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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Jan 04. 2022

'여행'개념 정리하다 파헤쳐 본 한국사회

코로나 시대에 여행이란?

오늘은 여행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개념이 한국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그것과 많은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전적 의미 혹은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는 여행의 의미를 보자면 ‘집을 떠남, 낯선 곳을 찾아가 즐긴다’ 쯤인 듯하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공간의 이동에 중점을 둔 해석이라 하겠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데, 시간적 사회적 경제적 제약으로 제한을 받을 때가 많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혹은 현명하게도^^ 여행의 개념을 임의대로 바꿔버렸다. 어떻게? 


1.   일상의 여행화 


여행과 일상(혹은 휴가와 일)을 대립되는 개념으로 여기면 삶이 빈약해진다. 왜? 위에서 밝혔듯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하는 만큼 휴가나 여행을 가지 못하는 환경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1)모험 

그럴 때 아무 곳으로도 떠나지 않고 일상 안에서 작은 변화를 주거나 새로운 시도를 함으로써 여행에서 오는 흥분과 신선함을 누릴 수 있다. 가령 예전에 먹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음식을 먹어 본다거나, 배워 본 적이 없는 무언가를 배워보는 등 지금까지 해본 적 없는 그러나 해보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찾아서 해보는 것이다. 

2)간접경험 

가고 싶은 곳을 정해놓고 그곳에 대한 연구를 취미로 한다.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관련된 온갖 자료를 찾아보며 집중적이고 생산적인 공상과 체험을 하는 것이다. 그곳을 직접 가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다. 비행기를 타고 싶다면 지하철 타고 공항이라도 나가보고, 달팽이 요리를 먹어보고 싶다면 뒷산에 올라가 달팽이 관찰이라도 하라는 것. 그것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절감하는 고통의 순간이 아니라 꿈을 향한 한 발짝 접근이지 않은가. 그 꿈이 최종적으로 실현되느냐 마느냐는 별개의 문제이다. 인생의 많은 부분은 어차피 미완성이고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 


이런 자잘한 모험과 공상이 일상의 단조로움에 자극을 주며 여행지에서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제약된 환경 안에서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니 기꺼이 나만의 여행이라 정의할 수 있겠다. 또 추후에 있을지도 모를 진짜 여행에 막대한 영양을 공급한다. 희망 여행지를 작정하는 순간부터 여행은 이미 시작된 것이고 집을 떠나는 시점은 이미 여행의 중간에 와 있다고 보는 것이다. 


2.   여행의 일상화 

  

나는 호들갑스러운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집을 떠나 왔다는 이유만으로 일상의 틀을 무리하게 다 깰 필요는 없다. 집만 떠나면 해방감을 부르짖으며 비행과 일탈을 일삼는 이들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1) 남에게 피해 가지 않도록 집에만 콕 머무르거나, 

2) 더 많이 집을 떠나 양적으로 충만감을 느낀 뒤 더 이상 흥분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여행 중에도 차분해지는 법을 배우거나. 

여행은 일상의 틀을 유지한 채 진행할 때 가장 자연스러운데 즉, 잘 때 자고 먹을 만큼 먹으며 체력에 무리 가지 않는 만큼 평소처럼 단순하게 활동하는 것을 말한다. 그 틀 안에서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고 체험할 때 모든 것을 충분히 소화해 내며 여행의 효과는 극대화된다. 

해외에 나가 온갖 명소로 발등에 불나도록 이동만 하다 그치는 여행은 몸만 축날 뿐이다. 그들은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우긴다. 정말 사진 외엔 남는 게 없다.;; 2박 3일 캠핑 가며 먹는 일에만 총력을 기울이는 것도 안타깝다. 식재료며 살림살이 나르는 게 보통 일인가. 이들은 먹는 게 남는 거라고 주장한다. 자연 속에서 먹으니 맛도 다르다며 쓰레기만 잔뜩 남기고 온다. 

나라면 짧은 캠핑은 컵라면과 빵 쪼가리로 끼니를 때우고 남는 시간에는 온전히 자연을 즐기며 쉬겠다. 일상화에서 벗어난 여행은 고통과 불편을 동반하며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3.   고로 삶은 그 전체가 하나의 여행일 뿐이라는. (Life is one long holiday.^^) 


내가 나름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느낀 점은 여행과 일상의 경계가 무뎌지며 교류가 원활해질 때 삶은 풍요로워지고 일상과 여행의 진가가 각각 제대로 발휘된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불안정하고 위험한 여행패턴은 이미 고등학교 수학여행에서부터 공적으로 잘못 교육되었다고 본다. 억눌렸던 욕구가 한꺼번에 분출되며 더 놀자고 잠도 안 자고, 못 먹게 하니 술도 몰래 먹고, 안 하던 나쁜 짓도 한 번쯤은 해봐야 추억이 된다는 집단 강박이 요동을 치는 시간이다. 진지하게 여행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평생 그런 것들을 여행으로 이해할 뿐이고… 그래서 이미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이건 대통령 수행원이건 외국에만 나가면 (혹은 집만 벗어나면) 강철 같은 부모 품을 벗어난 질풍노도의 불량 청소년처럼 구는 것이다. 


화려한 뷔페 밥상을 앞에 두고 지나치게 흥분해서, 내 입에 무엇을 쑤셔 넣는지 감각하지 못하고 위장의 용량도 망각함은 물론 배가 이미 찼다는 뇌의 신호까지 무시한 채 손과 입을 움직이다가, 결국은 배탈로 이어져 아니 먹은 만 못한 호화 식사를 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 한 가닥의 면발까지도 입 속에서 즐기고 국물 한 숟갈도 박박 긁어 끝까지 떠먹고 작은 단무지로 뿌듯하게 입가심하는 우동 한 그릇 먹는 듯한 여행을 이제는 하자고 제안하고 싶은 것이다. (2013/8/23일 씀)      



1. 코로나 시대에 멀리 가지 못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글이 될 것도 같아 오래전에 쓴 글을 올려본다.

2. 아마도 당시에 (지금은 기억도 안나지만) 사회지도층의 해외여행이 문제를 일으킨 사건들이 있어서 이 글을 썼던 듯 하다.

2. 이재명 대통령 후보자는 수일 동안 같이 해외여행한 동행자를 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여행 일정을 보면 관광지를 위주로 재밌게 놀러 다닌 듯한데.. 그에게 있어 여행이란 무엇일까? 일상이란 무엇일까? 궁금하다. 


발라렛과 스킵튼 사이에 장장 55킬로에 이르는 트레일(산책로)이 있다. 예전엔 기차가 다니던 길이었는데, 운행이 중지되면서 기차 레일을 제거하고 산책로로 만든 것이다.       

집에서 가까운 구간을 주로 산책하다가 어느 날인가,  전 구간을 다 걸어 보자 작정했다.  한 구간씩 나누어 조금씩 걸어보는 중인데, 이 날은 린튼에서 뉴타운에 이르는 거리를 걸었다. 왕복 15킬로에 이르는 구간이다.   

구간 종착지인 뉴타운 근처에서 만난 아름다운 목조 다리. 이 즈음에서 잠시 앉아 샌드위치를 먹은 것 외엔 3시간쯤을 쉬지 않고 걸었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있지만 대체로 평탄한 길이라 천천히 걸으면 하루 종일도 힘들지 않게 걸을 수 있다.     

구간마다, 조금씩 다른 분위기를 관찰하는 것도 재밌다. 지형도 다르고 캥거루가 날뛰는 곳이 있는가 하면, 온갖 새와 나비들이 등장하는 구간도 있고 작은 연못이나 호수가 나타나기도 하고 오래된 레일 흔적 등을 찾아볼 수도 있다.     

어떤 구간은 끝에 작은 카페가 있어서 커피 한잔 마시며 쉬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의 구간은 인적이 없어 

조용히 사색 혹은 잡생각 하며 걷기에 그만이다. 이제 짧은 한두 구간을 남겨두고 있다. 발라렛 트레일 전 구간을 다 걷는 날은 가족들과 조촐한 기념행사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 중이다. 내가 일상 중 하는 여행의 한가지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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