엇을 입을지,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합니다. 나는 누굴까요?.....]         

이 책을 읽은 많이 이들이 이 장면이 가장 눈에 띄었다고 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 이유는 그림의 등장인물이 독자와 눈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왜 이런 방식을 취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 중심인물이 그이기 때문이다.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한 일곱 번째 등장인물인 이동영은 스스로 오늘은 무엇을 입을지,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이다. 작가는 지하철이 단순히 일터로 일하러 가거나 이동하는 이들의 이동수단만이 아닌 우리 삶을 찾는, 자아를 찾는 수단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지하철 2호선은 다른 지하철과는 달리 뱅글뱅글 도는 순환 호선이다. 이제 이도영의 이야기를 끝으로 이야기의 구조가 바뀐다. 

[서울을 빙글 한 바퀴 돌았어요. 

나는 다시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맞이할 준비를 해요.

덜컹덜컹

덜컹덜컹

이번 역은 신도림, 신도림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왼쪽 글과 함께 오른쪽에 지하철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다음 장에는 그들이 앞을 보고 있다. 독자를 향한 시선이다. 

본문

이제 그림책의 플레이밍 기법을 이용하여, 줌아웃, 줌인하여 화면을 보여주고, 앵글의 시선을 아래로, 위로 잡아서 지하철에 탄 많은 사람들의 모습과 지하철 내부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또한,  이 부분에는  사람들의 얼굴과 지하철 내부에 노랗고 붉은 색감을 넣어 하루의 시간이 흘렀음을, 해가 이미 높이 떠올라서 기울고 있음을 느껴지게 그렸다. 이 이야기는 비슷한 색감과 지하철 외부와 내부의 다양한 플레이밍 기법을 사용하여 하나의 시퀀스로 묶어서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본문
본문

그리고 이런 텍스트와 함께 끝이 난다. 

[나는 이 길 위에서 많은 것을 만납니다.

시장에서 돌아오는 할머니의 못다 판 이야깃거리와

일곱 살 아들 생일에 사 가는 고소한 치킨 냄새를,

전화기 너머 안부 인사와 하얀 셔츠에 밴 시큰한 땀 냄새,

낡은 구두와 그것을 어루만지는 오후의 햇빛.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가득 싣고

덜컹 덜컹 덜컹 덜컹

오늘도 우리는 달립니다.]     

이야기의 뒷면지는 앞면지와 동일한 그림인데, 노을 속 지하철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독자는 마치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하철의 하루를 구경한 느낌이 든다. 이 그림책은 그림과 글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작가의 의도적인 장치로 이야기의 궁금증을 갖게 만든다. 이 그림책을 보면서 [악어 씨의 직업]이 떠올랐다. 비슷한 그림기법으로 그려진 장면들이 겹쳐졌다. 이 그림책은 일반적으로 본문이 16바닥인 그림책보다는 훨씬 긴 구조이다. 본문만 해도 22바닥이며,  앞에서도 4바닥의 면을 이야기에 할애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앞의 이야기 구조와 마지막 이야기 장면을 프레임 구조로 넣어서 이야기의 본문을 줄였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20대에 서울로 올라왔을 때, 가장 혼란스러웠던 것이 지하철이었다. 대학 실기 시험을 보려면 지하철을 타고 갔어야 했기에 직장을 다니는 둘째 언니 집에서 며칠 전부터 묶으며 지하철 노선을 살피고, 글쓰기 시험이 있는 장소에 미리 가보기까지 했다.

글쓰기 시험을 보는 날, 칠판에는 [지하철과 시계 초침 소리가 들릴 때] 라는 두 개의 제목이 적혀 있었다. 

나는 서울 사람이 아니었으니 지하철을 타 볼 기회가 없어서 며칠 전 지하철을 탔던 경험을 쓸까 고민도 되었지만 자신이 없어서 후자를 선택해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이제 나의 서울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은 지하철이다. 나는 버스보다 지하철을 더 좋아한다. 비교적 정확한 시간에 약속 장소에 갈 수 있고, 지하철 노선을 볼 줄만 안다면 헤맬 일이 없기 때문이다. 

지하철에 타면 나도 사람들을 관찰하는 걸 좋아한다. 이도영처럼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지하철을 타 본 적이 없었다. 늘 바쁘게 어디론가 이동을 하기 위해 탔던 기억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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