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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Apr 11. 2024

호주, 럭셔리 '보트 제작'의 세계는 이렇다.

수공 목재 보트 장인을 만나다.

호주 바닷가나 호숫가에 가면 무수한 요트나 보트를 볼 수 있다. 수상 레저가 발달하고 대중화된 만큼 개인이 보트를 소유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곳 소렌토 바닷가 주변을 보면 마을마다 보트 클럽이 있고 집 뒷마당에 보트를 정박해 놓은 집도 흔하게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이 많은 보트는 누가 만드는 것일까? 아들 친구 아버지가 보트 제작을 하는 자신의 작업장으로 우리 가족을 초대했다.

요즘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알루미늄을 써서 대량 생산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은 목재를 써서 전통적인 수작업으로(Wood Hand Craft) 보트를 주문 제작하는 호주에서 몇 안 되는 장인이라 했다.

예전부터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얘기하면서 2-3년 동안 두척 정도의 보트를 제작한다고 해서 작업장이 작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규모가 커서 일단 놀랐다.

주방가구와 별도 제작한 냉장고가 짜여 들어간다.

각기 다른 고객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작업 중인 두대의 보트는 각각 20억 원을 넘었다. 호주의 웬만한 고급 주택 가격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한 배가 조금 더 컸지만 내부 디자인 등을 고객 주문대로 일일이 맞추다 보니 가격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선실을 들어가면 두 사람이 간신히 누울 만한 침실이 앞쪽에 하나 있고 한쪽 옆으로 또 간신히 한두 사람이 누울 만한 또 다른 침실이 나온다. 주방과 욕실도 작지만 쓸모 있게 공간에 채워 넣는다. 어찌 보면 캠핑카처럼 오밀조밀한데 그보다 더 밀집되어 있는 듯도 해, 바다 위에 떠서 며칠을 이 공간에서 살라면 좀 멀미가 날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내 취향은 아니다.^^ 

손바닥만한 거실엔 초미니 벽난로까지 설치되어 있다. 나무를 태우니 낭만도 있겟지만 실제 난방 역할도 한단다.

집을 짓는 것과 배를 짓는 것은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을 만든다는 데 있어 같은 작업이라 하겠다. 그러나 분명히 다른 점들도 있는데, 집이 직선과 직각을 위주로 똑바로 짓는다면 보트는 뾰족한 배 앞머리와 통통한 중간,  날렵한 선미를 기본으로 하다 보니 휘어짐과 곡선을 중심으로 작업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단다.

또 다른 차이점은 배를 뒤집어 밑바닥부터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물에 잠길 배 밑부문을 지어 올린 뒤 대형 크레인을 동원해 배를 작업장 밖으로 끌어내어 위아래를 뒤집는 작업을 하는데, 여러 장비 대여부터 이미 수십 톤에 달하는 반절의 배를 뒤집는 일을 하루 종일 하는 것이 매우 어렵고 긴장되는 작업이라 했다.

그렇게 뒤집은 배를 다시 작업장 안으로 끌어 들여와 그때부터 배 윗부분을 지어 올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작업 중인 보트는 아직 갈길이 멀어 보이지만 80% 이상의 어려운 공정을 끝낸 보트의 틀을 대략 다 갖춘 것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배선 배수 엔진이 들어갈 공간을 일일이 디자인하고 직접 만드는 일까지 장인 혼자 책임을 지고 다한다. 부분 부분 다른 전문가들이 장인의 지시대로 설치 작업을 보조한다.

배는 공중에 떠있고 작업자들이 이층 이상의 높이에  달하는 위아래를 오르내리며 작업한다.


벽 한쪽에 작업 진행표가 붙어 있다.

도대체 누가 이런 배를 사느냐고 물었더니 지난 20여 년간 이 사업장은 꾸준히 번창 해왔단다. 경기가 요동치고 코로나가 창궐해도 그런 일들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이들이 주고객 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알루미늄 배들이 많이 나오는데도 굳이 개인 주문을 해서 전통 목재 제작 방식을 고수한 보트를 소유하려는 몇 명은 언제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주문을 한 뒤 설렘을 안고 몇 년을 느긋하게 기다린다.


그렇다면 2-3년 동안 2척의 배를 짓는 것이 그가 하는 일의 전부일까? 공정 사이에 기다려야 하는 기간도 있고 작업이 지체될 때도 있는데,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종종 전혀 다른 부업을 하거나 배를 수리 보수하는 작업을 한쪽에서 하기도 한다. 한 시즌을 바다에서 보내고 돌아온 보트들을 재정비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또 다른 작업장엔 크고 작은 규모의 보트나 요트들이 수십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또 보험회사에서 의뢰가 오면 현장에 나가 선박 관련 사고나 보상 정도를 조사하는 사정관으로 일하기도 한단다. 그래서인지 12명이 일한다는데 각자 자기 자리에서 혼자 일하는 분위기라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수십 수백 톤에 달하는 배를 물이 아닌 땅 위에서 이리저리 옮기는 일 자체가 간단하지 않은지라 이를 돕는 각종 장비들이 구비되어 있다.

그 작업장을 나오니 각기 다른 기능의 작업을 하는 작은 구역들이 나타났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무수한 공구들과 장비들. 그래도 하나같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그중 재밌었던 재봉틀 방. 돛이나 가구에 얹을 침구나 쿠션까지도 일일이 따로 제작하기에 재봉실은 필수란다.

종류도 모양도 상태도 다 다른 별별 보트들.

직원들이 바베큐 해먹는 쉼터도 폐보트 위에 만들었다.

한쪽 창고엔 백 년도 넘었다는 폐보트들이 있었다. 이곳 사장이 누군가가 버리는 보트를 1달러에 사서 이동비로만 수천 달러를 들여 굳이 이 창고에 끌고 온 데는 이유가 있단다. 아무개 유명 인사가 소유했던 배, 레이싱 우승 이력이 있는 배 등등 특별한 스토리가 있기에 반으로 잘라 폐기해도 될 만큼 낡았지만 굳이 창고에 쌓아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살다 보면 이런 배들의 매력을 알아보는 주인이 나타난단다. 새 보트를 제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들여 보수를 하고 다시 새 생명을 불어 넣는 작업을 기꺼이 의뢰할 억만장자가 언제가 어디선가 나타나기에 이들은 창고에서 조용히 먼지를 쌓으며 20년이 넘는 세월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들으면 들을수록 신기하고 재미난 보트 제작의 세계, 그들만의 세상...

영국에서 보트 제작을 전공한 그는 워킹할러데이로 호주에 왔다가 아내를 만나 정착하며 이 한 곳에서 이십 년이 넘도록 일을 해오고 있단다. 나도 그와 비숫한 시기에 호주에 워킹할러데이를 왔고 남편을 만나 원래의 계획과는 다르게 지금까지 살고 있어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 약간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나는 그처럼 전문 기술이 있지도 않고 영어도 원어민이 아니라 좀 더 다채로운 직업 경험이 있지만.


그는 호주에서 보기 드문 이 분야 전문가이고 자기 일을 무척 좋아하며 열심히 한다. 동시에 활동적인 아내의 사회생활을 묵묵히 뒷바라지하며 세 아이를 허벌나게 돌보고 살림하는 성실한 아빠이자 동네 소방서에서 자원봉사로 일하는 평범한 소시민이기도 하다.

장인이고 럭셔리고 그들만의 리그라 나와는 거리가 있는 세상도 결국은 고만고만한 인간들의 인생사가 묻어들어간다. 그래서 세상은 낯설면서도 익숙하고 대단하면서도 별거 없다. 평범하고 성실한 노동의 일상이 아름답고 파란 하늘과 친절한 그의 초대가 감사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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