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방송원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송작가 황초현 Jul 27. 2022

세상을 지휘한 따뜻한 인간 - 음악의 수도사

그리스가 자랑하는 음악인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



고대 그리스 문명의 후예라는 자부심에 걸맞게 

뛰어난 예술가들을 많이 배출한 나라 그리스.


1896년 아테네에서 태어난 지휘자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 또한 

그리스가 자랑하는 음악인입니다.

     

그는 1930년 베를린 필에 초청돼 

연주 당일 갑작스런 병으로 나오지 못했던 솔리스트 에곤 페트리를 대신해

프로코피에프의 <피아노협주곡 제3번>을 연주하며 지휘한 뒤, 

일약 명성을 날렸습니다.


파리, 런던, 미국에서도 이렇게 연주와 지휘를 동시에 하는 재주를 관객들에게 보여줬는데요,

미국에서 지위를 얻게 된 뒤에 그는 당시의 일을 

‘젊은 혈기 때문이었다’면서 부끄러워하기도 했습니다.     


1937년 쿠세비츠키의 초청으로 보스턴 교향악단을 지휘했고

오르만디의 후임으로 현재의 미네소타 관현악단인 

미네아폴리스 교향악단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됐지요.


당시, 말러의 교향곡 제1번 <거인>을 미국에서 처음으로 녹음하기도 

했습니다.

유일한 취미가 등산이었던 그는

사교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악단이 주최하는 파티에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는데요, 


덕분에 헐렁한 차림으로 악단 전용차를 타려할 때,

“이건 미네아폴리스의 전용차니까 타지 마시오”라면서 안내원이 막기도 했답니다.

얼마나 소탈했는지 짐작이 가는 일화죠.     


지휘봉을 사용하지 않고 양손을 경련시키듯 지휘하는 게 특징이었던 그가 지휘를 할 땐,

몸 전체가 음악과 함께 흔들리며 움직였는데,

무엇보다, 암보력이 사진처럼 정확했다고 하지요.


두툼한 뉴욕의 전화번호부 한 페이지를 펼치고는

2-3분만에 그 안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를 모조리 암기할 정도였다고 하니까요.


무엇보다, 죽음을 맞이할 때의 미트로풀로스 모습이 가장 인상적입니다.


뉴욕필의 상임지휘자와 음악감독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했던 그는

1959년1월 뉴욕에서 격렬한 심장발작을 일으켜 입원했고

당분간 지휘를 그만두고 요양하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는데요,


목숨을 10년 더 연장하는 것보다는
지휘대에서 쓰러지는 것이 더 좋다.


면서, 지휘활동을 계속 했고, 

자신의 소망대로

1960년 11월 2일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와 함께 말러의 <교향곡제3>의 무대연습 중 

지휘대에서 쓰러졌던 겁니다.     


‘음악의 수도사’로 불리며 평생 독신으로 지낸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     


자신의 지도를 원하는 젊은 음악도에겐 댓가 없이 성실히 가르쳐줬고

무명의 작곡가에겐 실질적인 도움을 줬던 명연주가.


그는 음악을 연주하기 이전에

부드러운 마음으로 세상을 지휘했던 따뜻한 인간이었네요.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1896년 1 March(율리우스력 18 February) – 1960년 11월 2일)는 그리스의 지휘자피아니스트작곡가다.

미트로풀로스는 아테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테네 시내에서 가죽 제품 가게를 운영했다. 그는 음악적으로 조숙하여 어린 나이에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다. 미트로풀로스가 중학교에 다닐 때인 11세부터 14세까지 그는 매주 토요일 오후에 자신의 집에서 비공식 음악 모임을 주최하고 사회했다. 그의 초기 작품인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는 지금은 소실되었지만 이 시기의 작품이다.

그는 아테네 음악원 과 브뤼셀과 베를린에서 음악을 공부 했고 페루치오 부조니를 스승으로 사사했다. 1921년부터 1925년까지 그는 베를린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에리히 클라이버를 도운 후 그리스에서 여러 직책을 맡았다. 1930년 베를린 필하모닉 연주회에서 독주자가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의 솔로 부분을 연주하고 건반으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다.[1]

미트로풀로스는 1936년 보스턴 교향악단과 함께 미국 데뷔를 했으며 나중에 미국에 정착하여 1946년 시민권을 얻었다. 1937년부터 1949년까지 그는 미니애폴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오늘날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의 전신)의 상임지휘자로 재직했다.

1949년 미트로풀로스는 뉴욕 필하모닉과의 제휴를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 스토코프스키와 공동 지휘자였으며 1951년에 유일한 음악 감독이 되었다. 미트로풀로스는 필하모닉의 레퍼토리를 확장하여 새로운 작곡가의 작품을 의뢰하고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을 옹호했다. 1960년 1월, 그는 게스트로 필하모닉을 지휘하여 녹음된 말러의 교향곡 5번을 연주했다.


- 위키백과-


매거진의 이전글 무한의 저편으로 던져지는 한 송이의 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