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BTS 보다가 빠져 든 '광화문' 상념.

내가 살던 고향은?

by 몽기

지난 주말 나도 BTS 컴백 콘서트를 멜번에서 넷플릭스 라이브로 보았다. 30여 년 전 교회 친구들과 함께 한 달에 두 번씩 하는 줌 북클럽 시간과 겹쳐 나중에 볼까 했는데 갑자기 모임을 연기하고 라이브를 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환갑이 낼모레인 내가 무슨 열렬한 팬이겠는가 만은 왠지 모를 애국심도 발동했고 광화문이란 상징적 장소가 내 삶과도 연관이 많아 더 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세계 최강 보이 그룹의 멋진 노래와 춤 외모 패션에 대한 이야기나 다소 미흡했던 무대 연출력 같은 콘서트 뒷얘기는 접어 두고 간만에 마음속에 떠오른 까마득한 광화문에 대한 썰이나 잠시 풀어볼까 한다. BTS의 인기를 빌려 서라도 그곳에서 벌어졌던 사사로운 나의 역사를 이곳에 짧게 남겨보고 싶다.


그러니까 내가 호주로 넘어오기 전, 30년의 세월을 오로지 종로구에서만 살았는데, 나의 본적은 종로구 신문로 1가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서울인을 만났지만 이런 본적을 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나의 생가가 광화문 도시 미화 계획으로 철거되어 나가면서 그곳에 서울 역사박물관이 들어섰다. 당대의 재벌들이 살던 대저택들과 전국에서 몰려와 서울 살이를 시작한 도시빈민들이 판잣집을 짓고 얼기설기 한동네에 붙어살았던 듯한데 당시 살던 우리 판잣집 옆엔 커다란 밭도 있었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다를 수도 있겠지만 광활한 그 밭에서 호박도 딸기도 따먹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박물관 앞에 아이들이 물놀이하는 분수 공간이 있는데 그곳이 나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오간수문지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있고 조선시대 궁 일대의 양반 아이들이 놀던 곳이라는 설명도 붙어있는데, 그 '오리지널' 석조 놀이터에서 놀았었다. 집에서 조금 걸어 나오면 있던 허름하고 잡초가 우거진 모퉁이 그곳은 지금 얼추 생각해도 이끼 가득한 우물이며 물길이 도는 돌자리며 예사롭지 않은 역사적 예술적 공간이었는데 개발에 밀려 다 쓸려 나갔다. 그런 곳들을 지키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쉽다.


그런 곳에서 놀며 자랐다고 내가 조선 양반의 자제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밝히고 싶진 않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난 신라 왕족의 후예가 맞다. 알에서 태어난 박 혁거세가 직속 조상이다. 어릴 땐 호기로운 농담을 했다. 내가 유명해져서 서울시가 저 박물관을 헐고 내 생가를 복원하도록 만들겠다고. 노벨상을 타는 작가가 된다면 혹시.. 한강님이 먼저 해버렸다. 그녀는 광화문 근처 효자동에 살며 만족하는 듯하다. 그나저나 브런치 공모전에서도 해마다 고배를 마시니 박물관이 헐릴 우려는 없다고 봐야 한다. 또 무엇보다 감사하게도 세월이 흘러 나의 탐욕과 야먕이 잦아들었다.



지금도 유일하게 광화문에 남아있는 D국민학교를 입학해서 6년간 걸어 다녔다. 체험학습이라 해야 하나 야외활동이라 해야 하나 한 번씩 키보다 큰 싸리 빗자루를 들고 5분 거리를 행진하여 덕수궁 뒷마당의 은행잎을 싹싹 쓸었었다. 돌담길과 노랗고 빨갰던 낙엽들... 나의 예술적 감수성은 그런 시간들을 통해서 키워졌다.^^


정동에 있는 중학교를 졸업했고 청와대 옆의 J여고를 다녔다. 지금은 어디 있는 지도 모르게 이사를 갔지만, 청와대 수비병들의 경호를 받으며 등하교를 했었다. 교황이나 각국 대통령등 국빈이 방문하면 수업을 멈추고 청와대 앞길에 나가 대기하고 서 있다가 태극기를 열렬히 흔들었다. 그때 요한 바오로 교황께서 사방이 유리로 덮인 방탄유리차를 타고 손을 흔들며 카 퍼레이드를 한 것이 큰 뉴스였는데, 40년 뒤 방탄 소년단이 이 일대에서 공연을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 방탄이 이 방탄인가, 아닌가?


이후에도 대학을 거쳐 광화문에서 직장생활을 했고 교회를 다녔고 교보에서 책을 읽고 인사동에서 그림을 봤다. 사람도 만나고 차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그러고 보니 광화문을 벗어난 적이 별로 없는 듯도 하다.


그런데 광화문도 조금씩 많이 변해왔다. 언제부터인가 이곳을 걷다가 길을 잃기도 하고 도대체 이 넓은 광장이 생기기까지 무엇이 사라졌는지를 떠올려보려 했는데 기억이 제대로 구성되지 않았다. 버스를 타는 게 익숙지 않아 먼 길을 하염없이 걷기도 했다. 변한 것은 변한 대로 아쉽기도 하고 멋지기도 하고 변하지 않은 것은 변하지 않은 대로 반갑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2년에 한 번씩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들러보지만 익숙함과 낯설음이 뒤섞여 많은 생각들을 덧칠하게 되는 곳이 내 고향, 광화문이다.


변하는 것이 어디 광화문뿐이겠는가! 나도 많이 변했다. 집 근처 부쉬 레인저 베이를 익숙하게 걸으며 모처럼 여행이라도 온 듯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바닷물이 빠졌는지 들어찼는지, 숲이 메말랐는지, 비가 더 와야 하는지 사사로운 얘기를 남편과 나누며 산책했다. 이곳이 나의 삶의 터가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모닝튼 바닷길을 걸으며 광화문을 추억하는 이 부조화의 일상이라니!


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변한다. BTS도 4년 만에 대중 앞에 나서며 어떤 정체성을 유지할지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 할지 고민이 많았을게다. 광화문도 BTS도 나도 그렇게 무겁지 않게 가볍지 않게 고민을 하며 오늘을 사는 것이다. 역사에 남거나 사라지는 그 사이에서...