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캥거루 사냥의 추억

난생처음 야생동물 사냥에 동참했다.

by 몽기

나는 내가 사냥에 동참하게 될 줄 몰랐다. 그것도 다른 동물도 아닌 캥거루를.. 7, 8 년 전으로 기억된다. 당시 멜번에 살 때였는데 빅토리아주의 야카단다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가 며칠을 묵게 됐다. 마침 친구의 오빠네가 근처에서 크게 목장을 하고 있었는데, 도시에서 손님이 왔다는 걸 알고는 ‘야간 캥거루 사냥’에 같이 가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 사냥에 대한 관심 혹은 경험이 전무했지만 호기심이 발동했다. 야밤에 야산을 돌아다니며 야생동물 쫒는 재미가 궁금해졌다.


그러고 보니 난 그 재미를 조금 알기는 했다. 호주에 왔던 첫 해 모국립공원에서 자원봉사자로 일을 할 때였다. 어느 날 일과를 마치고 팀원들과 숙소에 있는데, 공원 관리인이 재밌는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해서 다같이 따라나섰다. 이름하여 스폿 라이팅 (Spot lighting). 4륜 구동 트럭 뒤에 일행은 피난민처럼 쭈그리고 앉았다. 깜깜한 밤, 깊은 산길을 맹렬하게 차로 달리는 동안 트럭 뒤에 한 남자가 서서 커다란 라이트(영화 촬영할 때 쓸 듯싶은)로 이리저리 숲 속을 비추었는데, 그 빛을 따라가다 보면 야밤에 활개를 치던 야생 동물들이 후다닥 놀라 뛰쳐 달리는 것이 보였다. 캥거루 왈라비 여우 웜벳 토끼 올빼미 등등… 트럭 뒤에 앉은 우리는 재빨리 달아나는 동물들의 숫자를 세어 기록했다. 깊은 숲으로 들어갈수록 여기서 후다닥 저기서 후다닥 정신이 없었는데, 아.. 그때의 그 느낌이란……!!!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 되는 인적 없는 산속, 까만 하늘엔 별빛만 총총한데, 정신 번쩍 나도록 서늘한 찬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달리는 차 위에서 천진한 야생 동물들을 쫒는 재미. 정글 속의 야간 사파리 같다고 할까? 잠시 이걸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면 무지 인기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을 고쳤다. 어쨌거나 국립공원에서는 정기적으로 야생동물의 생태를 연구하기 위해 이런 리서치를 한다고 했다.


그래 오늘 밤엔 캥거루를 한번 쫓아보자! 남편과 나는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가 밤 10시쯤 이들을 따라나섰다. 호주에서 캥거루 등의 특정 야생동물들은 사냥이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일부 농장 등은 늘어나는 야생동물들로 인한 폐해가 커서 제한적인 사냥을 허락받고 있고, 시골 농장주들은 취미로 토끼 등 일반 야생동물 사냥을 즐기기도 한다.

일행은 나를 포함해서 4명이었다. 운전자와 보조석에 앉은 나. 그리고 트럭 뒤엔 라이트를 들고 있는 청년과 포수가 되어 엽총을 든 남편, 잘 훈련된 덩치 큰 사냥개 3-4 마리가 같이 올라앉아 있었다. 이들은 수십 년을 일했던 자기 농장인지라 지리를 잘 알고 운전하는 거였겠지만, 보조석에 앉은 나는 앞이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울퉁불퉁한 오르막 내리막을 속도도 줄이지 않고 달리는 것에 일단 마음이 졸았다. 야산 등지라 애초에 길 따위는 없었지만 여기가 절벽인지 아닌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상황들. 커다란 바위 앞에 급정거하기도 하고, 캥거루를 발견하는 순간 방향을 틀어 또 정신없이 달리고... 제멋대로 뛰는 동물을 쫒다 보니 운전도 지그재그 엉망이었다. 그렇게 달렸는데도 캥거루를 쫒다가 놓치기를 몇 번, 운전 자체만으로도 스릴을 넘어 공포를 느끼게 됐다. 나중에 듣자 하니 남편은 한 손에 엽총을 들고 트럭 위에서 굴러 떨어지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고 한다.


1시간을 넘게 몇 번을 허탕 치며 운전만 하다가 드디어 하나를 가까이 따라잡게 되었다. 남편은 허술한 사격 솜씨로 몇 번만에 캥거루의 머리를 스쳤고, 캥거루는 잠시 기우뚱 쓰러지는 듯하더니 다시 일어나 달렸다. 총 맞기 전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직 팔팔했다. 사냥개들이 트럭에서 뛰어내려 컹컹대며 쫒아가 물어뜯기 시작했다. 저 앞에서 난투극이 시작됐다. 차를 좀 더 가까이 대고 불을 비추며 사냥개들을 도왔다.


아… 그런데 이 처참한 살상의 현장이라니… 어두워서 대충 보았기에 망정이지 훤했다면 찢겨 튕기는 살점들과 흥건한 핏자국이 더 선명했을 터였다. 사냥개들은 흥분해서 미친 듯이 물어뜯어대고 한참을 버티던 불쌍한 캥거루가 마침내 털썩 쓰러졌다. 운전자와 뒤에 탔던 남자가 사냥개들을 밀어내며 현장을 치우고 죽은 캥거루를 트럭에 실었다. 별로 크지 않은 것이라 했지만 성인 남자 셋이서 겨우겨우 끌어 옮길 정도였다. 이 캥거루는 정리해 커다란 냉동고에 보관하면서 사냥개의 밥으로 줄 것이라 했다.


아… 내가 지금 여기서 무얼 했던가…!! 얼떨결에 사냥에 동참한 남편과 나는 매우 우울해져서 집에 돌아왔다. 새벽 한 시가 다 된 듯했다. 격렬하게 미친 듯 3시간 여를 야산을 헤집으며 기어코 살생을 하고 왔다니... 살벌하고 역겹고 미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사냥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얼까 생각해봤다. 사냥하면 영국의 귀족들이 떠오른다. 스코틀랜드 전통의상을 입고 말 위에 올라타 나팔까지 불어가며 우아하게 숲 속으로 사냥을 떠나는 백작 공작 황태자 같은 이들. 신사로 귀족으로 점쟎을 빼고 일상에서 많은 것을 억누르며 사는 이들이 원 없이 잠재된 야성을 폭발시키고 철저히 상대를 정복할 수 있는 기회가 사냥이 아닐까. 게다가 누가 신의를 지키고 배신할지를 늘 염려해야 하는 피곤한 삶 속에서 죽기까지 충성밖에 모르는 사냥개들의 호위를 받으며 안식을 누리는 건 아닌지…그런 생각들을 했었던 것 같다.


시골로 이사 온 뒤 가끔씩 토끼 사냥을 가자는 이웃의 제안을 받지만 남편도 나도 더 이상 따라나서지 않는다. 야생동물 앞에서는 사냥꾼이 아닌 구경꾼으로 남아 있고 싶다. 즐겁게 바라보고 신기해서 카메라도 들이대며 좋아라 하는….(2009/10/05 씀)

얼마 전 브라이트를 여행 중 들판에서 만난 야생 캥거루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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